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전10권)
- 저자
- 황석영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15-01-30
- 사양
- 140*210 | 무선
- ISBN
- 978-89-546-3475-5 04
- 도서상태
-
절판
- 정가
- 150,000원
- 신간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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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염상섭부터 김애란까지,
거장 황석영과 함께 걷는 한국문학 100년의 숲
1962년 등단, 오십여 년 한결같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온 거장 황석영이 지난 100년간 발표된 한국 소설문학 작품들 가운데 직접 가려 뽑은 빼어난 단편 101편과 그가 전하는 우리 문학 이야기. 작가 황석영이 온몸으로 겪어낸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과거의 작품들은 그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부활했고, 오늘의 작품들은 그 깊이가 달라졌다. 긴 시간 현역작가로 활동해온 그이기에, 그리고 당대와 언제나 함께 호흡해온 그이기에 가능한 "황석영의 한국문학 읽기"! 특유의 입담과 깊이 있는 통찰, 과거와 오늘의 작품을 새로 읽는 데 있어 반성을 주저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우리 문학에 다가서기 어려워하는 독자들까지도 작품 곁으로 성큼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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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황석영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중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돈다.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등에서 일하며 떠돌다가 승려가 되기 위해 입산,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단편소설 「탑塔」이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방북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했고, 1993년 귀국 후 방북 사건으로 7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사면 석방되었다. 1989년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변혁을 꿈꾸며 투쟁했던 이들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장편소설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객지』 『가객』 『삼포 가는 길』 『한씨연대기』 『무기의 그늘』 『장길산』 『오래된 정원』 『손님』 『모랫말 아이들』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등이 있다.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등 세계 각지에서 『오래된 정원』 『객지』 『손님』 『무기의 그늘』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이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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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01 식민지의 어둠
02 해방과 전쟁
03 폐허의 잡초처럼
04 폭력의 근대화
05 생존의 상처
06 억압과 욕망
07 변혁과 미완의 출발
08 나와 너
09 위태로운 일상
10 너에게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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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염상섭부터 김애란까지,
거장 황석영과 함께 걷는 한국문학 100년의 숲
1962년 등단, 오십여 년 한결같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온 거장 황석영이 지난 100년간 발표된 한국 소설문학 작품들 가운데 직접 가려 뽑은 빼어난 단편 101편과 그가 전하는 우리 문학 이야기. 작가 황석영이 온몸으로 겪어낸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과거의 작품들은 그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부활했고, 오늘의 작품들은 그 깊이가 달라졌다. 긴 시간 현역작가로 활동해온 그이기에, 그리고 당대와 언제나 함께 호흡해온 그이기에 가능한 ‘황석영의 한국문학 읽기’! 특유의 입담과 깊이 있는 통찰, 과거와 오늘의 작품을 새로 읽는 데 있어 반성을 주저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우리 문학에 다가서기 어려워하는 독자들까지도 작품 곁으로 성큼 이끌어준다.
