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글쓰는 공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장미는 장미인 것이 장미다.” 구두점을 찍지 않는 등 형식을 해체하며 문학에서 큐비즘을 구사한 거트루드 스타인의 글이다. 스타인의 집필 공간은 당대 화가들의 걸작으로 채워진 자신의 아틀리에였는데, 글을 쓰기 전이면 늘 그림을 감상했다고 한다. 당시 회화의 대담한 실험 정신을 언어의 무대에서 발휘한 그에게 이 공간은 단순한 ‘장소’ 이상이었다.
굳이 스타인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작가에게 작품을 쓰는 환경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여기에는 글을 쓰는 공간뿐 아니라 도구, 소리, 시간, 자세, 분위기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 모든 요소들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며, 어떤 경우에는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타니아 슐리는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여성 작가들이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글을 썼는지를 다양한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또한 집필 공간에 대한 묘사에서 그치지 않고, 작가에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곁들이며 그들의 인생을 추적해감으로써, 책 속의 모든 작가에게서 매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글을 쓰기에 적당한 환경은 어디일까?
반드시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던져봤을 질문이다. 글을 쓰는 시간을 정해놓아야 할까, 아니면 아무때나 쓸까? 정해놓아야 한다면 이른 아침이 좋을까, 늦은 밤이 좋을까? 적당한 소음이 있는 공간이어야 할까, 조용한 분위기여야 할까? 항상 같은 곳에서 써야 할까, 아니면 고정되지 않은 곳에서 쓸까? 담배라도 피워야 하는 걸까?
미국의 소설가 캐서린 앤 포터의 답을 빌리면, 그것은 ‘다분히 개인적인 문제’로 사람마다 ‘각기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호텔방을 전전하며 왕성하게 글을 생산해낸 도로시 파커, 공공장소를 주된 생활공간으로 삼아 카페에서 글을 쓴 시몬 드 보부아르, 침대에 맞춤 책상을 올려놓고 글을 쓴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에 이르기까지, 여성 작가들은 처한 환경이나 성격 등에 따라 다양한 공간들을 선택해왔다. 우리가 “작가”라고 부르는 이들은 자기에게 적합한 공간을 찾아내 그곳에 자기 몸을 애써 밀어넣은 사람들인 것이다. 아니면 책상과 타자기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던 애거사 크리스티처럼 예외적인 인물이거나.
이른 새벽, 식탁 위에서 글을 써야 했던 여성들
타니아 슐리가 여성 작가에 집중한 이유는 과거에 많은 여성들이 글을 쓸 때 부딪혔던 열악한 현실 때문이다. 여성들이 글을 쓴다는 것은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게 그들의 의무였던 시절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역설한(정작 울프는 가지고 있었던) ‘자기만의 방’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여성 작가들 중 많은 수가 글쓰는 환경으로 새벽의 부엌을 택한 것도 이러한 시공간적 제약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공간들은, 그럼에도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여성 작가들이 겨우겨우 찾아낸 곳들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여성 작가들이 글을 쓸 때 부딪히는 환경은 지금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여성에게 자기만의 공간, 그리고 특히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남성에 비해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 작가 중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100년이 넘는 문학상 역사에서 14명뿐이라는 사실도 이러한 어려움을 반영한다.
이 책은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유명 작가들과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 영어로 작가를 쓴 영미권 작가들이며 그 외에는 유럽권 작가들이다. 타니아 슐리는 이 책에서 작품 해석을 시도하진 않았다. 저자는 여성 작가들이 어디서 어떻게 글을 썼는지를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그들에게 친숙함을 느끼고 그로 인해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여성 작가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독자층을 갖게 된다면 ‘공간’ 이상의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