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은어
- 저자
- 서한나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일
- 2021-07-08
- 사양
- 232쪽 | 133*205 | 무선
- ISBN
- 978-89-6735-927-0 03800
- 분야
- 산문집/비소설
- 정가
- 15,000원
-
도서소개
“그러나 우리는 사랑에 빠질 것이다.
해본 적 없는 말을 쏟아낼 것이다.”
읽고 나면 기어코 쓴 사람을 찾아내게 만드는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찾아내게도 만든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려는 듯이, 살지 않은 삶을 살아보려는 듯이 탐닉에 가까운 독서를 하게 만든다.
『사랑의 은어』는 지난 몇 해간 쓰인 산문들을 엮은 서한나의 첫 단독 저서다. 대전에서 잡지 『보슈BOSHU』를 만들며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공저 『피리 부는 여자들』(BOSHU, 2020)과 『한겨레』 칼럼 ‘서울 말고’, 메일링 서비스 ‘잡문프로젝트’를 발행하는 동안 써온 글들이 그렇게 읽혔다. “몇 번이나 울면서 읽었”고(임승유), “잠을 못 잤다”(이슬아)는 추천의 말들이 증언하듯, 독자는 어떤 열렬함 속에서 그의 글을 만나왔다.
“글을 쓰면 삶이 두 번째가 되고 그저 체험할 것이 된다.”(230)
지겨운 쪽이든 그리운 쪽이든, 익숙하게 여겨온 것들은 낯선 모습을 하고 이 책에 다시 나타난다. 그 낯섦에 따라붙는 기이함과 정다움은 늘 보아왔지만 짐짓 못 본체 지나온 것들을 작정이라도 한 듯 불러다놓고 주시함으로써 저자가 만들어낸 감각이다. 오늘의 한국이라는 비애와 부조리, 잊힐 수 없는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동요를 차곡차곡 가라앉힌 다음 그가 다른 무엇으로 길어 올린 말들은, 일단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이들에게는 ‘은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번에 알아들을 경험으로 제시된다. 쓰는 사람들 입에 빈번하게 오르내리던 은어는 더 넓은 세계에서 인식되고 회자될 때 비로소 그것이 은어였음이 자명해진다. 또 바로 그 순간부터 더는 은어가 아니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 바로 그런 역설의 운명을 지우고,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굳이…… 싶은 모든 것을 하게 하고”(231)
글이 된 삶이 재현이자 환상이라면, 독자가 글을 읽는 동안 글이 독자를 응시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어떤 마음을 먹게 하는 일도. 『사랑의 은어』에는 많은 장소와 인물이 등장한다. “아, 여기는 한국이다”(25) 싶은 장소들의 무서움, 추함, 광기. 이해되지 못한 채 견디어진 세계를 기어코 살아내고야 마는 사람들. 그 잡스러운 세상에서 한없이 무거운 것이 어떻게 한없이 가벼워지는지, 한없이 가벼운 것은 또 어떻게 모든 것을 짓누를 수 있는지―다시 말해 사랑이라는 것이 어떻게 탄생하고 지속되는지를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상함 거대함 지난함에 부딪혀 간과되고 포기되고 망각될 뻔한 사랑을 건져 올린다. 사라지려는 것을 사라지지 않게 하고, 보이지 않게 됨에 저항한다. 일순간의 위력에 제압될 뻔한 오래된 진실, 허술한 장면 아래 잠재하는 과정의 견고한 힘을 드러냄으로써. 단지 결과이기만 한 게 아니기에 이 책의 사랑은 내 것이 아닐 이유가 없고, 우리가 아닐 이유도 없다. 구체성은 은어일지언정 사랑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언어를 통해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 똥집에서 우러난 경험!”(177)
그리고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독자를 부추겼던 바로 그 방식으로 익숙한 순간들을 다시 살아내며 자기를 발견하고 사랑을 혁명으로서 경험하는 과정을 적어 내려간다. “나를 제때 변호하지 못했다는 생각과 말없이 웃던 시간이 모여”(12) 쓰게 되었다는 글은, “신이 나면서도 당혹스러웠”(12)던 이 세계와의 불화를 돌파해나간다. 어려움과 불가능함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면서, 화해가 필요 없는 세계와 결별하고 당연한 세계를 재창조함으로써.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글은 독자의 삶에 작가의 이름을 등장시키는 동시에 이 세계에 그의 독자를 등장시킨다. 사랑하는 두 여자는 내밀한 둘만의 세계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세계를 부수고 나온다. 혼자서 느낀 위화감의 맥을 끊고 그 안에 흐르던 것을 밖으로 넘치게 한다. 만나고 스며들며 여기 쓰인 이야기를 보라고 말하는 대신, 이것을 경유해 홀로 내면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타나는 그것이 바로 우리 각자의 진실임을 굳게 믿어준다.