기존의 국문학사나 세간의 평가에 의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현재 독자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선정된 작품들에는 유명한 작가의 지명도 높은 단편뿐만 아니라 지금은 거의 잊힌 작가의 숨은 단편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각 권의 말미에는 시대와 작품을 아우르는 문학평론가 신수정의 해설이 덧붙여져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은 우리 시대의 한국문학에 바치는 나의 헌사가 될 것이다. 아직도 나라와 사회의 운명이 평탄치 않아서 서구문학에 견주어 우리 문학의 수준을 감히 타매하는 이도 있고 일본과 중국 문학에 빗대어 비하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집을 통해서 ‘고통받은 고통의 치유자, 또는 수난당한 수난의 해결자’인 문학의 이름으로 곡절 많은 이 땅의 삶을 담아낸 한국문학의 품격과 위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한다. 이 작품과 작가들을 보라.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 인생을 문학에 바쳤다. 나는 특히 작고한 선배들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자신의 갖가지 영욕의 생활을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던 그 숨결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으며, 동시에 우리 근현대문학의 강인한 힘을 새삼 확인했다. 그들은 동구 밖의 돌담이나 정자나무처럼 풍상 속에서 무너지고 꺾이기도 하면서 늘 우리 곁에 있었다. _‘펴내며’ 중에서
나는 이 명쾌한 해설 앞에서 새삼 황석영 선생의 문학적 깊이에 압도당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문학 그 자체로 구성해온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실 진술의 진경이라고 할 만하다. _신수정(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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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반항에 있지 않다
저 젊은이들의 나에 대한 사랑에 있다
아니 신용이라고 해도 된다
‘선생님 이야기는 20년 전 이야기이지요’
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나이를 찬찬히
소급해가면서 새로운 여유를 느낀다
새로운 역사라고 해도 좋다
이런 경이는 나를 늙게 하는 동시에 젊게 한다
아니 늙게 하지도 젊게 하지도 않는다
이 다리 밑에서 엇갈리는 기차처럼
늙음과 젊음의 분간이 서지 않는다
다리는 이러한 정지의 증인이다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
그러한 속력과 속력의 정돈 속에서
다리는 사랑을 배운다
_김수영, 「현대식 교량」 중에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한국문학의 밝은 길잡이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지난 2012년 작가 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황석영은 김수영의 시 「현대식 교량」을 낭독했다. 이 낭독은 어쩌면 이후 그의 문학적 향방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식민지 시대부터 2000년대까지, 101편의 작품을 가려 뽑고 편마다 해설을 덧붙인 그의 작업은 마치 ‘현대식 교량’의 역할을 하겠다는 천명의 증거들처럼 보인다. 역사를 온몸으로 통과해온 자로서 무언가 증언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하겠다는 근본적이고도 절박한 욕망으로, 그는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을 2011년 11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꼬박 3년 동안 연재했다. 그리고 이를 전10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이 해설들을 다시 검토하고 전면적으로 수정했다. 이 대대적인 작업 덕분에 우리는 황석영의 ‘현대식 교량’ 위를 건너다니며 소설 안에 기록된 시대의 풍경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작업은 그 첫걸음부터 예상을 뛰어넘는다. 우리는 흔히 ‘한국 근현대문학사’를 떠올릴 때 관습적으로 혹은 너무도 자명하다는 듯 그 시작점에 ‘이광수’를 놓는다. 그러나 황석영은 이광수로부터 연원하는 한국 근현대문학사의 출발점을 물리치고 염상섭을 그 시작으로 두었다. 그것은 이광수의 소설 안에 ‘사람’의 세계가 부족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세계의 실감을 소설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보는 작가는 염상섭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단편소설 「전화」를 첫머리에 두면서, 이 작품에 이르러 비로소 구체적인 일상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통해 모호한 계몽주의를 벗어나 한국 근현대문학의 형상이 갖추어졌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 작업은 지금의 거장 황석영을 있게 한 선배들의 작품과 그들이 살다 간 시대를 다루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역사의 현장 어디쯤에선가 한번쯤 어깨를 부딪치고 술잔을 기울인 동료들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작품을 해설하는 데 작품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한 작가의 개인사이다. 