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와 밀려오는 왜적의 먹구름
일본의 전국시대가 끝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장악한 시기,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리라는 소문이 들려오고 조선은 통신사를 보내기로 결정한다. 황진도 5촌 당숙인 황윤길을 따라 통신사 호위무관으로 사행길에 나선다.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은 각각 서인과 동인으로 당색도 다르고 성향도 달라 사행 내내 충돌한다.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고자 여러 술자리에 참여하는 황윤길과 달리 김성일은 예법을 중시하며 임무를 다하기 전까지 방에서 서책만 읽는다. 통신사 임무를 마치고 조선에 귀국해서도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묻는 선조에게 황윤길과 김성일은 서로 다른 의견을 보고한다.
“도요토미는 사납고 탐욕이 강한 자로 강한 군세를 내세워 외국을 노리는 자. 머지않아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것이니 대비해야 한다”(75쪽)라는 황윤길의 의견에 동인들은 “세력을 잃은 서인들이 왜침 가능성을 부풀려 주상 전하의 심기와 백성의 인심을 동요시켜 정국 주도권을 되찾으려 한다!”(76쪽)라며 맞서고 결국 일본의 내침을 부정한 김성일의 의견이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1년 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왜검을 휘두르며 전장을 누빈 조선 무관, 황진
소설 속 시간은 통신사 출발부터 진주성 2차 전투까지 3년에 불과하지만 그사이에 황진이 남긴 행적은 심상치 않다. 일본은 다년간의 전쟁을 거쳐 무력적으로 매우 성장한 상태인데 조선 조정의 인식은 이전의 일본 모습에 머물러 있었다. 선조와 조정은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한 채 탁상공론만 펼치고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어 권력 싸움에 정신없던 그때, 한 발짝 떨어져 미래에 대비한 인물이 바로 황진이었다. 황희의 5세손이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하급 무관 황진의 활약을 눈앞에서 본 듯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의 필력에 작품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 것이다.
“일본도를 들고 싸우는 저 조선군 지휘관은 동복현감 황진이라는 자라고 합니다. 2년 전 조선 통신사 일행의 호위무관으로 관백을 알현했었다고도 합니다. 군사를 지휘하고 싸우는 모습이 결코 만만치 않은 자 같습니다.”(133쪽)
황진은 일본에 편견이 없었다. 일본의 발전된 모습을 보며 놀라워하고 배울 점이 있다면 배우려 했다. 통신사로 일본에 방문했을 때에도 왜검법을 배우고 조총과 일본군의 훈련을 관찰하며 그에 대응할 방법을 강구했으며 귀국할 때에는 왜검을 몰래 구매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이 후에 일본과의 전쟁에서 빛을 발했다. 수로 밀어붙일 생각만 했던 오합지졸의 조선군에게 황진은 구세주와 같았다. 백발백중의 명궁인 데다 일본도를 들고 일본인들을 베는 황진은 일본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우리 시대 모든 언성 히어로에게 바치는 이야기
황진의 뛰어난 무예와 재치 있는 계략을 엿볼 수 있는 웅치, 안덕원, 죽주산성 전투, 그리고 외롭고 치열했던 진주성 2차 전투까지,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오직 조선의 백성들을 지키고자 싸웠던 무관의 이야기이다. 임진왜란은 한국문학사에 수도 없이 등장한 소재이지만 잊혔던 인물 황진을 오늘날 다시 숨쉬게 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 여러 사료 속에 활자로 남아 있던, 그 시절 분명히 존재했던 황진은 오늘의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의인이다.
이 작품에는 이순신, 권율, 곽재우 같은 유명한 인물들도 등장하지만 황진처럼 낯선 이름들에 더 마음이 쓰인다. 우리는 모두 무쌍無雙한 존재이나 그것을 알아봐줄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는 다정한 마음이 배어 나오는 소설, 『임진무쌍 황진』. 작품 말미에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역사’란 시간이란 전장 속에서 펼쳐지는 끊임없는 ‘기억의 전쟁’이다. 한편에선 잊기 위해서, 다른 한편에선 기억하기 위해서 처절하고 집요하게 몸부림을 친다. 그런데 시간은 원래 망각의 편인지라, 자연스러운 세월의 흐름 속에 누구도 돌보지 않고 내버려두면 잊히기를 바라는 쪽이 결국에는 승리하고야 만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에서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다음 시대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_「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