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귀환, 그는 과연 진짜일까?
1619년, 조선은 명나라의 요구로 만주에 파병한다
두 남자의 신분을 넘어선 우정과 배신!
“저 둘이 함께 떠났다고 하시구려.
나는 혼자 남았다는 상심에 못 이겨서
스스로 오두막에 불을 지르고 자살했다고 전해주시오.”
어떻게 살아서 돌아갈 것인가
역사적 사실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정명섭 작가의 새 장편소설 『살아서 가야 한다』가 출간되었다. 이번 작품은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끝나고 10년 뒤인 선조 33년부터 광해군을 지나 인조 15년에 이르기까지, 명나라와 후금 간의 전쟁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상황에서 신분이 다른 두 남자와 그 가문이 벌이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3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넘나드는 빠른 전개와 스펙터클한 구성으로 마치 영화를 보듯 긴박한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특히 조·명 연합군과 여진족의 대결, 주인공을 의심하는 이들과 시시때때로 마주치는 머리싸움은 이 작품의 압권이다.
“1만이 넘는 대군이 들어가는데
어찌 돌아오는 사람이 없겠느냐.
나가서 공을 세우고 살아 돌아오너라.”
이 작품의 키워드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 ‘귀환’이다. 가문을 위해, 아버지를 위해 머나먼 낯선 땅으로 원정 간 두 사내가 사지를 벗어나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는지를 그리고 있다. 역사물이나 미스터리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 작품에서 그동안 역사추리소설로 주목을 받아온 정명섭 작가의 절정에 달한 기량을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린 언제쯤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 두 남자는 과연 사지를 벗어나 귀환할 수 있을까?
여기, 두 남자가 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났지만 한 명은 양반 집안에서, 다른 한 명은 노비 집안에서 태어나면서 운명이 엇갈린다.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가던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전쟁 때문이었다. 1619년, 명나라의 요구에 못 이긴 조선은 만주로 군대를 파견한다.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강은태는 가문의 재건을 위한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신혼의 아내를 뒤로한 채 참전한다. 노비로 살아가던 황천도 역시 밭 열 뙈기를 준다는 주인집 아들을 대신해서 군대에 들어간다. 만주로 출병한 조선군은 심하에서 후금군의 공격에 전멸당하고 두 사람은 포로가 된다. 허투알라 남쪽의 한 농장에 끌려가서 가혹한 노역을 하게 된 두 사람은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 친구가 된다. 시간이 흐르고,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광해군이 쫓겨나고 후금은 청이 된다. 조선의 왕이 청나라 군대에 항복하면서 두 사람에게 귀환의 길이 열린다. 하지만 여기서 20년 동안 친구로 지낸 두 사람의 운명은 엇갈린다. 집안에서 속전을 낸 강은태는 귀환할 수 있게 된 반면, 황천도는 계속 포로로 남아야만 했다. 이 두 남자는 과연 귀환할 수 있을까?
♣책 속으로
“말끝마다 은덕 타령 좀 그만하세요. 돈 있으면 그놈의 은덕 확 사버리든지 해야지. 노비 숫자 늘리려고 한 거지, 무슨 은덕이에요, 은덕이.”(18쪽)
“화살이나 칼날은 예의나 군자를 따지지 않는단다. 거기다 예부터 여진족 일만 명이 모이면 천하가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이 있었느니라.”(30쪽)
“나라님은 어쩌자고 그런 흉악한 놈들이랑 싸운답시고 요동까지 병사들을 보낸단 말이냐?”(40쪽)
진영 곳곳에서 명나라 패잔병들을 색출해서 내보냈다. 얼마 전까지 천병이라며 으스대던 그들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살벌한 기세에 눌려 어쩔 수 없이 조선군의 진영을 떠나야만 했다.(64쪽)
“여긴 조선이 아니잖아. 양반이니 백성이니 하는 건 부질없는 구분이야.”(85쪽)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강은태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런 일도 안 하면서도 끼니 걱정을 하지 않고, 솜털처럼 부드러운 비단옷을 입고 따뜻한 솜이불을 덮고 자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벽하고도 완벽하게 강은태로 살아야 했다.(189쪽)
일그러진 운명과 그것이 가져온 폭풍 같은 일들을 떠올린 그는 서늘한 웃음을 머금으면서 붓을 내려놨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몇 개 남았지만 마음은 더없이 홀가분했다.(275쪽)
누군가의 죽음은 다른 누군가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었다.(2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