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초한지』 『통일천하』의 원전
『서한연의』 350년 만의 첫 완역
지금까지의 초한지와 비교하지 말라!
『초한지』는 『삼국지』, 『열국지』와 더불어
중국의 3대 고전으로 불리면서도
국내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원전 번역이 없었다.
이 책은 축약이나 번안이 아닌 원전 초한지다.
드디어 초한 쟁패가 시작된다!
유방의 포용, 항우의 힘, 우희의 절개, 한신의 인내, 장량의 계책
• 번역 저본을 명확하게 밝혀서 옮긴이가 번역의 책임을 지고자 했다.
• 번역 문체는 대조가 가능하도록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표현을 살리려고 힘썼다.
• 조선시대 언해본에서 삭제한 원전의 삽입시와 역사논평까지 모두 번역하여 『서한연의』 최초 우리말 완역본의 모습을 갖추도록 했다.
•『서한연의』 묘사가 정사와 다른 부분에는 상세한 각주를 달아 둘 차이를 설명했다.
•『서한연의』 원전의 오류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각주를 달아 밝히고자 했다.
• 인물 이미지, 삽화, 지도, 연표, 고사성어 등을 넣어 독서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 중국문학 전공자로서의 특성을 살려 원전의 백화체 표현의 어감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평역, 번안, 축약, 창작이 아닌 ‘원본 초한지’
장기판의 모델인 초한(楚漢)의 싸움, 항우와 유방의 대결, 십면매복·사면초가 등의 고사성어로 유명한 『초한지』. 이 책은 초한지의 원본인 견위(甄偉)의 『서한연의西漢演義』를 저본으로 삼아 옮긴 것이다. 국내에는 지금까지 축약하고 창작된 초한지는 많았지만, 초한지의 원본을 완역하여 소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중국의 고대 역사소설 중에서 『삼국지』는 나관중 원작의 모종강 판본을,『열국지』는 풍몽룡 원작의 채원방 판본을 원본으로 인정하고 완역본이 꾸준하게 출간되고 있다. 또한 이를 기본으로 한 다채로운 창작물들이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초한지』는 중국 역사에서 극적인 순간인 초·한 쟁패를 다루고 있어 국내에서도 학자들과 작가들에 의해 여러 종의 책으로 꾸준히 출간되었지만, 사마천의『사기』 외에는 어떤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는지 근거를 밝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 책은 ‘초한지’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신각 검소각비평 동서한연의新刻劍嘯閣批評東西漢演義』 중 『서한연의』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한 것이다. 『초한지』의 역사를 보면, 원형격인 ‘초한 이야기’는 진(秦)나라 말기와 한나라 초기에 발생하여 한 무제 때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었고, 이후 삼국에서 원,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공연되고 구전되었다. 민간 연예 양식에서 텍스트화된 것은 원나라 지치 연간의 『속 전한서』(『전한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음)였고, 이어 1588년 웅대목의 『전한지전』, 1605년 저자 미상의 『양한개국중흥지전』을 거쳐 1612년 종산거사 견위의 『서한연의전』에 이른다. 그후 명나라 말기 검소각에서 견위의 『서한연의전』과 사조(謝詔)의 『동한십이제통속연의』를 합하여 『검소각비평동서한통속연의』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에 포함된 『검소각비평서한연의』가 이후 널리 유행하면서 ‘초한 이야기’를 다룬 대표 소설로 자리를 잡게 된다.