그것은 어디에 기록된 무엇이라기보다, 구체적인 관계와 뜨거운 체험 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기억’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의 주체가 사라지면 그 기억들 역시 증발해버리고 만다. 작가의 ‘현대식 교량’에 대한 열망, 그리고 ‘증언’에 대한 책무는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그가 “아, 정말로 이문구를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옛 벗들의 삶과 작품을 객관적으로 대하려고 애쓰면서도 추억을 자꾸 곱씹게 되는 것은 나도 늙어간다는 것이리라”(4권, 140쪽)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 목소리의 생생함에 놀라는 한편, 이와 같은 해설을 다른 어느 자리에서도 만나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스스로를 “소설가 남편”으로 지칭하며 객관적 서술을 시도하지만 속절없는 회한을 차마 숨길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는 마음이 젖어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이가 소설가 남편과 함께 전라도에 내려갔을 때는 1976년 서른두 살이었고 서울로 돌아온 것이 2004년 예순 살이었으니 광주에서 그이는 한평생을 보낸 셈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떠맡은 셈이었고, 내가 길을 떠나 새로운 것들과 대면하고 세계를 겪어가는 동안 그이는 ‘빈터’에 남아서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고 남겨진 이웃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뒷마무리까지 해냈다. 이것이 내가 문학과 인생에서 놓친 부분이며 그이가 채워놓은 부분이다.”(7권, 95쪽)
선배와 동료 작가들에 대한 증언 이후 작가는 ‘현대식 교량’의 한쪽 끝에서 현대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식민지 시대부터 2000년대까지를 담아낸 전10권 가운데 세 권(8~10권)이 1990년대 이후의 소설들을 담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수적으로 불균형하다고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이 여타의 선집과 구분되는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시대에 중점을 둘 것. 이러한 이유로 꽉 채우고 끝이 난 ‘100’이 아니라 이를 채우고 다시 시작되는 ‘101’이 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지속되는 한, 소설 또한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1897년에 태어난 작가 염상섭의 「전화」로 시작된 대장정은 1980년에 태어난 작가 김애란의 「서른」으로 끝을 맺는다. 황석영이 이 젊은 작가의 작품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시대가 바뀌어도 영원할 작가와 소설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누가 이런 꼴의 지옥을 만들었는가. 작가란 무엇인가. 소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정경과 기록은 저 어둡고 캄캄했던 식민지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닿는 기록이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기를 넘어서 다시 시작해야 할 또다른 출발점이다. 한국문학은 그런 생명력을 가진 문학이다. 나는 무엇이 되었든 당대와 현존이 가장 힘이 있다는 사실을 젊은 김애란의 소설에서 재삼 확인한다.”(10권, 388쪽)
■ 각 권 해설에서
_그는 만만치 않은 그간의 한국 근대문학 연구사의 두께를 소설가의 직관과 감성으로 단번에 뚫고 나올 줄 알았으며, 난삽한 관념적 용어로 설명되는 당대의 문학사적 맥락을 당신의 경험담에 기초한 구체적인 상황 제시로 산뜻하게 풀어낼 줄 알았다. 이를테면, ‘식민지 근대’를 ‘도둑이 집안에 들어올 때 걸쳐놓은 사다리’로 비유하는 대목이나 채만식의 「치숙痴叔」에 나타나는 풍자를 ‘봉산탈춤의 양반과장에 나오는 말뚝이 대목’과 겹쳐 읽어내는 모습, 이상이 경영했다가 말아먹은 다방 ‘제비’나 ‘낙랑파라’ 등 사실상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이나 변명이 면제된 모더니스트들의 ‘자발적 왕따의 소외 공간’을 토마스 만의 ‘맨 뒷자리 의자’로 이해하는 장면 등은 오십여 년에 이르는 작가적 연륜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_그가 공들여 묘사하고 있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식민지 시대 작가들의 미처 제대로 발굴되지 못한 말년의 삶에 대한 복원은 이 시리즈의 첫 권이 거둔 가외의 소득이라고 할 만하다. 