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과 죽음
시인 박기영의 첫 소설이다. 캐나다 이민으로 한동안 문학계를 떠나 있었던 박기영은 귀국하여 네 편의 우화소설을 준비했다. 『빅버드』는 그중 하나로, 캐나다에서 몸소 겪었던 실화적 요소와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설화적 요소를 덧붙여 새들의 시선으로 해석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빅버드』는 총 여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삶과 죽음이다. 특히 작가는 열린사회 속 닫힌사회의 죽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죽음을 고통, 슬픔, 공포 등으로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죽음을 인식하지 않는 삶, 즉 삶의 씨앗을 죽음이라는 것에 자연스럽게 심어놓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서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다름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의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는 온몸으로 체득한 그만의 문장으로 인간의 이기심, 생명 경시, 탐욕, 폭력, 문화적 다양성의 몰이해 등 사회문화 현상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풍자한다.
“누구에게나 하늘은 몸을 맡기는 순간부터 처음의 세계야.
어제의 바람이 내 날개를 지나가지는 않아.
매번 새로운 바람이 날개를 부풀리는 법이지.”
실화적 요소에 설화적 요소를 가미한
세상 이야기
작가는 1997년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문학계를 떠나 있었지만 절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캐나다 정부의 예술인 지원정책에 힘입어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설화와 밴쿠버를 배경으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의 주제로 삼았다. 하지만 발표하지 못하고 귀국하여 오랜 시간 준비한 끝에 이제야 첫 소설로 발표하게 되었다.
『빅버드』에는 작가 스스로 “지독한 유배”라고 했던 5년간의 캐나다 이민자 생활이 오롯이 담겨 있다.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바라본 블루베리 농장,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고된 삶, 문화적 자유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모자이크 도시에서의 문화적 몰이해에서 비롯된 충돌 등 인간집단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을 해부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설화에서 차용한 빅버드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의 탄생을 주관하고 모든 생명의 안녕을 바라는 빅버드를 상징으로 삼음으로써 치우침 없는 조화로운 세상을 기원한다.
“새들에게는 늘 날아다녀야 하는 하늘이 있어야 하고, 그 하늘 위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어 모든 새의 비행에 합당한 명분을 주어야 해. 그러려면 한 무리의 새가 빅버드의 후예가 되어서는 안 되는 거야. 그 새는 모든 밴쿠버 새의 꿈을 담고 있어야 해.”
타자화하는
열린사회 속 닫힌사회
밴쿠버에서 작가가 보고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새들의 시선을 통해 그린 세상에서 그는 무엇을 전하고자 했을까?
작가는 새들의 삶을 통해 우리 인간이 깨달아야 할 세계를 보여준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기를 마다하지 않는 인간과 달리 하늘을 나누어 가지며 하늘의 법칙을 공유하고 공존하는 새들의 조화로운 사회는 열린사회를 대변한다. 이에 반해 모자이크 도시라 불리는 밴쿠버, 마약중독자를 수용하는 이스트헤이스팅스의 마약주사센터 등은 표면적으로는 열린사회이지만 한편으로는 닫힌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방인과 그들의 풍습이나 전통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마약중독자도 수용하지만, 자신들과의 부조화를 인정하지 못한 채 그들을 타자화한다.
“사람들은 밴쿠버를 모자이크 도시라고 했다.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문화와 풍습이 다른 데서 오는 충돌이 생겼다. 그때마다 밴쿠버 사람들은 절충하기보다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문제의 핵심을 피했다. 그러다보니 각기 다른 풍습과 전통이 존재하면서 도시 전체의 문화가 된 것이었다.”
언젠가 작가는 “문학은 사물을 인식하는 힘이고 신들이 만들어놓은 것을 인간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그들을 남들과 공감시키는 작업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작가가 『빅버드』를 통해 공감시키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한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도시에서 보고 깨달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일뿐이다.
그곳 하늘을 날던 모든 새에게 감사한다.”_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