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ogf49gjkf0d
2015년 한 취업 포털사이트의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에서 조사 응답자의 90퍼센트 이상이 화병을 앓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직장인의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직장인만 가중한 스트레스 속에 사는 것일까. 직장인뿐 아니라 가정주부, 취업준비생, 수험생, 하물며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들까지 온갖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삶의 한 단어가 된 스트레스는 지난 반세기 동안 고속 경제성장을 계속해온 한국 사회의 큰 환부이자 빚이다. 방치한 상처와 버거운 빚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프로방스’가 필요한 이유다.
여기 분주한 삶에 지쳐 문명의 이기와 화려한 삶을 버리고 프로방스의 작고 인간적인 규모의 마을로 들어간 사람이 있다. 10여 년 동안 프로방스에 살며 속도에 얽매이지 않은 삶을 누리고 있는 그녀는 지난 2011년, 북적이는 도시를 떠나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고픈 사람들을 위한 여행 에세이 『프로방스에서, 느릿느릿』을 통해 이미 프로방스의 매력을 소개한 바 있다.
청양해를 맞아 출간되는 그녀의 두 번째 프로방스 이야기 『최고의 휴식, 프로방스』는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닌 쉼표가 필요한 우리에게 전하는 치유의 처방전이다.
보기만 해도 시야가 탁 트이는 사진과 부담 없이 소소한 글을 담은 전작의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프로방스 곳곳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공간과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꾸밈없는 언어로 표현해냈다. 지중해에서 알프스 산맥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프로방스 지방을 20일간 차근차근 돌아보는 이번 에세이는 느림이 주는 행복과 대자연의 축복, 한 조각의 여유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 내 삶에 부족한 쉼표를 찾아서
흔히 서점에서 접하는 여행서는 꽉 짜인 일정표와 꼭 가봐야 하는 곳들을 정리한 수험생의 필기 노트 같거나 색색의 사진이 페이지 가득 펼쳐진 화보인 경우가 많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는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들을 꿈꾸지만 막상 여행을 시작하는 단계가 되면 마음이 바빠지는 게 사실이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즐기는 여행인 만큼 남들보다 ‘알차게’ 보내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여행은 또 하나의 ‘업무’처럼 빈틈없는 계획과 일정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쉬기 위한 여행에서조차 ‘쉼표’가 사라진 지 오래인 거다.
『최고의 휴식, 프로방스』는 여행에서 놓치기 쉬운 여유와 느긋함, 작은 것들에의 행복을 엮어서 보여준다. 20일간의 일정 역시 발길 닿는 대로, 길이 이어진 대로 한발 한발 내딛어간 여정일 뿐, 무리하게 따라야 할 코스는 아니다. 일찍이 반 고흐와 르누아르, 시냐크 등 19세기 화단을 수놓은 많은 예술가들의 도시로 알려진 프로방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영감을 제공한다. “프로방스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힌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라는 인문학자 정수복 선생의 말처럼 『최고의 휴식, 프로방스』가 보여주는 프로방스에는 느긋함이 주는 여유와 행복이 가득하다. 당장 떠날 여유가 없다면 먼저 이 책으로 부족한 쉼표를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 프로방스 둘러보기
1장 ‘쪽빛 지중해를 따라서’는 눈이 시릴 만큼 파란 프로방스 바닷가 마을의 여정을 보여준다. 프로방스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니스 해변과 르누아르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칸쉬르메르 해변의 고즈넉한 풍취, 피카소 미술관이 있는 앙티브를 지나 화려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쥐앙레팽, 세계적인 영화제로 유명한 칸 해변, 철가면의 전설이 내려오는 레랭 섬을 지나 음식으로 유명한 무쟁까지 이어진다.
2장 ‘황금빛 태양을 따라서’는 프로방스의 상징이 된 황금빛 태양 가득한 들판으로 안내한다. 올리브 나무가 끝없이 펼쳐진 레자크에서 폴 시냐크의 화집을 복원한 듯한 생트로페, 마르셀 파뇰의 생가가 있는 오바뉴 시골 마을과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마르세유, 유쾌한 와인 축제가 벌어지는 엑상프로방스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시작된 살롱 드 프로방스, 그리고 반 고흐의 예술혼이 깃든 아를, 미스트랄의 언어를 만날 수 있는 마이얀까지 소개된다.
3장 ‘청록의 삼나무를 찾아서’는 바다와 멀리 떨어진 프로방스 내륙 지방 곳곳의 정취를 보여준다. 알퐁스 도데의 작품 배경이 된 타라스콩과, 연극제로 유명한 아비뇽, 19세기 옛 모습을 간직한 일쉬르라소르그, 사드의 성이 있는 라코스트, 끝없이 이어진 라벤더 밭을 만날 수 있는 발랑솔을 지나 도자기로 유명한 무스트에 생트마리까지 오면 바닷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프로방스의 모습과 만날 수 있다.
4장 ‘와인 빛 노을을 따라서’에서는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향수의 도시 그라스를 시작으로 앙리 마티스의 멋진 예배당이 있는 방스, 20세기 예술가들의 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는 생폴 드 방스, 콕토 박물관과 레몬 축제로 유명한 망통, 작지만 화려한 왕국 모나코를 지나 프랑스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생장카프레라를 마지막으로 다시 니스로 돌아오는 여정을 펼쳐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