선생과도 여러 차례 주고받은 이야기이지만, 식민지 시대 작가들의 삶과 운명을 생각하면 어느 누군들 숙연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난과 요절, 식민지 현실의 정치적 억압과 구속, 전통에 대한 뿌리 깊은 애증…… 특히 ‘방북’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경험으로 확인하게 된 월북 문인들의 말년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치는 대목이 적지 않다. (…)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대목들을 쉽사리 잊기 어려울 것이다. 선생의 입을 통함으로써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작품이 되었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놀라운 서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_신수정 해설, 「어느 아이러니스트의 소설 읽기」,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_01 식민지의 어둠
_‘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의 두번째 권 『해방과 전쟁』 편은 선생의 균형 잡힌 시선과 문학적 형식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확인하게 해주는 대목으로 가득차 있다. 21세기에 다시 쓰는 ‘해방과 전쟁’의 소설사는 황석영의 필터를 통과함으로써 이데올로기로의 왜곡된 편향을 멈추고 이제까지 지나치게 오른쪽과 왼쪽으로 구부려졌던 각도를 재조정하게 된다. 그것은 폭압적인 이념의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해나온 자만이 견지할 수 있는 성숙한 시선,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대담한 자기 완결성, 다가올 시간에 대한 장대한 구상력 등이 바탕이 될 때에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선생은 그 일을 해냈다. 이 기획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와 동행하는 자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_신수정 해설, 「남북 ‘합토제’로서의 소설」,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_02 해방과 전쟁
_‘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세번째 권은 주로 1930년을 전후하여 1942년에 이르는 시기에 태어난 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작품을 선정했다. 그러다보니 이들 작가들의 문학적 이력으로부터 소위 ‘문학적 가계’라고 할 만한 ‘문학 족보’를 꾸릴 수 있게 되었다. 1930년 즈음 탄생한 이 시기 작가들은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서기 전 청소년기에 해방과 전쟁이라는 우리 민족 공통의 엄청난 사건에 노출된 세대이다. 그들의 자전적인 이력은 많은 경우 이 민족사의 재난과 무관하지 않다. 아마도 이 재난의 트라우마는 이들을 작가라는 운명으로 이끈 절대적인 계기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가들에게서 발견되는 개인사의 우여곡절들은 그것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작가의 운명이라고 하는 것, 작가가 된다는 것,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어떤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_신수정 해설, 「잔인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_03 폐허의 잡초처럼
_나는 1970년대 한국소설을 소개하면서 가벼운 흥분을 느낀다. 어느 시대가 그러하지 않으랴마는,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들은 늘 우리를 전율케 한다. 이 시기 작가들은 오늘날 지금 이곳의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상징적 좌표들이다. 이문구, 이청준, 김원일의 유년은 온통 ‘좌익 아버지’로 인한 가족의 몰락과 해체의 경험으로 얼룩져 있으며, 황석영, 이문구, 송기숙 등의 삶은 유신독재체제의 정치적 억압과 감금의 경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좌에서 우로 급격하게 자신의 이념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병주의 사상적 행로는 또 어떤가. 주로 식민지 말기에 태어나 유년기에 해방과 전쟁을 겪고 청년기에 이르러 유신독재체제의 억압을 경험하며 이에 저항하다가 정치적 좌절을 경험한 이 세대의 삶은 오늘의 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현실적 조건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들로 빛난다.
_황석영 선생은 자신이 포함된 이 시기 작품들을 개관하며 “옛 벗들의 삶과 작품을 객관적으로 대하려고 애쓰면서도 추억을 자꾸 곱씹게 되는 것은 나도 늙어간다는 것이리라”(140쪽)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이 소회가 실감나는 것은 이 시기 소설가들과 선생이 맺고 있는 허다한 인연 탓이 크다.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선생과 삶의 한 갈피를 함께하며 한국문학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선생의 회고는 그 자체 인생의 진면목에 대한 깨우침이자 한국문학사의 이면에 해당되며 당대의 정치사회적 맥락에 대한 술회에 가깝다. 한없는 설렘과 가슴 저린 연민이 그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그런 면에서 당연하다고 할 만하다.
