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과 거짓 속에 살아가길 거부한 고독한 인간, 뫼르소
『이방인』은 삶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며 실존을 위한 용기 있는 반항이다!
프랑스 현대문학의 신화 알베르 카뮈의 첫 소설 『이방인』은 1942년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유명한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카뮈의 『이방인』은 부조리한 현실의 허무와 절망 속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했던 그의 실존주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카뮈를 20세기 대표 작가 반열에 올린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혔으며 지금도 꾸준히 읽히는 고전 중 하나이다.
2013년 알베르 카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이 만화 작가 자크 페랑데즈의 손끝에서 재탄생했다. 카뮈와 같은 알제리 출신으로 알제리와 프랑스의 관계와 역사를 오랜 세월 그림에 담아온 자크 페랑데즈는 갈리마르 출판사와 알베르 카뮈의 딸 카트린 카뮈의 제안으로 카뮈의 원작을 그림으로 재구성해냈다.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고독한 이방인뫼르소의 내면이깊이 있는 시선과 섬세한 필치로 펼쳐진다.
나는 카뮈와 알제리로 연결된다. 카뮈의 작품은 알제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곳에서 그의 작품세계가 만들어졌으며, 무심한 행복과 비극이 공존하는 그 독특한 쾌락주의를 얻었다. 카뮈의 이야기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그 공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_자크 페랑데즈, <리브레리 뤼시올>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알제리에 관한 그림을 많이 그려왔다. 25년간 알제리와 프랑스에 관한 역사 만화 ‘동방 수첩’을 그리면서 종종 카뮈의 작품을 참고하곤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소설 『손님』(문학동네 출간, 2014)을 만화로 각색하게 됐다. 내 작업에 만족한 갈리마르 출판사와 알베르 카뮈의 딸 카트린 카뮈가 내게 카뮈의 다른 작품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이방인』을 만화로 재구성하게 됐다. _자크 페랑데즈, <옹라뤼>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뫼르소는 사회적 난파물이 아니다. 그는 어둠을 남기지 않는 태양에게 매료당한 가련하고 벌거벗은 남자일 뿐이다. 뫼르소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절대와 진실을 향한 열정에 의해서만 살아 숨쉬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이고 우리의 감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부정적이지만, 그러나 그 진실이 없이는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한 탐구는 영원히 불가능한 것이다. _알베르 카뮈(1955년 영어판 서문에서)
『이방인』은 다른 모든 훌륭한 소설들처럼 시대를 앞질렀다. 주어진 자유로는 도덕적, 문화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없는 한 남자의 절망적인 모습을 전면에 드러낸다. 그 자유는 외려 남자의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그에게서 연대감과 열정과 야망을 앗아간다. 하여 그를 수동적이고 기계적이고 동물보다 아주 조금 덜 본능적일 뿐인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그가 사형선고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를 교수대로 보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하지만 단두대에서 그의 머리가 굴러떨어진다고 해도 나는 그를 위해 울지 않을 것이다. _마리오 바르가스 요사(1988년 스페인어판 에필로그에서)
만약 청춘의 의미가 세계라는 것과 항상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라면, 이 소설은 그야말로 청춘소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카뮈는 한 사람의 비극을 통해 자기 자신의 근원적 주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얼핏 매우 단순한 구조의 소설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성적인 의미가 작용하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_시미즈 도루(불문학자, 1990년 일본어판 해설에서)
알베르 카뮈는 그에게 가해지는 온갖 압박들을 이겨내고 굳건히 서 있었다. 그 시대에 그런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카뮈를 깊이 존경한다. 그는 내게 본보기가 되는 작가였다. _이스마일 카다레(〈더 패리스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원칙”을 거부하는 ‘무심한’ 인간, 뫼르소
카뮈는 1955년 영어판 서문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 어머니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모두 사형당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 한 문장으로 뫼르소가 이 사회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다. 뫼르소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길 거부했고 억압적인 관습과 규칙을 지키길 거부했다. 그는 “거짓말하기를 거부”했다. 살해 후에도 회한에 잠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기는커녕 여자를 만나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 그는 세상의 원칙에 ‘무심’하다.
모두가 이 사회에서 규정한 윤리만을 강조할 뿐 어느 누구도 한 사람의 개인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사회로부터 이해받을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고도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그는 결국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는 결국 이방인으로 전락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 운명 지어진 인간 조건에 대한 의식
『이방인』은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보받은 후 해변에서 아랍인을 살해하기까지 뫼르소의 일상을 서술하며, 2부는 뫼르소가 체포되어 사형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감옥에서의 모습을 그린다.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1부에서의 무심하고 냉소적인 뫼르소의 태도는 어두컴컴한 감옥을 무대로 펼쳐지는 2부에서의 깊은 내면의 목소리와 대비된다. 규정하기 어려운 인물 뫼르소는 역설적으로 감방 속 어둠에 있을 때에만 명확해진다.
대칭적이고 대조적인 구조로 구성된 카뮈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죽음이다. 이야기 초반 뫼르소의 어머니의 사망 소식, 이야기 중반 아랍인의 죽음, 이야기 후반 뫼르소에 대한 사형선고가 바로 그것이다. 카뮈는 죽음이 운명 지어진 인간의 삶에 대한 의식과 그러한 인간 조건에 강박을 가진 한 인물을 그린다.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뫼르소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 운명 지어진 인간의 조건을 환기시킨다.
자크 페랑데즈는 고독한 이방인 뫼르소에게 얼굴을 그려주었다. 카뮈의 『이방인』에 묘사되어 있지 않은 뫼르소의 모습은 작품을 쓸 당시 청년 카뮈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작품 속에 드리운 빛과 어둠의 영역까지 그대로 화폭에 옮겨놓은 페랑데즈는 수채화풍의 세련된 그림으로 이 시대의 명작을 다시금 느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