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민족의 기질과 마음을 드러내는 지도다!
과장하는 중국, 압축하는 일본, 은유하는 한국
닮은 듯 다른 세 나라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문화의 뿌리가 담긴 옛 미술을 통해 삼국의 과거와 현재를 살핀다!
한류, 21세기 아시아를 흔든 문화 현상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언급될 용어는 바로 한류일 것이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빠르게 아시아 전역으로 흡수되고 있다. 대중문화는 물론 우리의 패션, 식문화까지 아시아의 기준으로 통용되는 시대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철 지난 일본의 잡지를 통해 그들의 패션을 접하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던 홍콩 누아르와 배우들에 열광했고 불법 유통된 일본 영화와 J-POP, 애니메이션을 향유해야만 ‘문화적’이던 때도 있었다. 닮은 듯 다른 아시아의 세 나라는 이렇듯 서로의 문화를 주고받으며 자국의 문화를 이어갔다.
물론 지금의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IT 기술의 발달로 국가 간 정보·문화 교류 역시 초단위로 이루어지는 게 지금의 세상이다. 그만큼 각 나라마다의 고유 문화색이 흐려질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미술과 디자인 심리학을 연구해온 지은이가 ‘지금’ 문화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각 나라의 다양한 문화가 빠른 속도로 융합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고유의 기저 문화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왜 굳이 한·중·일일까?
문화는 한 민족의 세계관이자 인간관이며 기본 성격이다. 한 개인의 인생관과 성격이 그 사람의 성취를 결정하듯, 한 민족의 기저 문화는 그 민족의 현재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지형적·역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한·중·일 세 나라는 오랜 시간 서로의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교류해왔다. 우리 문화의 민낯을 보기 위해서는 지금은 뒤섞여버려 그 형태를 분간하기 힘든 세 국가 간 양식을 명확하게 분리해낼 필요가 있다. 이에 지은이는 문화적 화석이라 할 수 있는 옛 미술의 양식 분석을 통해 세 나라의 민족적 기질과 기저 문화를 파악하고자 했다. 『한중일의 미의식』은 세 나라의 특징이 담긴 옛 미술을 통해 우리의 기저 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한 문화의 창窓이다.
일곱 가지 유형으로 분석한 한·중·일
이 책에서 지은이는 한·중·일의 기저 문화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학술적 방식을 도입했다. 마케팅 이론에서 출발한 니드스코프와 림빅 맵 분석을 통해 삼국의 특징을 도식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지은이가 고안해낸 일곱 가지 유형을 통한 분석이다.
앞서 출간된 『한국인의 마음』(2011)에서 옛 미술을 통해 우리의 심리적 기질을 살펴보았던 지은이는 이를 더욱 발전시킨 일곱 가지 유형으로 삼국의 문화 지형을 그려내기에 이른다. 지은이는 삼국의 문화적 특징을 분석하기 위해 곡선성, 전형성과 은유, 강박, 공포와 해학, 대비, 복잡도, 전망과 도피 이론이라는 일곱 가지 유형을 도입했다.
단순히 각 유형별로 대입한 사례를 열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고증과 미술품이라는 실증적 예를 통해 조리 있게 풀어간다. 가령 삼국의 대표적인 고대 건축물의 처마 선을 분석해 대륙의 곡선과 반도의 곡선, 열도의 직선을 풀어내는 지은이의 이야기는 손에 잡힐 듯 정교하다.
학술적 시선으로 바라본 삼국의 미술, 자칫하면 어렵고 무겁게 느껴질 법한 내용이지만 다채로운 화보와 역사 속 한 장면 같은 에피소드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여기에 지은이 특유의 간결한 문체와 담백한 어조는 부담 없이 우리를 삼국의 미술 세계로 안내한다.
닮은 듯 다른 세 나라, 옛 미술의 거울로 보다
일찍이 자신의 머리가 하얗게 변한 모습을 보고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라고 노래한 이백李白의 과장법을 우리는 흔히 대륙적 기질이라는 우스개로 평한다. 밥상을 작은 통에 고스란히 옮겨 담아낸 도시락이나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상용화한 일본의 축소지향성은 이어령 선생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으로 더 유명해졌다. 한편 산속 암자에 걸리는 풍경에 물고기를 형상화하거나 하늘 높이 올리는 재단에 오리를 조각한 솟대의 상상력에서 한국 고유의 은유를 볼 수 있다. 숱한 역사를 함께한 세 나라이지만 크게 꼽을 수 있는 기질은 저마다 서로 다르다. 하지만 각 나라의 특징을 요약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그리 수고스러운 일은 아니다. 머릿속에 이미 각인된 모습으로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문화를 공유하면서 학습된 기억일 것이다.
지은이는 옛 미술을 통해 세 나라의 기질을 좀 더 명확하게 분석한다. 회화 분야에서 그 특징은 더욱 두드러진다. 한·중·일에서 문인화의 소재로 자주 다루어진 ‘대나무’를 통해 분석해낸 삼국의 특징은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회화에서 중시한 기법은 골법용필骨法用筆, 즉 붓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과 붓을 사용하는 원칙에 주력했다. 다른 말로는 붓을 다루는 이의 능숙함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국의 묵죽도를 보면 대나무는 그림을 시작하는 모티프로서의 역할만 하고 실제 그림의 핵심은 능숙하고 담백한 붓놀림에 있다. 반면 중국의 묵죽도는 엄격한 화론을 따라 그려 사실적이다. 그러다 보니 화풍이 유사해 개성이 부족하다. 중국에서 중시한 기법은 응물상형應物象形, 즉 물체 자체의 모습이나 특성대로 형상을 표현하는 원칙이었던 것이다. 화법의 하나인 골법용필과 응물상형으로 한국과 중국의 특징을 분석한 것은 이 책이 거의 유일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하나, 일본의 대나무는 어땠을까.
일본의 묵죽도를 살펴보면 대나무 자체보다는 화폭에서의 기하학적 구도 혹은 질서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결한 구성을 통해 그린 이의 담백한 미의식과 능숙함을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골법용필의 정신을 엿볼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골법용필보다는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 다시 말해 그려진 형태나 색 또는 구도가 주는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더 중시했음을 볼 수 있다.
유교문화권, 한자문화권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역사의 장을 함께한 세 나라이지만 민족적 기질을 담아낸 회화만 보더라도 이처럼 서로 다른 문화적 소양을 보여준다.
옛 미술품에는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지기 이전 해당 국가의 기저 문화가 남아 있다. 따라서 옛 미술품 양식의 비교를 통해 한·중·일의 기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옛 미술은 문화적 화석인 셈이다. 이 책에 실린 지은이의 다각적인 분석과 수많은 예시는 우리의 심성을 파악하는 동시에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