초한지 국내 유입의 역사
초한지는 한신의 포용, 항우의 용력, 우미인의 절개, 한신의 인내심, 장자방의 계책 등 지금도 많이 인용되며, 사면초가, 배수진, 토사구팽, 분서갱유, 낭중지추 등 우리 일상 어휘로 사용하는 고사성어들도 모두 『초한지(초한연의)』에서 나왔다. 서도 민요 중에서 「초한가」나 부산 민요 「우미인가」 등 연원을 알 수 없는 민요에도 『초한지』는 스며들어 있다. 그렇다면 『초한지』는 언제부터 국내에 유입되었을까. ‘초한 이야기’와 관련한 소설이 국내에 유입된 것은 아주 오래전이었겠으나,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선조 2년(1569)조다. 그해 6월 임진일 저녁 경연에서 기대승은 선조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주상께서 행여 이 책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가까이 하실까 두려워 감히 아룁니다. 이 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초한연의楚漢衍義』 등과 같은 책처럼 이와 같은 종류가 하나뿐이 아닌데 모두 의리를 해침이 심한 것들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서한연의』 이전에 또다른 판본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케 한다. 텍스트 이전의 ‘초한 이야기’에 해당하는 소설이 조선에 전래되었다는 점은 오희문의 『을미일록』(1595)에 『한초연의漢楚演義』를 언해했다는 기록이 있어, 일찍부터 한글로 번역되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허균, 박태순, 홍직필 등의 글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대통관(역관) 이 칙사의 분부를 올리며, 언문 번역 『서한연의』 한 질을 찾아 들이라고 했으므로, 분부를 전달하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_『승정원일기』, 현종 13년 1월 8일조.
견위의 『서한연의』는 간행되자마자 국내로 유입되었고, 이후 한글로 번역되어 널리 알려졌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도서관에 언해본인 『셔한연의』 필사본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 중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한글 표기 특징으로 볼 때 대략 19세기 중반 전후에 필사되었다.
2. 이전 언해본을 다시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필사했다.
3. 대부분 직역으로 번역했고, 일부는 의역도 섞었다.
4. 원문만 번역했고 삽입시, 협주, 비주, 비평은 번역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도 『초한전』, 『한우젼』, 『초패왕』 등의 제목으로 다수의 축약본과 번안본이 한글 판본으로 출간되었으며, 이후 현대에 이르러서도 1954년 김팔봉이 『통일천하』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편역, 연재하기 시작한 이래 이문열의 『초한지』 등 지금까지 30여 종에 달할 만큼 활발하게 출간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출간된 초·한 쟁패 이야기들 중 상당수는 『서한연의』의 ‘구리산 십면매복’과 같은 스토리 라인을 따르면서도 원본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현재 인터넷에서 ‘초한지’ 항목을 검색해봐도 대부분 원본이 없다고 기술되어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민간에 유통된 ‘초·한’ 쟁패 이야기는 『서한연의』가 원본임이 확실하다. 이제 그 『서한연의』를 완역하여 『원본 초한지』 독자들에게 원본과 재창작본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우리 문학과 문화의 저변을 구성하고 있는 한 토양을 꼼꼼하게 성찰하고자 한다.
시와 역사 논평, 101장의 삽화, 정사에 대한 각주
이 책은 그동안 국내에 소개하면서도 누락했던 삽입시를 모두 번역해넣었다. 이야기를 정리해주며 문학작품으로서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각주에 역사 논평을 옮겨 이해를 돕고, 본문의 묘사가 역사적 사실인지에 대해 옮긴이가 각주로 정리해두었다. 또한 원전의 삽화를 되살려 그려 매회 삽입하여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 한 권의 책, 가이드북
『원본 초한지』 각 권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인물도와 지도를 한 권에 모았으며, 고사성어에 대한 설명을 붙였다. 무엇보다 초한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붙여 『원본 초한지』를 읽는 데 이해를 돕고자 했다.
