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 곁엔 누가 있는가
일상을 돌아봐도, 역사를 돌아봐도 사람은 혼자서 삶을 일굴 수 없다. 국가의 기반을 다지려는 이들은 같은 편에 있어줄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학문이나 예술을 하는 이들은 견해를 나누며 서로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줄 이들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은 그리하여 ‘파트너’로 엮였던 옛사람들의 만남과 관계를 살펴본다.
각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지금 내 곁에는 누가 있는가? 어떤 사람은 곧장 남편이나 아내, 혹은 연인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범위를 더 넓혀보면 친구, 같은 뜻을 품고 같은 길을 가는 동지나 동료, 동학이 우리 삶에서 아주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삶의 중요한 성취들을 같이 일궈간 이야기를 큰 줄기로 삼고 있다.
18세기 후반 황윤석과 김용겸의 우정을 먼저 들여다보자. 이들은 출신 성분이 크게 차이 났다. 김용겸이 한양의 명문거족 출신이었다면 황윤석은 궁벽진 시골 출신에다 관직도 보잘것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나이가 거의 서른 살이나 차이 났고, 황윤석이 관직을 수행할 때 몇 년 한양에 머무른 것을 빼면 마주 보고 앉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살기도 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박학博學 동지’가 되었다. 어른 김용겸은 황윤석의 지적 세계에 들어갔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황윤석 역시 누구나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오픈 마인드를 지닌 황 어른과의 대화를 즐겼다. 이리하여 둘은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가 서로의 세계에 침투하도록 문을 활짝 열었다. 그들의 우정은 김용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지만, 황윤석은 그의 사후에도 감사와 은혜와 지기를 입었다며 김용겸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드러냈다.
조선의 학술계를 빛낸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동반자 관계에서 핵심이 된다. 그중에서 이 책은 이익과 안정복의 만남에 조명을 비춘다. 안정복은 학문에 몸담으며 책도 여러 권 펴냈지만 여전히 자신의 공부법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그런 불안감이 들 때마다 그는 성호 선생에게 가르침을 청했고, 성호는 자신이 생각하는 학문의 방법을 제시하면서 두 사람은 당대의 중요한 현안들을 놓고 토론하는 일이 잦아졌다. 시대 변화를 좇고 그에 맞는 학문 체계를 수립하려던 안정복은 스승 이익을 만나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확신했고, 이로써 안정복의 학문을 꽃을 피우게 된다.
기성 문학의 권위에 도전한 김려와 이옥의 우정에도 눈길을 마땅히 주어야 한다. 두 사람은 정조의 문체반정이 한창이던 시절 가혹한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기성 문학 권위에 도전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개성 있는 문체로 표현하고자 했다. 두 사람은 젊은 날 성균관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글 잘하는 김려는 강이천이라는 친구의 일에 연루되어 책을 보던 중 체포되어 유배를 가게 됐고, 이옥은 시험답안지에 소설체를 썼다고 충군되었다. 이들은 유배지에 있으면서도 서로 독려하며 수많은 글을 남겼는데, 이렇듯 시대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글을 쓴 두 친구가 조선사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서 스승과 제자의 또 다른 모범적 사례인 추사 김정희와 역관 이상적의 사연을 살피고, 부부 유희춘과 송덕봉도 만나본다. 유희춘과 송덕봉은 조선시대 부부로는 드물게 시와 학문을 함께 한 이상적인 관계였다. 자상하고 배려심 있는 남편과 학문 및 시문에 능한 재능 있는 아내의 결합을 통해 우리의 통념을 넘어선 조선시대 부부의 결혼생활을 엿본다.
대한제국기 언론인 박은식과 장지연도 주목할 만한 관계다. 박은식은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발표한 「시일야방성대곡」에 화답하여 『대한매일신보』에 「시일에 우 방성대곡」이라는 사설을 내보내기도 했는데, 이 둘은 자강自強이라는 시대정신을 공유하며 일본 제국주의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에 항거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동반자들의 이야기는 주인공 둘 혹은 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것은 그들만의 사적인 이야기라 할 수 없다. 그들의 만남이나 헤어짐은 개인적인 맥락보다는 역사적인 맥락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는 주인공들의 사연을 통해 그 시대의 역사를 더 세밀하고 생동감 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꿈을 꾸며 갈라서고 끝내 배신까지 했던 동행자들
처음에는 누구보다 가깝고 사랑하며 평생 함께할 것처럼 여기지만, 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둘 사이에 균열을 내고 각자의 목표나 지향점이 달라짐에 따라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조선 사람들의 동행』에는 동지적 관계에서 출발했다가 서로가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걸은 이들의 만남도 다루고 있다.
