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자기의 경험이라는 한 우물에서 길어먹는 것,
우물의 물맛이 변하지 않듯 글맛도 잘 변하지 않는다
30년 만에 처음 꺼내는
공광규 시인의 삶과 시작詩作 노트
등단 30년 공광규 시인의 첫 산문집
이 책은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하여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말똥 한 덩이』 『소주병』 『담장을 허물다』 등의 시집으로 당대 사회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고향과 가족에 대한 서정적 시편들로 사랑받아온 공광규 시인의 등단 30년을 정리하는 첫 산문집이다.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유년 시절의 추억과 도회지에서의 삶을 자신의 대표적인 시와 함께 마흔한 편의 산문으로 담백하고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와 문학에 관한 자전적 고백
이 책은 시인의 시와 문학에 관한 자전적 고백을 담은 산문집이다. 제1부 ‘모텔에서 울다’에서는 시인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과의 추억을 담고 있다. 고향에서의 아름다웠던 추억과 풍경, 한 가계를 안간힘으로 받치다가 폐목으로 쓰러진 아버지, 어머니께서 차려준 건더기 없는 멀건 국에 뜬 별과 오로지 자식 무탈하기만을 기원했던 어머니. 이처럼 시인 스스로 아버지가 되고서야 더 깊이 알게 된 부모님의 각별한 정, 그리고 이제는 고향에 가도 마음 편히 묵을 곳 없는 쓸쓸한 심정을 서정시와 함께 풀어냈다.
제2부 ‘양생의 시학’에는 시인이 어떻게 시와 처음 만나고 쓰게 되었는지, 어떻게 쓰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의 시론이 담겨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도서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시집 한 권을 주우면서 시인이 된 사연을 이야기하고,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제철소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시를 썼던 소회를 꺼내며 자신만의 창작방법을 풀어놓는다.
제3부 ‘운명’에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애착, 그리고 동시와 이를 영문으로 번역한 글을 실었다. 은행나무와 절밥, 정이 오가는 먹을거리들, 경쟁과 속도에 매몰된 사회 속에서 큰길이 아닌 자신만의 오솔길로 가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진정한 경쟁력일 거라는 시인의 따뜻한 목소리를 담았다.
제4부 ‘얼굴반찬이 되자’는 현대인의 각박한 삶에 대한 시선과 자본이 아닌 사람이 중심인 사회를 위한 실천의 길을 담았다. 시인은 독거노인의 ‘고독사’나 혼자 먹는 밥을 뜻하는 ‘혼밥’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사회는 나쁜 사회라고 말하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얼굴반찬이 되어주자고 호소한다. 또한 현실과 맞닿은 문학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는 ‘행동주의 문학’을 주장한다.
♣ 책 속으로
내가 어렸을 때, 오일장이 서면 어머니는 걸음이 느린 나를 앞세우고 시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막과자를 사주셨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아파서 걸음이 느린 어머니에게 막과자 봉지를 사서 들리고 집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슬픔이 밀려왔다. 눈물 글썽한 눈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눈물에 굴절되어 들어오는 겨울 별빛을 바라보다가, 맑은 슬픔이라는 말을 생각해냈다. _「맑은 슬픔」에서
이 세상은 한 번 다녀가는 여행지가 아니겠는가. 여행지에 와 있는 동안 마주치는 인연들과 좀더 진실하고 열심히 사랑하다가 떠나야겠다. _「모텔에서 울다」에서
세상의 아버지들은 누구나 다 잘살고 싶어한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고, 자식들 공부를 많이 시키고 싶고, 넓은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늘 실패의 삶을 산다. 늘 결핍의 삶을 살다가 죽는 존재가 아버지다. _「아버지의 일생이 담긴 소주병」에서
그러므로 시를 아무리 뜯어보아도 시가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것은 독자의 잘못이 아니라 창작자의 표현 미숙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창작자조차 의도를 모르는 데서 오는 것이다. _「나라를 근심하면서 쓴 시」에서
사람들은 경쟁과 속도를 현대적 인간의 보편적 선으로 알고 있다. 같은 길을 빨리 가려고 대로에서 무리들과 경쟁한다. 그러다보니 부딪히고 막히고 싸우는 것이다. 차라리 나만의 오솔길을 가는 것이 편하고, 실제로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경쟁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_「오솔길을 걸어가다 암자에 들러」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나쁜 사회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돈 중심의 사회가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많이 만들고 있다. 핵가족화를 넘어 가족의 해체를 낳았다. 그래서 여럿이 모여 밥 먹을 기회도 없고, 가족끼리 북적대며 사는 재미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외롭다. 인생이 쓸쓸하다. _「얼굴반찬이 되자」에서
시를 담은 단지를 회사 정문이나 건물 현관에 놓고 하루에 한 편씩 뽑아보게 하면 어떨까. 직원들이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면서 마음과 인격이 고양된다면 직장 분위기도 훨씬 좋아질 것이다. _「시의 도시, 시의 직장을 선언하자」에서
♣ 추천사
20년지기인 공광규 시인의 얼굴은 참으로 선하고 단아하다. 시가 그의 얼굴을 닮았듯 그의 산문 역시 시처럼 얼굴처럼 선하고 단아하다. 그의 개인사와 함께 어우러진 시와 산문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오래된 향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숲길의 향기이고 사람의 향기이며 삶의 향기다. 그의 시와 산문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도 이런 맑은 풍경과 향기 덕분일 것이다.
_이순원(소설가)
공광규 시인은 진정으로 삶을 살아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기둥’을 가진 시인이다. 그는 빈 소주병처럼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난 정직한 땅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을 줄 안다. 지적 허세와 난해함으로 포장하지 않고도 시대에 대한 고투와 내면의 상처를 깊고 넓은 풍경 속으로 이끌 줄 아는 시인! 그의 ‘맑은 슬픔’이 뭉클하다.
_문정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