“다시, 문학과 비평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그 불꽃, 얼음처럼 뜨겁다”
문학평론가 이소연이 첫 평론집 『응시하는 겹눈』을 데뷔 6년 만에 문학동네에서 펴냈다. 등단 이후 꾸준하고 활발한 활동을 해온 이소연은 『문학동네』 리뷰팀을 거쳐 현재 『현대문학』편집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생생한 현장비평을 펼치는 젊은 평론가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첫 평론집 『응시하는 겹눈』은 평론가 이소연의 그간 활동을 총망라한 것이면서 동시에, 동시대 문학의 흐름과 그 안에서 새롭게 읽어야 할 문학의 지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09년부터 2014년 여름까지, 약 5년여에 걸쳐 문예지에 발표한 글들은 묶은 이 책은, 한국 소설은 물론 데이비드 미첼의 작품과 한국 시, 다른 비평가의 평론집까지 이소연의 웅숭깊은 비평적 투시안으로 읽어내려간 오늘의 문학 지도를 유감없이 보여주기에, 독자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의미를 함께 전해준다.
1부 <응시 하나, 지평에서 보다>는 인간의 조건을 우리 문학 속에서 찾아보고, 비정한 세계 속에서 파국을 유보시키는 인간의 의지를 살펴보는 두 편의 글로 시작한다. 이어서 인간과 비인간에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두 편의 웹툰을 분석한 글에서 펼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또한 김중혁의 『미스터 모노레일』,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김유진의 『숨은 밤』 등 한국문학에 나타난 새로운 장편소설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맞서는 낯선 양식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현대시를 물의 시, 불의 시, 흙의 시로 나누어 분석한다. 한편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등장한 소설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평한 두 편의 글도 이 평론가의 응시의 지점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2부 <응시 둘, 얼굴을 마주보다>는 조현, 김애란, 전성태, 김성중, 김영하 등의 한국문학 최전선에서 주목받는 작자들의 작가론과 남진우의 최근 평론집 두 권에 대한 글, 그리고 데이비드 미첼 소설에 대한 글을 담고 있다.
3부 <응시 셋, 책 안에서 나를 보다>에는 전아리, 전혜정, 정미경, 김이은, 류소영, 은희경 등의 소설집과 이청준 소설집 『키 작은 자유인』, 배상민, 이신조의 장편소설, 그리고 김태용 한유주의 소설과 구경미 단편 「파랑을 꿈꾸다」, 손보미 단편 「폭우」, 김미월 단편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등의 작품론이 자리해 있다. 뿐만 아니라 김경후 시집, 김성규 시집, 김성대 시집에 대해 분석한 글도 함께 볼 수 있어 경계 없이 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이소연의 비평적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인간’이라는 단어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라고 <책머리에>에서 고백하고 있거니와 그의 첫 평론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이 ‘인간’에 대한 탐구이다. 그런데 이 ‘인간’에 매달릴수록 그는 ‘비인간’에 대해 더 자주, 그리고 깊이 다루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인간’이란 개념을 회의했던 이소연의 생각의 자취, 응시의 궤적이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인간’, 다시 돌아와 ‘인간’으로 끊임없이 파고드는 이유는 아마 그에게 ‘인간’은 곧 문학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여기서 문학, 인간이 무엇을 꿈꿀 수 있을지, 그의 겹눈은 바로 그 꿈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혀를 물어도 감을 수 없는 것은 눈이다. 나의 두 눈은 글을 먹고 뱉으며 일하곤 했다. 그렇게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가까스로 이어나가는 이유는 한 가지, ‘인간’이라는 유적존재의 일원이라는 판타지를 잃고 싶지 않아서다. 언어를 통해 자신을 빚어나가고 같은 종에 속한 동료들과 암묵적으로 공생을 기약하는 존재의 이미지가 태어나는 자궁, 내게 문학은 그런 것이었다. 문학은 쓰는 행위, 도무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혼의 상태, 문자로 대리 보충하지 않고는 버텨내지 못하는 결핍의 또다른 이름, 그것……
나의 서식지, 가장 궁색한 나의 판타지, 오늘의 살아 있음을 내일의 죽음과 구별하게 만드는 ‘최소 차이()’의 흔적들.
_책머리에 「가장 작은 차이, 나」에서
● 추천사
이소연의 평론집을 뒤척이는 새벽, 소연이랑 같이 공부하며 웃고 침잠하고 떠들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이소연은 총명한 이지(理智)에 예민한 감수성, 텍스트의 욕망을 따라 내려가는 깊은 심연의 정동(情動), 공감의 촉각, 문체의 무도(舞蹈) 등 좋은 비평가가 갖추어야 할 많은 것을 잘 갖춘 것 같다. 그녀의 비평에는 그렇게 존재 소거 직전인 이 시대의 인간 질병의 양상과 그것을 앓는 환자로서의 개인 존재에 대한 진맥의 전율이 오롯이 잘 드러나고 있다. 시대를 끌어안고 앓는 텍스트를 끌어안고 함께 앓는 비평가. 그녀는 그렇게 텍스트의 상처와 환몽을 함께 앓고 있는 것 같다.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말했던 Sympathy라는 것이 그것일까? 그것은 이소연이 수사 차원의 현상 텍스트(pheno text)만을 읽는 비평가가 아니라 현상 텍스트 아래의 발생 텍스트(geno text), 즉 작가의 욕망이나 충동, 검은 에너지까지를 읽어내는 비평가이기 때문이리라. 그녀의 자리가 그렇게 오롯한바 더욱 깊이 우리 시대 텍스트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검은 태양’의 언어들을 굴착해내어 무의식의 말과 꿈을 전해주는 ‘충만한 비평가’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_김승희(소설가, 시인)
불우한 자들의 불꽃놀이를 ‘응시하는 겹눈’이 범상치 않다. 잃어버린 세계, 그 상실과 부재의 언저리에서 가까스로 파국을 유보하는 상상력의 조율을 응시하는 비평적 투시안이 웅숭깊다. 오늘의 낯선 슬픔에서 오래된 지혜에 이르기까지 비평가의 관심은 넓고 깊다. 21세기 작가들이 처한 상황을 공유하고 협력하고 또 비판하고 넘어서면서, 지금 여기서, 문학이 무엇을 어떻게 다시 꿈꿀 수 있을지 고뇌하는 경계선의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동시대의 생생한 문학 지도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려보는 기쁨을 누린다. 비평가 이소연과 함께 문학은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새로운 글쓰기의 모험을 단행하면서 탈주한다. ‘응시하는 겹눈’과 더불어 불우한 자들의 불꽃놀이는 진정한 문학성의 향연에 동참한다. 다시, 문학과 비평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그 불꽃, 얼음처럼 뜨겁다.
_우찬제(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