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한승원의 선방 스님 이야기를 담은 불교 산문집 출간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중견작가로서 탁월한 문학적 성과를 일궈오고 있는 한승원의 선승(禪僧) 이야기 『스님의 맨발』이 출간되었다.
30여 년의 문학 인생을 통해 다종의 소설 작품에서 한맺힌 사람들의 애잔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던 작가 한승원은 평소 각별한 관심과 남다른 공력을 바탕으로 불교계에 커다란 자취를 남긴 선지식(善知識)들을 찾아가 삶과 죽음, 애욕과 해탈 에 관한 깨달음의 문을 두드린다. 종으로는 불교의 역사를 가로지르며 석가모니 부처에서부터 걸어다니는 이 땅의 수미산이라 일컫는 덕암 스님에 이르기까지 대각(大覺)의 커다란 줄기를 훑고, 횡으로는 원효의 화쟁 사상에서부터 선교 양종을 두루 살피며 선사의 풍월을 읊는다.『화엄경』등 경전의 글구를 특유의 문학적 감각으로 풀어놓아 편안한 독서를 가능케 하고, 군데군데 한 시(漢詩)의 운치를 살려 풍미를 전해준다. 또한 한승원 문학의 한 축을 형성해온 선(禪)적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점도 이 책의 맛을 더해주고 있다.
산경(山景) 속에 묻힌 스물다섯 선승들의 좌선 정진의 구도 정신
『스님의 맨발』은 모두 스물다섯 분의 고금의 스님들의 기이한 행적과 사상에 관해 작가 자신이 직접 걸어다니며 탐방한 글들 로 묶은 책이다. 스물다섯 선승들의 족적과 불심(佛心)을 좇기 위해 전국의 수많은 사찰을 찾아가 산경(山景) 속에 묻힌 스님들 의 여러 일화들을 순금을 캐듯 풀어낸다. 두고두고 전해내려오는 기행(奇行)과 스님들이 수도했던 사찰마다에 담겨 있는 재미있 는 일화들을 중심으로 스님들의 삶과 좌선 정진의 구도 정신을 우러르고 있다. 또한 하나하나의 일화에 스님의 진영과 관련 사진 을 곁들여 이해를 돕고 있다.
불교의 정신세계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식견을 바탕으로 스님들의 기이한 행적에 스며 있는 숨은 뜻과 선(禪)적 깨달음의 경 지를 유장한 필치로 풀어내고 있는『스님의 맨발』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삶의 철학, 일상의 철학으로서의 불교에 대한 친근한 접 근을 가능케 하며, 동시에 불(佛) 세계에 대한 작가 한승원 특유의 통찰과 해석을 접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스님들의 기행 아닌 기행에 담긴 예사롭지 않은 뜻
6·25전쟁 중 오대산의 상원사가 아군에 의해 불에 타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74세의 노구로 법당 안에 가부좌를 하고서는 "이제 불을 지르시오"라며 목숨을 던져 절을 구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내려오는 방한암 스님의 이야기, 삼십 년 넘 게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잔혹할 정도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던 성철 스님, 당대 최고의 걸승 학승으로 널리 알려진 초의 선사 의 어릴 적 무서운 죽음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 의상과 함께 무덤 사이에서 하룻밤을 자다가 샘물인 줄 알고 마신 물이 다음날 깨어보니 해골바가지에 괴어 있는 물인 것을 알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은 원효 스님의 이야기 등『스님의 맨발』에 소개되고 있는 선승들의 기행과 일화는 흥미로우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뜻을 담고 있다. 특히 다음의 일화는 기행 아닌 기행의 참된 의미와 삶 의 고달픈 여행을 통해서 깨달음의 길(참자유)을 얻고자 했던 경허 스님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이다.
어린 상좌가 한 스님을 따라 무거운 시주 자루를 메고 걸어가고 있었다. 어린 상좌가 무거워하는 줄 알면서도 스님은 묵묵히 앞장서 가기만 했다. 한 집을 지나는데 문득 젊은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나왔다. 스님은 불쑥 아낙의 두 귀를 붙잡고 입을 쪽 맞 추었다. 아낙은 기겁을 했고, 비명 소리에 집안 사람들이 달려나와 스님과 상좌를 붙잡으려 들었다. 어린 상좌는 혼겁을 한 채 스님의 뒤를 따라 도망쳤다. 죽기 살기로 뛰어 달아나 사정권에서 벗어나자 스님은 어린 상좌에게 물었다. "아직도 무거우 냐?" 숨을 헐떡이며 무거운지 어쩐지 모르고 달려왔다고 대답하는 상좌에게 스님은 "무겁다는 것은 마음이 그렇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스님은 제2의 원효라 불리는 경허이고, 어린 상좌는 만공 스님이다. 모든 것은 마음의 조화라는 것(一切唯心造)에 대 한 만공 스님의 깨우침이 비롯되게 된 계기를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이다.
큰 깨달음의 경지, 자유인의 활달한 발걸음을 만나는 길
고명한 선지식(善知識)의 족적을 좇거나 현존하는 대덕(大德)들과 직접 만나면서 작가 한승원은 이 책을 통해 황량하기 그지 없는 이 시대에 절실한 화두(話頭) 하나를 내놓는다. 그것은 삶의 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참자유의 길,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부질없는 욕심에 마음을 빼앗기는 허망한 일생에서 참자유의 길은 진정 무엇인가? 푸른 숲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과 한여름 나 뭇잎들을 흔드는 청정한 바람결 같은 깨우침의 말들이『스님의 맨발』에서는 술술 흘러나오고 있다. 스물다섯 분의 선지식들에게 삶의 길을 묻는 그의 뜻은 깊고 그윽하여 고달픈 인생길에서 찰나의 큰깨침을 얻기에 적실한 안내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승원의 선방(禪房) 스님 이야기에는 언어가 문득 끊긴 자리(言語道斷), 문자로 전할 수 없는(不立文字) 것에 목숨 건 사내 들의 정진과 구도행이 담겨 있다. 우리가 한때 고민했다가 놓아버린 것들, 이미 일상사가 되어버린 욕망에 매몰되어 이제는 잊고 사는 근원적 물음들을 들고 천길 나락, 칼날 바람 앞에 자신을 던지는 사내들의 사자후가 담겨 있다. 이 책을 펼쳐드는 순간 경 허, 성철, 만해, 초의, 달마 등 스물다섯 분의 선지식들이 내미는 화두에 문득 열리는 큰 깨달음의 경지, 자유인의 활달한 발걸 음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