책 속으로
〈1권〉
『서한연의』가 우리 문학과 문화에 깊이 녹아들었음에도 현재 완역본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에는 『서한연의』라는 고전을 고전답게 대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도 포함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문학과 문화의 저변을 구성하고 있는 한 토양을 너무 맹목적으로 버려두고 있다는 쓸쓸함도 포함된다. (…) 『서한연의』의 ‘초한 쟁패 고사’는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삼국지』, 『열국지』와 더불어 지금도 살아 있는 우리 삶의 일부다. 피와 살로 체화(體化)된 우리 삶의 일부를 더욱 진실하게 향유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삶의 양상과 그 원천에 대한 점검 및 성찰이 필요하다. 이번 『서한연의』 완역이 고전을 고전답게 대접하고, 그동안 버려뒀던 쓸쓸한 땅에 생기를 불어넣고, 우리 삶의 한 바탕을 점검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_‘해제’에서
호사가들이 혹시라도 내 책을 가져가 읽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이 소설을 좋아하여 흥밋거리로 삼고, 그다음에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대의를 구하고, 마지막에는 사물을 넓게 알아 자신의 뜻에 통할 수 있으면, 이에 마음에 드는 독서 자료로 삼아 시중의 패관소설과 비교할 때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구구절절 모두 역사와 부합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 책을 지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책이 완성되자 식자들이 서로 전해가며 베끼기 경쟁을 했다. 이처럼 열람하기가 불편해지자 나의 선배가 장인(匠人)에게 책을 판각하게 했고 그것을 또 사방의 호사가들과 공유하게 했다. 이 책 첫머리에 실을 작은 서문을 내게 부탁하기에 마침내 붓을 잡고 이 글을 써서 내가 이 책을 편집할 때의 초심을 알리고자 한다. _ ‘서’에서
“나는 너와 부귀를 함께하려고 이러는 것이니 내 마음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큰일을 이루려면 작은 행실에 신경쓰지 않는다’라고 하지 않더냐? 비록 잠시 몸을 굽히는 것이지만 기실은 천추만대를 위한 계책이니 어찌 즐거이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_‘제4회 미녀를 앞세우다’에서
“진나라 사람 중에도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많아서 나도 어려서부터 바둑의 이치를 나름대로 깨친 바가 있소. 대체로 생각을 많이 해야 이길 수 있고, 생각을 적게 하면 이길 수 없는데, 하물며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야 어떠하겠소? 또 포석을 안정되게 하고, 돌의 생사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마음은 손을 따라 응하게 하고 뜻은 선수를 잡는 데 두어야 하오. 이것이 바둑을 두는 방법이니 옛사람들이 마음으로 깨달은 묘법이오.” _‘제5회 탈출하는 잠룡들’에서
“신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무릇 살려는 사람은 죽음을 꺼리지 않고, 생존하려는 사람은 멸망을 꺼리지 않습니다. 죽음을 꺼리는 사람은 삶을 얻을 수 없고, 멸망을 꺼리는 사람은 생존할 수 없습니다. 생사존망에 관한 논리는 옛 성군들께서도 서둘러 듣고 싶어 했습니다. 대왕마마께서 그 논리를 듣고 싶으시면 신이 극력 말씀을 올리겠지만, 듣고 싶지 않으시면 신을 저 솥에 던져넣으십시오. 신은 대왕마마 앞에서 죽고 싶을 뿐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_‘제6회 여불위가 자결하다’에서
“소를 공격하는 호랑이는 이나 벼룩을 잡지 않소. 호랑이의 마음은 큰 것에 있지, 작은 것에 있지 않기 때문이오. 장함이 승리하면 진나라 군사는 지칠 것이고, 저들의 피폐함을 틈타 공격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오. 장함이 이기지 못한다 해도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북을 울리며 서쪽을 공격하면 반드시 저들을 격파할 수 있소. 이것이 바로 우리 군대를 힘들게 하지 않고도 승부를 내는 방법이오.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채 적과 싸우는 일은 내가 공보다 못하지만 앉아서 계책을 운용하는 일은 공이 나보다 못하오.” _‘제14회 솥을 깨고 배를 침몰시키다’에서
“뜻밖에도 오늘 다시 하늘의 태양을 보게 되었구나!” _‘제20회 부자 늙은이나 되고 싶소?’에서
“밝은 데서 해를 끼치는 자는 방비할 수 있지만, 어두운 데서 손실을 조장하는 자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명공께선 더 깊이 생각해주십시오.” _‘제24회 옥두를 산산이 부수다’에서
지금 어떤 사람이,
벽 너머에서 방울을 흔드네.
소리만 들리고,
모습은 보이지 않네.
