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을 강의하면서
뜨겁게 읽고 날카롭게 써 내려간
권혁준의 첫 아동문학평론집
교대 교수이자 아동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권혁준이 첫 아동문학평론집을 펴냈다. 저자 권혁준은 공주교대 국어교육과에서 올해로 17년째 아동문학과 문학교육을 가르치면서 부지런히 아동문학 평론 작업을 해 오고 있다.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회장과 국어과 교과서 집필위원 및 기획위원으로도 활동하면서 한국 아동문학을 학술적으로 더 깊이 들여다보고 교육적 틀을 마련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권혁준은 대학 강의실에서 아동문학 책을 읽으면서 문학교육을 가르친다. 아동문학과 문학교육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가는 그의 평론은 따뜻하면서도 날카롭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꼭 아동문학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교대 부임과 동시에 아동문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좋은 동화를 찾아 같이 읽고 감동을 나누는 기쁨은 기대 이상으로 컸다. 오늘도 『오른발, 왼발』(토미 드 파올라, 비룡소, 1999)을 읽어 주면서 또 눈물이 나오려 해 참고 읽느라 목소리가 떨렸다. 이 책은 10여 년 이상 읽고 또 읽었는데, 어느 장면에만 가면 콧등이 시큰해 온다. 아동문학은 단순하고 간결한 언어로 인생의 단면을 포착하는 매력이 있다. _머리말 「어린이가 주인이 되는 아동문학을 위하여」에서
오랫동안 아동문학을 강의해 온 권혁준은 이제 좋은 아동문학이 어떤 것인지 할 말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평론은 날카롭고도 겸손하다.
10여 년 이상 아동문학에 대해 강의하고, 작품을 읽고,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 보니 이제는 좋은 아동문학이 어떤 것인지 할 말이 생기는 것 같다. 무엇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조건은 ‘아동문학의 주인은 아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어린이가 주인이 되는 아동문학은 ‘어린이의 본성과 욕망을 긍정하고 그들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작품’이어야 한다. _머리말 「어린이가 주인이 되는 아동문학을 위하여」에서
어린이의 본성과 생명력이 담긴 아동문학을 바라며
어린이와 아동문학을 향한 애정과 격려를
촘촘하게 담아 엮은 평론집
이 책은 총 3부로 나뉜다. 1부 ‘질문하고 대답하는 아동문학’에서는 우리나라 아동문학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와 아동문학비평에서 중요하게 살펴야 할 문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아동문학 서사 장르 용어의 의미와 범주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아동문학에서 비평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요구되는 역할은 무엇인지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구체적인 작품에 대한 의미를 해석하는 비평이나 시대적 징후를 드러내는 문학에 대한 사회적・인문학적 의미를 해명하는 비평, 한국 아동문학이 자기도 모르게 추구해 온 어른 관점의 문학을 지적하는 비평 등은 2010년 이후 아동문학비평이 거둔 소중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아동문학의 역할이나 문제를 통찰하는 본격적인 비평이 많지 않았다거나, 소통과 대화가 부족했던 점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_32쪽
2부 ‘어린이의 본성을 긍정하는 아동문학’은 주목해서 보아야 할 아동문학작품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한국 아동문학에서 어린이의 본성과 욕망, 그들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작품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아동문학에서는 어린이의 희생을 아름답게 여기거나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본성은 뒤로한 채 사회와 현실 속 아이를 그려내는 데만 치중해 왔음을 지적하고, 어린이의 내면으로 더 들어가서 과감한 상상력을 펼치라고 주문한다.
한국의 동화나 아동소설에서는 어린이의 본성에 주목한 작품이나 어린이 자신의 간절한 욕망과 내밀한 심리적 문제를 그려 낸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다. 1920~30년대의 생활동화에서는 현실 속에서 고난을 겪는 어린이들이 주인공이 되었고, 1960년대의 예술동화에서는 독자인 어린이가 아니라 작가의 심미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동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1990년대 IMF시대에는 해고 노동자의 자녀들이 겪는 아픔이 아동소설의 주제가 되었으며, 2010년대에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철저히 고통받는 가정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한국 아동문학 100년의 역사에서 어린이의 순수한 욕망과 내면의 고민이나 갈등은 이렇게 작가에게 외면을 받아 왔다. _130~131쪽
우리 아동문학이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소재와 주제에 치우치고 평론가들 관심도 리얼리즘에만 경도되어 있다면, 어린이들의 내면적인 욕구를 이해하고 심연의 욕망을 해소시키며 인간 본성의 고민과 갈등에 대한 해답과 위안을 주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동화작가는 어린이 내면을 탐구해야 한다. 현실을 기반으로 어린이의 구체적인 삶을 다루는 사실동화의 경우에도 아이의 내면에 대한 탐구가 미흡하다면, 친구, 부모, 선생님 사이에서 벌어지는 피상적인 사건을 묘사하는 데 그치고 말 것이다. _151쪽
3부 ‘경계를 지우는 아동문학’에서는 아동문학이 진정으로 어린이가 주인이 되는 문학이 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지 이야기한다. 무거운 사회문제나 현실 속 불행한 아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전달하고 그려내야 하며 서술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동문학이 다루는 소재와 주제가 확대되어 경계를 지우는 작품이 더 많이 산출되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담겨 있다.
독재나 빈부 격차 같은 사회문제는 아이들이 문제의 심각성이나 문제의 원인을 깨닫기가 어려우므로, 어른의 해석을 전달해 주는 일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동문학 독자가 어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경우에도 최대한 어린이의 시선을 빌려 와서 어린이가 생각할 수 있는 사건으로 구성하여 형상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도 그것을 문학적으로 어떻게 가공하여 보여 주어야 하는가는 늘 되풀이되는 과제이며 아동문학에서는 그 고민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_236쪽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 말고도 친구 문제, 학업 문제, 이성 문제 등 보통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갈등과 고민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런데 아이의 현실적인 아픔을 그릴 때에도 작가는 그들을 아프게 하는 외적 조건보다는 인물의 내밀한 심리를 섬세하게 추적한다. 그래서 사건 자체가 그리 혹독하지 않은데도 독자에게 훨씬 둔중한 울림을 주게 된다. _ 270쪽
추천사
내가 알기로는 평론가의 길이 평탄하기만 한 길은 아니다. 그런데도 권혁준은 꾸준히 뒤돌아보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간다. 어디 그뿐인가. 대학에서 제자들과 진동한동하면서 그중 몇몇을 동화작가로 들어 올렸을 뿐 아니라, 그 제자들의 활동도 눈부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권혁준이 가는 길이 실로 경탄스럽다. _송언(동화작가)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권혁준 교수님의 아동문학 수업은 ‘빡센’ 것으로 유명했다. 우리는 한 학기 내내 엄청난 분량의 아동문학 책을 읽어야 했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유치한 시나 엉망진창 동화를 써야 했고 수업 중간중간 뜬금없이 시작되는 교수님의 동화 낭독을 들어야 했다. 교수님의 수업은 한마디로 우리가 아동문학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_천효정(동화작가)
권혁준의 비평에선 어린이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어린이의 내면적 욕망과 본성을 인정하고 어린이의 처지를 헤아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동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이나 창작자는 물론 동화를 잘 읽어 보고 싶은 모든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언니 오빠가 초저녁 달빛 아래 마당에 둘러앉아 들려주는 것 같은 진실되고 다정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아동문학의 본질을 자기 목소리로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_송미경(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