_신수정 해설, 「현대식 교량을 꿈꾸며」,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_04 폭력의 근대화
_1970년대의 두번째 권은 박완서에서 시작해 오정희로 마무리된다. 우리 소설사는 197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탁월한 여성 소설가들을 배출하기 시작한다. (…) 1970년대에 이르면 ‘여성소설’의 맹아에 가까운 어떤 움직임을 간파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 소개된 박완서, 서영은, 오정희 등을 필두로 이전 시대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작가들, 예컨대 손소희, 임옥인, 한무숙, 한말숙, 강신재, 정연희 등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 문단은 여성 작가들을 제외하고 그 구체적 양상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 우리의 여성 소설가는, 그 면면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문단의 구색용에서 벗어나 한국소설을 거론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될 문단의 중심축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되고 있기도 하다. 황석영 선생과 내가 1970년대의 두번째 권을 여성 작가와 함께 시작하고 마무리하기로 한 것은 바로 그러한 움직임을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_신수정 해설, 「오래된 이태리 영화와 같은」,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_05 생존의 상처
_이번에 묶인 작가들은 1954년생인 이창동, 임철우 등을 제외하면, 대개 해방이 되던 1945년부터 남북한 단독정부체제가 수립된 1948년 즈음 출생한 사람들이 많다. 이른바, 해방둥이. 그들은 식민지의 남루한 기억에서 자유롭다. 이 말은 그들이 식민지의 경험과 무관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식민지 시대의 잔재는 현재의 그들을 구속하는 기원으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기는 하다. 무엇보다도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월북과 그로 인한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몇몇 작가들, 즉 김성동, 김원우, 이문열 등은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의 이념에 대한 자신들 나름의 자의식을 자기 문학의 근저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윗세대 작가들, 예컨대 이문구(1941), 김원일(1942) 등과 비교하면 이 자의식의 양상이 현저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김원우가 회고하는 있는 것처럼, 이 ‘해방둥이’ 작가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6·25를 겪고 그들의 아비와 작별하게 되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아버지와의 유대 경험 자체가 약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아버지란 어머니의 회고에 의한 왜곡된 기억의 재구성일 뿐이다. 이 경우, 남편의 이념적 선택이 초래한 일상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던 아내들에게 남편과 관련된 어떤 것, 즉 일상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열정에 대한 미화를 기대하기란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다. ‘해방둥이’들의 소설이 윗세대 형들의 작품과 달리 이념에 냉소적인 것은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자유 대신 어머니의 일상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 일화를 통해 1945년 해방이 한국 작가들의 심리적인 분기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해방 전에 태어난 작가들과 해방 후 출생한 작가들 사이에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하는 것 같다.
_신수정 해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_06 억압과 욕망
_1980년대 소설 두번째 권은 1950년 이후 출생한 작가들로 시작한다. 우리는 이미 앞 권에서 1980년대 소설의 첫번째 주자로 1945년 해방 이후 태어난 작가들의 소설을 자세하게 살펴본 바 있다. 최인호(1945), 박범신(1946), 이외수(1946), 윤후명(1946), 김원우(1947), 송기원(1947), 김성동(1947), 이문열(1948) 등이 바로 그 주역들이다. 예외라면 1954년 동갑내기 작가인 이창동, 임철우 정도랄까. 그 결과 우리는 ‘아비’가 부재한 상황에서 태어나 ‘억척어멈’의 모성 아래 유년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해방둥이’ 작가들의 내면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한국전쟁 이후 태어나 이십대에 ‘5월 광주’를 경험한 세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간이다. 이창동과 임철우의 소설을 통해 이 세대의 경험의 일단을 맛보기는 했으나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 좋다. 이제 그때 미처 못다 한 이야기들을 시작할 차례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리즈는 이창동, 임철우를 잇는 1950년대생 작가들의 속살을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_신수정 해설, 「‘광주’에서 다시 ‘광주’로」,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_07 변혁과 미완의 출발
_황석영 선생에게 있어 1990년대는 소위 ‘잃어버린 십 년’이라고 할 만하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선생은 1989년 방북 이후 독일과 미국 등지를 떠돌며 망명자의 신분으로 일상을 영위한 바 있으며 1993년 귀국한 뒤에도 1998년 석방되기까지 다시 오 년여의 시간을 감옥의 독방에서 세상과 격리된 채 보내기도 했다. (…) 그에게 1990년대 소설들은 동일한 시간대를 공유하는 ‘동시간대’의 산물이 아니라 뒤늦게 따라 읽은 ‘지나간 시간’의 기록에 가깝다. 이번 시리즈가 기왕의 것과 달리 작가의 삶을 회고하고 선생과의 인연을 되돌아보기보다 주로 작품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선생은 이번 기획을 통해 ‘빠진 이’처럼 흑백의 기억으로 남아 있던 자신의 1990년대에 총천연색의 파란만장한 추억을 선사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역시 그의 추억을 통해 오늘 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현재의 태반을 확인하는 행운을 누렸다.
