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동청소년문학은 그동안 어떤 질문을 던져왔는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질문은 결국 윤리적 질문이다.”
뜨겁고 치열한 현장비평가 10년 유영진의 새 평론집
끝없는 응전과 깊은 통찰로 아동청소년문학을 꿰뚫다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유영진이 두번째 평론집 『동화의 윤리―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서』를 펴냈다. 동화는 물론 청소년문학에 대한 총론과, 주요 작품을 읽고 쓴 서평을 담았다. 2005년 창비어린이 신인평론상을 받으며 데뷔한 이래 유영진은 가장 주목받는 신예 비평가로 떠올랐으며 아동청소년문학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양분삼아 활발히 현장비평을 이어왔다. 현재 월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위원, 한국작가회의 기관지 『내일을 여는 작가』 편집위원, 문학동네 아동청소년문학 기획위원이며,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첫 평론집 『몸의 상상력과 동화』 이후 7년 만에 출간된 이번 평론집은 “자본의 시대, 동화의 행로를 열어가고자 실천적인 현장비평에 끈질기게 착목”(아동문학평론가 김상욱)한 그의 새 결실이며, “어린이문학과 교육 양쪽의 현장을 오가며 아이들의 마음밭을 지키는 듬직한 비평가로 성장해가리라는 믿음”(아동문학평론가 이재복)에 대한 응답이다. 머리말에 밝혔듯 그는 “우리 사회의 질병이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지, 어른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아이들에게 어떤 증상으로 표출되는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거듭하여, 이에 대한 답으로 ‘동화의 윤리’라는 제목을 붙여 이 책을 내놓았다. 평론가 유영진의 더욱 넓고 깊어진 비평안(批評眼)이 미덥다. ‘좋은 동화와 청소년소설이란 무엇이며, 아동청소년문학의 독자는 누구이고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은 독자에게 이 책을 적극 권한다. 문학과 교육의 현장에 발붙인 믿음직한 비평가가 우리를 이끌리라.
2008년부터 2015년 봄까지 여러 지면에 내보인 글 중 28편을 가려 담은 『동화의 윤리―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서』는 저자의 그간의 활동을 살필 수 있는 궤적인 동시에, 아동청소년문학 세계를 꿰어볼 수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이다. 매해 쏟아지듯 출간되는 수많은 동화와 청소년소설. 그 속에서 우리는 좋은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고 헤맨 건 아닐까. 그 의심과 우려를 씻어주려는 듯, 눈 밝은 저자는 “가슴을 울리”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산출”하는 작품을 소개하며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길을 놓는다. 1부 ‘이해되는 것과 이해되지 않는 것 사이에서’는 아동청소년문학에 관한 평론을 모았다. 아동청소년문학의 전반적인 흐름에서부터 각 작품 속에 투영된 한국사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총론이다. 박기범, 유은실, 김우경 등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의 여러 양태와 과제, 장르의 경계와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2부 ‘보여주는 동화와 질문하는 소설 사이에서’는 이현, 송언, 김이윤, 방미진, 이금이 등의 주요 작품을 읽고 쓴 서평을 모았다. 패트릭 네스의 소설과 남호섭의 동시집에 관한 의견도 담았다. 작품 속 인물의 욕망, 갈등 구조, 서사의 전개 방법 등 개별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나간 그의 글은 문학이 지닌 힘과 매력을 일깨우며 독자들로 하여금 아동청소년문학 ‘새롭게 읽기’를 가능케 한다.
우리 뼛속 깊이까지 자리잡은 성공 신화를 깨지 않는 한 모든 해결책은 미봉책일 뿐이다. 과연 우리 어린이문학은 성공 신화에서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 여기서 결국 어린이문학은 윤리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내 언술 행위가 무의식 중에 기존 질서 유지에 복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동화의 윤리―성공 신화의 폐기」, 16쪽)
무한 경쟁과 성공 신화를 부추기는 대한민국. 정치적, 사회적 퇴행을 겪고 있는 오늘날어른들의 그릇된 욕망에 의해 아이들은 전체성 상실과 ‘학습-기계’로의 부분 대상화를 겪고 있으며, 문학은 “별다른 쓸모가 없으며” “긴 시간 뒤에야 약효를 발휘”하는 “무용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누군가는 침묵하고 누군가는 분개하는 이곳에서, 저자는 ‘문학의 윤리’를 말한다. 저자에게 문학은 곧 삶을 향한 생생한 ‘질문’이다. 경쟁과 성공만을 강요하는 사회에 맞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를 묻는 윤리적 질문. 문학은, 특히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은 그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정글의 야수처럼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는 아이들의 삶을 위로해주고, 그들의 삶을 옹호해줄 이는 누구인가? 바로 동화작가이다. 그동안 자시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 자신의 창작 역량을 가늠해온 작가들에게 이제는 별다른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제 우리 아이들을 위해 전사처럼 싸워줄 작가들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전환기 아동문학의 상상력―리얼리즘 정신의 갱신과 확장」, 35-37쪽)
아이들을 둘러싼 세계가 그러하듯 아이들의 고민과 사고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아이들의 아름답고 소중한 삶을 누가 벼랑으로 몰고 가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이 아이들을 살려야 하나. 유영진의 비평은 “아동청소년문학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함으로써 “타자에 대한 감각”과 “연대”의 가치가 회복 가능하리라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성공 신화에 파묻힌 기존 동화의 통념을 깨뜨리고 “아이들 삶에 접근”할 것을 주문하며 우리 동화와 청소년소설 작가들에게 두터운 신뢰와 기대를 보낸다. 파국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이 사회의 뱃머리를 돌릴 수 있는 것은 이제 작가들의 실천에 달렸다. “아이들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아이들의 육성을 듣고 진정으로 아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가 당면한 과제이자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들의 사명이다.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타자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꿈꿀 수 있을까?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나는 무엇인가? 나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되물을 수 있는 청소년소설을 희구한다. 문학은 늘 무용성이라는 것을 무기로 해서 시대의 벽에 균열과 파열구를 내지 않았던가.(「몸의 상상력과 청소년소설」, 116쪽)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어른의 욕망이 담긴 피리 소리를 따라 사라져버린 우리 아이들을, 이 아이들의 삶의 자리를 되찾”고자 하는 한 비평가의 간절한 몸부림이다.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세계와의 관계”를 맺게 하는 매개자로서 문학이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아동청소년문학 생태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작가, 교사, 비평가, 학부모 등―의 각고의 노력이 절실하다. 그들에게 유영진의 비평은 손을 내민다. “삶의 빛나는 진실”을 발견하고 “비의”를 제대로 목도하여 사라진 아이들을 찾기 위해, 우리 사회가 지닌 무수한 난제를 풀기 위해, 아동청소년문학 비평의 지평을 넓힌다.
*추천사
아동청소년기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중첩되어 현전하며 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아동청소년문학 역시 작가가 자기 안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통해 문학적 대상을 바라보고 그려내는 자기표현 양식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작가주의적 자각을 가진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이 평론집은 말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적 틀들은 그러한 작가들의 작품에 접근하는 데 필요조건일 것이다. 그러한 정신분석학적 틀들을 좀더 섬세화하여 글쓰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사회적 장들과는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파헤쳐 새로운 작가세대에 문학적·시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리라. 무거운 숙제지만 평론가로서 그것은 쉽게 만나기 어려운 행운이기도 할 것이다. _김진경(시인,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