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유년기와 씁쓸한 현재 사이에 존재하는 서스펜스
『소용돌이』는 지금으로부터 이십오 년 전 ‘국민학교’ 시절 천진난만했던 유년기에 겪었던 사건과, 그 사건으로 인생이 뒤틀려버린 어른들의 이야기를 교차 서술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였으나 연쇄살인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진다. 도대체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모인 친구들은 또다시 연쇄살인이 벌어지리란 강렬한 예감을 느끼고 함께 수사를 진행한다. 친구를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이십오 년 전 사람을 죽이고 다녔던 연쇄살인마가 돌아온 것일까? 수수께끼는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서술되며 예상치 못한 반전과 함께 풀려나간다.
『소용돌이』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나름대로의 슬픔을 가지고 있었으나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았던 열세 살배기들. 서로를 ‘독수리 오형제’라는 이름으로 묶고 ‘아폴로’를 나누어 먹으며 모험을 찾아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던 순간은 찬란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삼십 대 후반에 이르러 만난 그들은 각각 조직폭력배, 삼류 찍사, 지방대학 시간강사, 술집 종업원으로 지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죽은 친구마저도 학교 소사로 입에 겨우 풀칠만 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모두 이십오 년 전의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 밝은 과거와 어두운 현재의 대비 덕분에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로 서술되고 있음에도 헷갈리지 않고, 어쩌다가 이들이 현재의 지경에 이르렀는지 한층 궁금하게 만든다.
이십오 년 전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용돌이』는 어른들을 위한 모험―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비극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무서운 모험을 겪은 후 주인공들은 시간이 지나며 육체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얽매여 있다. 그 때문에 ‘민호’는 죽음에 천착하고, ‘명자’는 죄책감에 짓눌려 자살을 시도하고, ‘길태’는 죽음에 무감해졌으며, ‘창현’은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엇보다 ‘유민’은 목숨을 잃는다. 그들은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이십오 년 전에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한 모험을 제대로 끝내야만 한다. 이미 죽은 ‘유민’까지 포함하여, 다섯 명의 어린 아이가 과거를 떨치고 앞으로 한발 나아가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슬픈 이별과 고통스러운 깨달음의 순간이 존재한다.
‘민호’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죽음을 찍는 사진사’가 ‘삶을 찍는 사진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즉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죽음을 찍어 팔며 스스로 살아 있는 것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죽음에 무감각해졌다고 생각하는 나 ‘민호’는 친구들과 함께 이십오 년 전의 살인마를 맞닥뜨리는 순간 ‘전부 죽어도 좋으니 나만은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비겁함을 깨닫는다. 뼈아픈 각성의 순간이다.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기 직전에는 진심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몸부림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삶의 세계로 돌아온다. 혼자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전건우는 호러 미스터리라는 장르 안에서 소재를 뽑아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밤의 이야기꾼’이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그의 재능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에 있다. 어찌 보면 꽤나 익숙하고,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는 그의 손에서 재창조되어 활기로 넘친다. 제법 두꺼운 분량에 두 가지 이야기가 묶여 있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남아 있는 책장이 얼마 남지 않는다. 깜짝깜짝 놀래는 무서운 영화 같은 느낌이 아니라, 땀이 차올라 쉽게 잠들기 힘든 여름밤 둘러앉아 듣는 으스스하지만 계속 몰입하게 만드는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이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