부귀를 얻고도 고향에 안 가면,
비단옷 입고 밤길 가는 거라네. _‘제30회 관을 쓴 원숭이’에서
〈2권〉
“왕법(王法)을 시행할 때는 친척이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옛사람들이 밝힌 교훈입니다. 대왕마마께서는 천하 국가를 위하셔야지, 어찌 친척 간의 정리만 생각하십니까?” _‘제41회 추상같은 군율’에서
“천하에는 꼭 그렇게 되는 시간이 있고, 꼭 그렇게 되는 대세가 있소. 지금은 그런 시간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대세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소. 패왕은 자신의 강포한 힘만 믿고 아직 천명은 모르고 있소. 비록 천하를 도모하고 있으나 그 시간을 아직 얻지 못했소. 관중에 도읍하지 않고 팽성에 도읍하여 제후의 패자가 되었으나 민심을 잃었으니 아직 대세를 얻지 못한 것이오.” _‘제49회 서위의 위표가 항복하다’에서
“먼저 사람의 일을 말하고 다음에 하늘의 이치를 논해야 합니다. 관상가의 망령된 말을 경솔하게 믿고 갑자기 군사를 일으키면 패가망신하는 일이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_‘제59회 위표의 배반’에서
“이것도 병법에 있소. 장군들이 자세히 살피지 않았을 뿐이오. 병법에 이르기를 ‘죽을 땅에 빠진 이후에야 살고, 멸망할 땅에 들어선 이후에야 생존한다’고 하지 않았소? 또 나는 평소에 여러 장군에게 비위를 맞추지 못했소. 그러니 이번 상황은 저잣거리 사람들을 휘몰아 전투에 나선 격이니 살 땅에 진을 치면 적을 만나자마자 모두 도주했을 것이오. 어찌 그런 병법을 쓸 수 있겠소?” _‘제62회 강물을 등지고 진을 치다’에서
한신이 군대 몰고 조성으로 들어간 후,
교만하고 게으르게 병무를 처리했네.
갑작스레 한왕이 대장 인수 박탈하여,
영웅을 쓰러뜨리고 경계심을 가르쳤네. _‘제66회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에서
〈3권〉
“대저 듣는 것은 일의 조짐을 파악하는 것이고 계획하는 것은 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듣기를 잘못하고 계획에 실패하고도 오랫동안 안정을 누리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 때문에 지혜는 사태를 결단하는 능력이고 의심은 일의 진전을 방해하는 단서입니다. 털끝만한 작은 계획에 집착하면 천하의 큰 운수를 놓치게 됩니다. 지혜로는 진실로 그것을 알면서도 결단하여 과감하게 행하지 못하면 만사가 재앙으로 귀착됩니다. 무릇 공적은 이루기 어렵고 실패하기는 쉽습니다. 시기는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좋은 시기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_‘제71회 괴철의 삼분지계’에서
계략 운영 대책 결정 손무를 속이겠고,
한나라 유씨 일으키는 일 관중과 오기보다 뛰어나네.
십면매복 기이한 공으로 초나라를 멸망시켜,
산하 만 리 천하에서 장한 황업 이루겠네. _‘제80회 구리산 십면매복’에서
“군사를 부려 승리를 얻는 일은 용기가 아니라 지모에 달려 있다. 그러니 나는 네놈과 지혜를 다투지, 힘을 다투지 않는다. 네놈은 가는 곳마다 혈기왕성한 용기에만 의지하다 끝내 패망으로 치닫고 있지 않느냐? 그것을 어찌 강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_‘제81회 천하무적 서초 패왕’에서
“폐하께 이 사람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겠습니까?” _‘제98회 장량이 은퇴하다’에서
“폐하의 성스럽고 현명함은 고제만 못하시고 신의 재능도 소하에 미치지 못합니다. 고제께서 제정한 법령은 폐하께서도 준수해야 하고, 소하가 행한 선정도 신들이 마땅히 봉행해야 합니다. 군신이 한마음으로 옛 법도를 따르며 실수하지 않으니 해내가 평안하고 사방이 무사하고 백성이 생업에 안주해 천하가 태평합니다. 폐하께서는 맑고 화목한 모습으로 높은 곳에 앉아 계시고 신들은 각각 자신의 자리를 편안히 지키며 직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혼란하게 앞일을 변경하며 일을 많이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_‘제101회 혜제의 시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