바로 여기서 어떤 독자는 자기를 발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서한나가 될 것이다. 생각이 읽힌다는 감각에서 생각을 내맡긴다는 감각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가 살고 싶어할 때 우리도 살고 싶어지고, 그가 사랑에 빠져들 때 우리도 사랑에 빠지며, 그가 허벅지에 번지는 황홀의 극치를 라듐이라고 말할 때 우리도 그것에 피폭된다. 작품에 독자적인 생을 부여한다.
“우리의 믿음은 아주 조금씩 생겼다”(162)
“시간들을 뚫고”(195)
이 특별한 이중 동일시는 조건을 탁월하게 조명하면서도 조건을 초월할 때 가능해진다. 무엇이 거부되는지, 어떻게 부정되는지는 거부하고 부정해야 할 것 자체보다 그것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세계를 더 드러낸다. 어떤 성별, 어떤 계급을 가진 이들은 의심도 불안도 없이 누려온 것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삶의 목적을 압도하는 선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날것의 현실을 잡아다 앉히고 말을 퍼다 부으며 저자가 발 디딘 곳은 그 같은 현실이 주어지기 전부터 존재했고 사라진 이후에도 존재할 자기 삶, 그만의 고유한 세계다.
그 세계는 동세대 감수성이나 로컬의 구수함 같은 범주에는 오롯이 담기지 않는다. 청년 여성의 삶과 중노년 여성의 삶, 태어나지 않은 여성과 죽은 여성의 삶이 다르면 얼마나 다른가? 1960년대와 1990년대, 2000년대와 지금은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나? 서한나를 다른 많은 작가와 구분 짓는 글의 인상은 이런 차이를 날카롭게 인식한 상태에서 공통을 꿰어 관통할 줄 알고, 그 안에서 “천당도 지옥도 다 여기에 있다고 재미있지 않냐고”(231)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읽는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는 언어로 그 발견을 활자화할 수 있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다.
조명된 현실을 초월하기 위해 저자가 내어놓는 것은 글이 된 삶이다. 그가 놓인 삶의 조건들, 그것이 표현된 방식, 그리고 이 책이 소설 아닌 수필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독자는 세상에 없는 책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고, 비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칼로 베고 살로 안아낸 현실이 미혹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 현실이 사랑 자체이기 때문임을 다시 확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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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199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친구들과 함께 『피리 부는 여자들』을 썼고, 대전 페미니스트 문화기획자 그룹 보슈BOSHU에서 활동한다. 『한겨레』에 ‘서울 말고’ 칼럼을 연재 중이다. 글을 쓰다 보면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글이 잘 써지기도 한다. 엄마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써진다. 애인과 엄마, 그리고 친구가 주제이자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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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이국정취
서울을 돌아다니며 한 생각
너는 내가 아닌 것 같다
은밀한 관심사
타인의 방
납골당에 가면
분지 사람이라고 바다를 모르겠냐만
번개
착각하지 않고서 어떻게
산책
벚꽃 피는 계절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
계곡에 갔어
놀이터에서
식물원 옆 카페
바람 부는 날이면
유성
손가락 마디마디 분홍색
진실 게임
수업
밤이 너무 크고 무거울 때 생각나는 것
겨울에는 봄 얘기하게 된다
맛있는 것 앞에서 환장을 하고 먹지
항상 유머를 잃지 말자구
길 위의 엄마
꽃님이의 자식농사
삼한사온
이 사랑을 고백하려다 사람들은 나가 떨어졌다
사랑이 그리워?