_신수정 해설, 「찬미와 묵시를 넘어」,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_08 나와 너
_이번 권은 1990년대 소설 두번째 편이다. 우리는 이번 권을 기획하면서 1990년대 소설의 층위가 오늘날 우리 문학의 핵심에 해당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앞 권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이번에 살펴볼 작가들까지, 1990년대 초중반을 전후하여 등단한 작가들은 오늘날 우리 문단의 중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소설세계를 개관하는 것은 지금 이곳의 문학의 총체를 확인하는 작업과 다를 바 없다.
_1990년대는 우리 문학이 과도한 정치적 상상력으로부터 벗어나 문학의 독자적 영역에 대한 관심을 활발하게 펼쳐 보이기 시작한 시기다. 민족이나 역사처럼 문학을 둘러싼 외부 영역으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오기보다 그 자신의 내적 준거나 장르적 관습에 대한 회의나 갱신을 통해 작품의 새로운 동력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전면화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_신수정 해설, 「우리 소설이 ‘허깨비’를 만날 때」,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_09 위태로운 일상
_마침내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기획이 마지막 권에 이르렀다. 이번 권에서 우리는 지금 이곳의 소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김훈에서부터 김애란에 이르기까지 이번 권의 작가들은 세대의 층위를 아우르며 현재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애초 백 편으로 기획되었던 작품의 수가 백한 편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백 편에 이어지는 나머지 한 편의 소설을 통하여 우리 소설의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황석영 선생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이곳의 삶이 지속되는 한, 소설은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_나뭇가지나 전깃줄에 앉아 있는 가을 들판의 철새들은 보다 큰 무리의 철새들이 날아들면 일단 하늘로 일제히 떠올라 새로운 무리와 더불어 허공을 빙빙 돌다가 어느 순간 다시 맞춤한 간격으로 내려앉기 시작한다고 한다. 선생은 말한다. 지금 우리의 세계는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허공을 맴돌고 있는 때라고. 그리고 우리의 작업이 ‘새들이 다시 내려앉는 것’에 관여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이미 그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근대 백 년의 소설들을 따라 읽고 마침내 후배 소설가의 통찰력에 절대적 지지를 아끼지 않는 선생의 행위는 새로 날아든 새들과 허공으로 함께 날아오르는 날갯짓에 다름 아니다. 이제 ‘맞춤한 간격’만 잡으면 된다. 그럴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_신수정 해설, 「지금은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허공을 맴돌 때」,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_10 너에게로 가는 길
■ 황석영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중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돈다.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등에서 일하며 떠돌다가 승려가 되기 위해 입산,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단편소설 「탑塔」이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방북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했고, 1993년 귀국 후 방북 사건으로 7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사면 석방되었다. 1989년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변혁을 꿈꾸며 투쟁했던 이들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장편소설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객지』 『가객』 『삼포 가는 길』 『한씨연대기』 『무기의 그늘』 『장길산』 『오래된 정원』 『손님』 『모랫말 아이들』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등이 있다.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등 세계 각지에서 『오래된 정원』 『객지』 『손님』 『무기의 그늘』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이 번역 출간되었다.
■ 신수정
문학평론가.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 고석규문학상, 소천비평상 수상. 평론집 『푸줏간에 걸린 고기』, 저서 『90년대 문학 어떻게 볼 것인가』(공저) 등이 있다.
염상섭부터 김애란까지,
거장 황석영과 함께 걷는 한국문학 100년의 숲
1962년 등단, 오십여 년 한결같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온 거장 황석영이 지난 100년간 발표된 한국 소설문학 작품들 가운데 직접 가려 뽑은 빼어난 단편 101편과 그가 전하는 우리 문학 이야기. 작가 황석영이 온몸으로 겪어낸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과거의 작품들은 그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부활했고, 오늘의 작품들은 그 깊이가 달라졌다. 긴 시간 현역작가로 활동해온 그이기에, 그리고 당대와 언제나 함께 호흡해온 그이기에 가능한 "황석영의 한국문학 읽기"! 특유의 입담과 깊이 있는 통찰, 과거와 오늘의 작품을 새로 읽는 데 있어 반성을 주저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우리 문학에 다가서기 어려워하는 독자들까지도 작품 곁으로 성큼 이끌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