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바젤은 왜 홍콩에 갔을까?
2013년 봄, 완차이에 위치한 홍콩 컨벤션 전시 센터에서 갤러리스트들의 긴장, 설렘, 기대감이 뒤섞인 채 ‘아트 바젤 홍콩’이 경쾌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아트 바젤(Art Basel)’은 1970년 바젤에서 활동하는 화상(畵商)들이 주체가 되어 설립된 이래, 동시대 미술품을 선보이는 국제적인 행사로 발전해왔으며 뉴욕의 ‘아모리 쇼’, 런던의 ‘프리즈 아트페어’, 파리의 ‘피악’과 더불어 세계 주요 아트페어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스위스의 아트 바젤은 세계 유수의 갤러리들이 참여해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수준 높은 작품이 대거 출품되는 등 철저한 기획력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런 아트 바젤이 2002년 미국 마이애미에 이어 2013년에는 홍콩에 상륙하며 아시아 미술시장 공략에 나섰다.
아시아의 수많은 도시 가운데 아트 바젤이 홍콩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홍콩에는 성공적인 국제 행사를 치르기 위한 모든 기반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홍콩은 크리스티와 소더비를 필두로 경매시장이 급성장하며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가 되었다. 자유무역항이자 무관세 지역이어서 아시아 컬렉터들의 접근 또한 용이하다. 미술 경매의 중심축을 차지하고 있는 런던과 뉴욕은 국제 금융 시장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시아 금융 시장의 허브인 홍콩이 아시아 미술 경매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미술 경매시장의 큰손으로 차이나 머니가 등장하면서 홍콩은 아시아 경매의 중심지로 우뚝 올라선 것이다.
홍콩 미술시장을 알면 세계 미술시장이 보인다!
아트 바젤이 홍콩에 상륙하기 전부터 홍콩 미술계의 변화는 심상치 않았다. 2008년,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고 갈 때 홍콩은 아시아에 국제 아트페어의 서막을 열었다. 그 누구도 성공을 가늠하지 못했고, 오히려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는 아트페어의 붐에 편승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후 세계 미술계는 홍콩이 품은 가능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트 바젤 홍콩의 전신인 ‘아트 홍콩’의 성공적인 데뷔는 한 마디로 그저 그런 아트페어일 거라 예상했던 사람들에게 멋지게 한 방을 날린 것이다. 그 후 홍콩 미술계는 아시아 현대미술을 바탕으로 전 세계 미술품을 아우르며 해마다 급성장을 거듭해왔다.
아시아 미술시장을 연구하면서 바라본 2013년과 2014년 홍콩 미술계의 변화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크리스티, 소더비 등 세계적인 경매회사들이 홍콩을 아시아 거점으로 삼은 데 이어, 한국의 서울옥션, 타이완의 라베넬, 중국 본토의 폴리옥션, 차이나가디언의 진출로 홍콩 경매시장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살인적인 임대료로 굴지의 금융 기업들마저 버티기 힘들다는 홍콩 센트럴에 갤러리들이 속속 둥지를 틀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새로운 미술관이 되겠다는 포부로 엠플러스 같은 미술관이 문을 여는 등 마치 홍콩이라는 도시 전체가 미술이라는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서문 중에서
<아트마켓 홍콩>의 두 지은이는 홍콩 미술계의 비약적인 발전을 눈여겨보고 홍콩에 이처럼 강력한 미술 바람이 불게 된 배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연구의 결과를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1장에서는 홍콩 미술의 시작점인 미술시장의 발전 현황을 아트페어와 경매시장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2013년 ‘아트 바젤 홍콩’의 성공적인 데뷔 이면에는 2008년 시작된 ‘아트 홍콩’의 뒷받침이 있었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의 영향권 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아트 홍콩은 꿋꿋하게 국제적인 갤러리를 유치하고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으며, 꾸준한 관람객 증가로 홍콩이라는 도시의 시장성을 입증했다. 이 후 세계적인 아트페어 브랜드인 아트 바젤 홍콩이 론칭하고, 소더비, 크리스티 등 메이저 경매회사들과 아시아 주요 경매회사들이 속속 홍콩으로 진출을 모색하면서 명실상부한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홍콩 미술계를 살핀다.
‣ 2장에서는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가 된 홍콩에서 새롭게 그려지고 있는 갤러리 지도를 따라간다. 전통적으로 홍콩 갤러리들은 소호의 할리우드 로드를 따라 자리 잡고 있었고, 현대미술 전문 갤러리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2010년을 전후로 홍콩 센트럴을 중심으로 영국, 미국, 프랑스, 벨기에의 갤러리들이 하나둘 분점을 내면서 홍콩의 갤러리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한아트TZ갤러리, 레만 모핀 갤러리, 갤러리 페로탱 등 튼튼한 자본과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으로 중무장한 국제적인 갤러리와 기존의 대형 갤러리 들이 홍콩 센트럴의 갤러리 지도를 넓히고 있다면, 센트럴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중소 지역 갤러리들은 웡척항, 애버딘, 차이완 등지로 과감히 이전을 감행하고 있다. 약동하는 홍콩 현대미술을 이끌어가고 있는 이들 새로운 갤러리들의 핫스폿을 소개한다.
‣ 3장에서는 홍콩 미술시장의 비약적인 성장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비영리 기관들을 살펴본다. 홍콩 미술관을 필두로 실험적인 작가와 전시를 선보이는 대안 공간, 작가들이 모여 있는 아티스트 빌리지 등 각각의 목표를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비영리 기관들이 그 주인공이다. 홍콩 정부는 미술을 중심으로 한 문화 융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현대미술과 시각문화를 아우르는 미술관이 되겠다는 목표로 건설되고 있는 엠플러스가 있으며, 그 밖에 홍콩 곳곳에서 역사적인 건축물을 전시 및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들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미술계의 발전이 문화를 성장시키고,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요인임을 홍콩 정부가 인식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이를 통해 ‘마켓 플레이스’로의 영역을 뛰어넘어 미술 생태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노력하며 파리, 뉴욕, 런던, 베를린과 같은 미술계 중심 도시로 도약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책에는 이 외에도 본문 사이사이 ‘히든 노트(Hidden Note)’와 ‘인터뷰 노트(Interview Note)’를 수록해 미술시장을 살펴보는 데 필요한 정보와 홍콩 미술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한다. 또한 권말에는 여행객들이 변화무쌍한 홍콩 미술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간략하지만 알찬 정보도 함께 실었다. 일명 ‘3일 동안 돌아보는 리얼 홍콩 아트 트립!’ 책 속 갤러리들 중에서 알짜배기만 뽑아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85개에 달하는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들의 주소를 한 데 모아 미술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팁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