네가 기다리니까 집에 가야지
저녁은 밖에서 먹을까
초성
나하고 유원지에 갈까
우리의 시간
말이 통하는 사람
왜냐고 물었다
어깨가 건강한 사람
우리는 그렇게 될 것이다
랠리
여행
워싱턴 김치찌개
밥
수박
귤
오렌지
오렌지 기분
버터플라이라넌큘러스
가을 하늘
편지
맨 얼굴
호텔 메모지에 적힌 말들
친구는 동료가 된다
동료는 친구가 된다
우정 테스트
샤이닝
위스키 바닐라 아이스크림
쓰기의 즐거움
장면들
김남순의 필적
멜론
벽돌로 만든 집
책상에 모과를 두고 앉으면 생각보다 향이 자주 난다
커튼콜
희곡의 삼요소
꿈을 꾼다
계속 시작하기만 한다
사랑은 감미롭게 혁명은 치열하게
예스
나를 떼어놓고 멀리 가고 싶어
나 요즘 행복해서 글이 안 써진다
즐거운 일기
손
어떤 담배 냄새
생각
뺨의 총체
데이트
연애를 하면서도 짝사랑 노래를 듣는다
나는 알고 싶은 것 같다
나는 모르고 싶은 것 같다
에필로그
-
편집자 리뷰
추천사
원고를 다 읽고 조금 부러웠다. ‘조금’이라고 적었지만 그 조금이 점점 확대되면서,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한나는 내가 살았으면 했던 그 질감으로 한 시절을 살아내고 있었다. 자기가 자기를 보살피는 게 뭔지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입술을 깨물며 삼킨 감정이 자리할 시공간을 공들여 구축해내는 작가의 문장은, 내가 놓쳤거나 일부러 삭제해버린 존재들을 떠올리게 했다. “미로는 좋은 애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나 좋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손가락 마디마디 분홍색」은 좋아서 몇 번이나 울면서 읽었는데, 지금부터라도 ‘미로’를 놓치면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야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사람도 나오고 장소도 나오고 음식도 나온다. 색깔도 나오고 손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과즙도 나온다. 뭐가 나오든 작가의 사려 깊은 시선을 듬뿍 받은 후라서 어떻게든지 살아서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이 좋은 이유가 모든 존재에 공평하게 내어준 시선 때문은 아니다. 작가는 오히려 이미 충분히 관심받는 존재들은 살짝 밀쳐놓고, 우리 삶에 배경처럼 존재하는 것들을 전면화한다. 버려진 공터에 쓰레기를 버리는 게 아니라 꽃을 심는 생활, 쟤 정말 이상해 말해버리기 전에 나의 이상함을 떠올려보고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버리는 생활,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저녁에 몸을 일으켜 공들여 만든 음식을 먹는 생활. 나와 너를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구체적으로, 또박또박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 어디를 펼치든 살고 싶다는 마음을 챙기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_임승유·시인
서한나의 글을 처음 읽은 밤에는 잠을 못 잤다. 못 잔 이유는 많지만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너무 커다란 반가움 때문이었다는 얘기. 신문에 그의 칼럼이 실리는 날이면 눈 뜨자마자 찾아 읽는다. 도대체 매체들이 서한나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고 뭐 하는지 답답해하면서. 이렇게까지 말맛 있게 쓰는 작가가 우리 또래에 또 있던가. 나는 대체 불가능한 서한나를 따라 브루클린에 가고 가수원과 유성을 배회하고 천변을 걷고 술집에 앉고 낯선 냄새를 맡고 아직 안 먹어봤지만 알 것 같은 맛을 보고 더 볼 것도 없이 지긋지긋한 장면에서 환장하게 좋은 사유를 건져 올린다. 그러다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을 아끼게 되고 가보지 않은 장소들을 그리워하게 되고 야해지고 명민해지고 서울을 이상하게 여기게 된다. 서한나가 서울 아닌 장소에서 모아 온 보물들을 궁금해하며 이렇게 부탁한다. 더 말해달라고. 더 가르쳐달라고. 그는 지금 내가 가장 기다리는 작가다.
