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사랑해버린 식민 2세의 고통
이 책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는 1927년 한반도에서 태어난 모리사키 가즈에가 그곳에서 지냈던 17년 동안을 다룬 회고록이다. 식민자의 딸로서 자신을 품어준 땅에 대한 개인적 애착과 역사적·민족적으로 짊어져야 할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며 조선에서 지낸 17년간을 회고한 이 책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어머니와 같은 애정과 그 어머니와 같은 조선을 사랑해버린 어느 식민 2세의 고통을 그렸다. 1984년 신쵸샤에서 출판된 이후, 1995년에는 지쿠마쇼보, 2006년에는 요센샤에서 출판되었다. 일본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읽혀지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모리사키는 이 작품에 대해 “식민지 체험을 적는 건 괴로운 일이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일회성이 마음에 걸려 후세를 위한 증언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가급적 신변 자료만을, 그것도 당시에 한정하여, 다시 읽으며 썼다”고 한다. 모리사키는 자신의 경험과 패전 후에 읽은 사료를 대조하며 식민지 조선에서 지낸 일본인의 일상을 세심하게 묘사했다.
모리사키는 2008년에 간행된 자신의 전집을 “식민지 일본인 2세의 뒤틀린 원죄 의식을 바로잡고 싶어서 고뇌하며 살아온 나의 발자취”라고 평가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식민지 조선에서 나고 자랐다는 원죄 의식은 엄중했다. 동시에,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집필 활동의 핵심이었다. 즉, 이 책은 식민지 조선에서 산 일본인의 일상을 알 수 있는 실마리인 동시에, 다방면에 걸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모리사키 가즈에의 작품들을 독해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한다.
모리사키 가즈에는 누구인가
모리사키 가즈에는 탄광촌에서 생활하며 활약한 시인이자 작가다. 일본에서는 선구적인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녀는 1927년 일제 통치하의 조선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44년 후쿠오카현립여자전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패전 후 마루야마 유타카丸山豐가 주재하는 시 잡지 『모음母音』을 통해 활동했다. 또 1958년에는 시인인 다니가와 간谷川雁과 함께 지쿠호筑豊 지역 탄광촌인 나카마中間로 이주해 ‘서클촌’이라는 문화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59년 8월부터 1961년 7월까지는 여성 교류 잡지 『무명통신無名通信』도 간행했다. 탄광에서 채석되는 석탄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사이 일본의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되면서 탄광촌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녀가 탄광촌에서 지낸 것도 마침 그 무렵으로 탄광산업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변화와 그에 따른 고통을 견디며 싸워야만 했다. 그리고 1979년부터는 무나카타宗像라는 곳에서 생활하며 문필활동을 계속했다. 식민지에서 태어난 모리사키는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며 작품 활동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모리사키가 다뤄온 주제는 식민지 문제, 여성 문제, 탄광사炭鑛史, 노동 문제, 천황제, 내셔널리즘, 환경, 생명 등 다양하다. 조선과 한국에 관한 책도 많다.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나의 원향原鄕』(1984), 『메아리치는 산하 속으로: 한국기행 85년 봄』(1986), 『두 가지 언어, 두 가지 마음: 어느 식민지 일본인 2세의 패전 후』(1995), 『사랑하는 건 기다리는 거야: 21세기에 보내는 메시지』(1999, 여학교 동창이자 1989년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김임순 거제도 애광원 원장에 관해 쓴 책) 등이다.
2008년에는 후지와라쇼텐에서 전집 『모리사키 가즈에 컬렉션: 정신사 여행』(전5권)이 출판되었다. 전집 출판에 즈음해서는 쓰루미 슌스케鶴見俊輔, 우에노 지즈코上野千鶴子, 강상중姜尙中 등 일본의 최일선
에서 활약하는 연구자들이 추천사를 썼다.
이 책의 번역 과정에 대하여
이번에 한국에서 번역 출판을 하는 데 있어 특히 주목할 점은 텍스트에 그녀와 가족이 살았던 환경(대구·경주·김천)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배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구와 경주, 김천은 그녀를 만든 주형鑄型으로 한반도의 자연과 그곳의 사람들이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한반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한국에서 번역 출판을 해보자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사실 그녀의 출생지인 대구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에서의 번역 출판이 이뤄지게 되었다. 2001년부터 도시에 남아 있는 물리적인 공간의 역사를 시민들이 직접 조사하고 기록하여 새로운 향토사를 만들어가려는
시민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의 자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이런 자료는 한국에서 구하기가 어려워 그 누락된 자료에 대한 아쉬움이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시민운동은 일본에 남아 있는 자료와 텍스트에 강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도시의 물리적인 공간을 해석하기 위해 그러한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동번역자인 마쓰이 리에松井理惠는 2003년부터 모리사키의 출생지인 삼덕동(구 삼립정)에서 마을 만들기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삼덕동에는 일본식 가옥(적산가옥)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에 관심이 생긴 마쓰이 리에가 앞서 언급한 시민운동을 접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대구에 대한 텍스트를 찾던 마쓰이 리에는 2006년에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대구에 사는 지인들에게 책을 소개한다.
2007년 앞서 언급한 시민운동은 그동안의 현장 조사 성과를 『대구 신택리지』로 발간했다. 그리고 마쓰이 리에는 『대구 신택리지』를 모리사키 선생님께 전달해드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둘 사이에 편지 교환이 시작된다. 2008년에는 마쓰이 리에가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에 살고 계신 모리사키를 찾아뵙기도 하면서 인연을 이어나갔다. 2013년에 시민사회와 대구광역시 중구청이 함께 해온 활동이 좋은 평가를 받아 아시아 도시경관상(‘대구의 재발견에 의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을 받았다. 이때 후쿠오카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한 권상구 씨가 따로 일정을 잡아 무나카타로 모리사키를 찾아가게 된다.
책 번역 출판이 움직이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권상구 씨의 이무나카타 방문이었다. 그의 통역으로 동행한 마쓰이 리에가 모리사키로부터 한국어 번역 출판 허락을 받았다. 그 후, 앞서 언급한 ‘대구읽기모임’의 멤버이며 현재 민간 한일교류 거점 공간인 ‘대구하루’를 운영하는 박승주와 마쓰이 리에가 공동번역 형식으로 번역 작업을 진행했다. 먼저 박승주가 초벌 번역을 하고 그것을 마쓰이 리에가 원저와 대조하면서 확인하고 다시 박승주가 번역 작업을 마무리했다.
또한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 그림엽서와 사진, 지도가 많이 삽입되어 있는데 대구 자료는 권상구 씨가 약 15년에 걸쳐 수집해온 자료다. 모리사키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일제강점기의 한국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래서 번역자들도 한국 젊은이들에게 식민지 조선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이러한 자료는 이번 번역 출판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