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천하도와 같은 세계지도를 단지 세계의 지리적 실체를 확인하는 용도로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지도상에서 ‘객관세계’를 확인하는 작업은 어떻게 보면 부차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누워서 세상을 유람하는 ‘와유(臥遊)’의 즐거움이 더 컸을 것이다. 객관적 실재를 뛰어넘어 상상력의 산물로 가득찬 세계를 여유롭게 유람했던 것이다.” (머리말에서)
문학동네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의 열세번째 책 『천하도―조선의 코스모그래피』가 출간되었다. 천하도는 조선의 고유한 세계지도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 관념이 내재하던 동아시아 사회에서 세계를 원형으로 표현한 지도는 찾기 어려웠다. 원형 천하도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전하며, 조선에서 제작된 독특한 세계지도로 인정받는다. 목판본, 필사본 상관없이 천하도의 구조는 똑같다. 둥그런 원 안에 내대륙과 내해, 외대륙과 외해가 그려져 있는데, 이런 구조 또한 다른 문화권의 세계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제주대 지리교육과 오상학 교수가 한국인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지도, 천하도의 이모저모를 알기 쉽게 풀어 썼다.
하늘과 땅, 실재와 상상이 뒤섞인 천하도 속으로 떠나는 여행
천하도는 단순한 세계지도가 아니다. 조선의 코스모그래피(cosmography), 즉 천문과 지리의 내용을 하나로 구성한 우주지(宇宙誌)로 보아야 한다. ‘하늘 아래를 그린 지도’라는 뜻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천하도의 원을 땅, 지상세계로만 이해해왔다. 따라서 천하도에 담긴 우주지적 의미를 궁리하지 못했다. 하늘과 땅은 분리된 게 아니라 오히려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는 천지상관적 사고가 천하도의 바탕에 깔려 있음을 짚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천하도에는 지상세계뿐만 아니라 하늘의 세계도 표현되어 있다. 이는 천하도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두어야 할 점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땅을 원형으로 표현한 사례가 거의 없다. 원으로 지상세계를 표현하는 것은 지리적 세계에 대한 일대의 변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천원지방 관념에서 땅은 네모난 평지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원형 천하도에서 원을 땅이 아니라 하늘을 표상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존하는 천하도 중에는 원 바깥쪽에 별자리를 배치한 것이 있다. 이는 천하도의 원이 땅이 아니라 하늘을 표현한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전통적인 천원지방 관념을 지도의 기초로 삼아 고대 중국의 고전 『산해경山海經』을 통해 내대륙-내해-외대륙-외해의 구조를 만들고, 기존 직방세계(職方世界, 중국과 그 주변 조공국으로 이루어진 세계) 중심의 지도를 토대로 내대륙을 그린 것이 바로 천하도다.
천하도에 표현된 지리적 세계는 중화적 세계 인식에 기초한다. 천하도에는 유가(儒家)에서 이단서로 취급하던 『산해경』의 지명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유학자들이 별다른 거부감 없이 천하도를 수용한 이유는 천하도가 지닌 중화적 세계관 때문이다. 하지만 원형 천하도가 반(反)서학적 분위기에서 성리학 질서를 고수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거나 중국에 그 기원을 둔다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천하도는 확장된 세계 인식을 담기 위한 새로운 지도로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이 옳다. 지도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서양이 아닌 동양의 전통 속에서 찾았을 뿐이다.
또한 천하도는 천계(天界), 지계(地界), 인계(人界)가 하나로 연결된 공간을 표현하는데 이는 신선도의 기본 원리인 삼재일체(三才一體)를 뜻한다. 즉, 하늘과 땅과 인간의 합일을 구현한 것이다. 실제로 천하도에는 신선 관련 지명이 다수 수록되었으며 해와 달의 출입처, 장생을 상징하는 수목도 그려져 있다. 천원지방 관념과 중화적 세계관만 보존된다면 신선도의 요소를 천하도에 수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덧붙여 천하도가 서구식 세계지도의 영향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이 확대된 배경에서 출현한 것은 맞지만, 서구식 세계지도가 원형 천하도 제작에 직접 활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형 천하도와 서구식 세계지도는 전체적인 구도뿐만 아니라 세부 형태에서도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서구식 세계지도에 보이는 한역(漢譯) 지명이 원형 천하도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등 내용 면에서도 일치하는 부분이 없다.
“천하도는 17세기 이후 서양의 지리 지식이 도입되어 세계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어가던 상황에서 제작되었다. 전통적인 천원지방의 관념과 중화적 세계 인식을 근간으로 지리적 세계뿐만 아니라 하늘의 영역까지도 같이 표현한 우주지적 성격을 지니며, 불로장생을 염원하는 신선사상도 부분적으로 반영된, 조선의 독특한 세계지도라 할 수 있다.”(본문에서)
지도에는 당대인의 세계관이 반영되기 마련인바 천하도 또한 다르지 않다.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 광대무변한 세상(천지)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그들의 눈에 비친, 혹은 그들이 머릿속으로 그려낸 오묘한 세계가 천하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그곳으로 떠나는 여행에 충실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