우선 임금과 신하로 한길을 갔던 세조와 양성지를 만나본다. 세조는 양성지를 자신의 제갈공명이라 평했고, 양성지는 세조를 도와 국가의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양성지는 집현전 관원 시절에 세조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특히 국방에 대한 양성지의 관심과 병학가로서의 재능, 정치관이 세조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세조는 양성지가 자신의 국정 운영을 학문적으로 보좌하는 ‘싱크탱크’가 되어주기를 바랐던 반면, 양성지는 현실 정치에서 자신의 학문과 경륜을 실현하려는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즉 양성지는 세조에게 자신이 바라는 바대로 쓰임을 받지 못한 채 두 사람의 관계는 동상이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안평대군과 화가 안견의 좋았던 관계도 안개 속에 싸인 결말로 내달렸다. 예술애호가이자 서예가였던 안평대군은 안견의 뛰어난 그림 재주를 보고 그를 마음에 쏙 들어했다. 안평대군은 누구보다 안견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고, 그리하여 두 사람의 동행은 「몽유도원도」라는 걸작을 낳았다. 안견은 안평대군을 만난 덕분에 정계의 정상급 모임에 들었고, 중국의 회화 진작을 어루만지며 그림 실력을 높이는 가운데 최고의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안평대군의 안견에 대한 특별한 총애는 식을 줄 몰랐다. 그러나 안견은 어느 날 홀연히 왕자 안견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몽유도원의 핑크빛 무드에 끼어 있는 먹구름을 감지한 인물은 안견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헤어짐에 역할한 물건은 아이러니하게도 ‘용매묵龍煤墨’이라는 먹 한 덩어리였다. 이들의 아연한 관계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비극으로 끝난 중종과 조광조의 동행도 조선사의 중요한 한 자락이다. 두 사람은 도학정치의 실현이라는 이상으로 의기투합했지만 그 동행은 중종의 배신과 기묘사화, 조광조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두 사람의 만남이 비극으로 치닫게 된 사연을 들여다보자.
이승만, 정순만, 박용만, 이른바 삼만형제의 인연과 악연은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대한제국기 국권회복운동을 벌이던 세 사람은 한성감옥에서 만나 형제의 결의를 맺었다. 그러나 하와이에서 다시 만난 이승만과 박용만은 돌이킬 수 없는 악연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암울한 시기 독립운동가들의 슬픈 결별에 대한 이야기는 각자의 야욕과 목표에 따라 동행이 계속될 수만은 없음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책속에서
한직에 머물러 있으면서 평생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며 국왕의 정책을 보좌하는 역할은 양성지가 바랐던 바가 아니었으리라 짐작된다. 신숙주가 41세에 정승의 반열에 올랐던 것은 특별한 예외로 치더라도, 집현전에서 함께 성장했던 동료 학자 대부분이 세조대 중후반에 6조의 판서직을 역임하며 국정을 담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양성지는 상당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양성지가 올렸던 수많은 상소와 정책 건의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고 여겨진다._38쪽
그의 문하에 출입하던 자들이 모두 연루되어 죽었으나, 안견만은 유독 이 일 때문에 화를 면했으므로, 사람들이 그제야 비로소 그를 이상하게 여겼다. 아, 덕을 품고서 고의로 더러운 행실을 하여 세리勢利의 화를 스스로 면하는 일은 옛사람도 하기 어려운 일인데, 안견이 유독 이 일을 해냈으니, 이 사람이 어찌 또한 기미를 알고 세속을 초월하여 자기 소신대로 처신한 선비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안견은 이 기예에만 국한된 사람이 아니라 또 별도로 높은 식견과 원대한 생각과 세상을 탐탁잖게 여기는 지취가 있으면서도 다만 이것으로 이 세상에 처신하면서 이 기예에 몸을 의탁한 자가 아닌가?_61쪽
낯선 시골 청년의 방문을 받은 김용겸은 다소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씨족원류』를 꺼내 보여주기는 했지만 빌려주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 책은 당시 도성 안에 몇 질이 없는 귀한 책이었다. 낯선 청년에게 선뜻 내줄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경험 많고 박식한 노인은 할 이야기도 많았다. 그 역시 젊은 시절부터 집안의 족보를 편찬하기 위해 많은 힘을 쏟아 보학에 관심이 많았다. 이야기는 『씨족원류』에서 시작해 당시에 새로 알려진 정시술의 『제성보』, 임곤의 『성원총록』 같은 족보와 『주자가례』의 복제服制 문제로 이어졌다. 두 집안의 가계 이력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황윤석의 관향인 평해의 월송정, 고향 인근인 변산반도의 명승지로 이어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이어가던 두 사람은 의영고 옆 사역원 열천루에 함께 놀러 가자고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그사이 김용겸은 마음을 열어 황윤석에게 『씨족원류』 7책을 집에 가져가서 보라고 허락했다._1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