_이슬아·작가, 헤엄 출판사 대표
레즈비언의 경험은 언어의 부재라는 역사가 누적된 끝에 전인지적 차원에 머무르곤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언어 외적 차원에서라도—서한나식으로 말하자면 표현할 단어가 있기 전부터 존재해왔다. 존재감 뚜렷한 그 물질은 우리로 하여금 굳이, 싶으면서도 위반을 감행케 하고 언어 없이 말하기라는 모순을 저지르게 하여 레즈비언의 공통언어를 시어라 일컫게 한다. 명확함에도 사라져버리고 사라졌어도 명확한 그 시의 역사가 서한나의 삶으로 활자화되었다. 『사랑의 은어』라는 제목은 시의 역사와 그의 삶을 한데 요약한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운명에 놓인 이들이 서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하여 독특하게 사용하는 말, 은어를 발명해서라도 사랑을 표현하고 마는 시도들.
내가 한나를, 그의 빛과 윤곽을 처음 알아본, 그래서 본의 아니게 아우팅을 해버린 날은 평소에도 놀림을 받는데 책에도 놀림 가득한 어조로 등장한다. 이 책에는 그의 모습이 그대로 담기어 있으니 독자들에게 그럴 만하지 않았는지 드디어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서한나의 은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몰라!”라는 내 말에 호응해줄지 모른다. 내가 서한나를 처음 만난 그날처럼, 더 많은 사람이 그를 발견하게 될 순간이 왔다는 게 마치 내 일인 양 뿌듯하다. 그보다 이 책이 은어로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사랑과 그것을 발명할 줄 아는 더 많은 사람을 발견해낼 일이 기대된다.
_이민경·작가
미리보기
더 가볼까, 더 들어가볼까, 아가리 벌린 괴물처럼 서울은 계속해서 장면을 보여주었다. 골목이라는 말은 여기에 붙이기에 너무 정겨웠다. 한국의 이상함을 서울에 가면 한자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 여기는 한국이다. 한국의 무서움, 한국의 추함, 한국의 옛날. 바로 지금 우리 곁의 광인……. 맛 간 이들과 눈을 마주치면 (멀쩡한 사람은 길에 서 있는 내 눈을 안 본다) 안 될 것 같았다. 구석을 뒤지고 다니면 점집이 나오고 파출부 전단이 나오는, 들쑤실수록 찐득하고 검은 물이 찔꺽찔꺽 나올 것 같은 그런 아가리……. 우중충하며 절대로 멈추지 않는 무언가들.
_「서울을 돌아다니며 한 생각」
엄마는 불쌍한 얼굴로 울다가도 웃긴 말을 잘했다. 웃어도 되는지 고민하고 있으면, 엄마 우스운 말도 잘하지? 엄마 캐릭터 있지? 그러면서 이 상황에서도 머리가 팍팍 돌아가는 능력을 자찬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슴에 퍼지면서 나는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웃어도 복은 안 오는 것 같지만, 바닥에 털썩 누워 울다가도 웃는 힘은 나를 지켰다. 비참함에 테두리가 녹아버릴 것 같을 때도 마지막 자존심 한 가닥 지켜주는 것은 유머였다. 내가 나를 웃길 수 있으면 된다. 웃음은 몸 안에서 터져 나온다. 웃고 나면 별것 아닌 기분이 든다. 유머는 우리의 자부다.
_「맛있는 것 앞에서 환장을 하고 먹지」
우리는 바보 같을 때 동시에 바보 같아지고 천재 같을 때 동시에 천재 같아진다. (…) 그러니 둘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반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 그때 그랬잖아 말하거나 아 하면 어 하고 대답해줄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고, 맥락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유머가 없어지는 것이다. 사랑은 편지에 나를 미워한 적은 있지만 싫어한 적은 없다고 썼다. 우리는 서로의 악취를 맡을 수 있는 사이다.
_「친구는 동료가 된다」
그 사람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 있대도 따라가보려는 것이다. 나를 보지 않아도 좋을 그 눈이 언제 어떻게 빛나는지 그것을 알고 싶다. 처마 밑에 매어둔 감이 익으며 달아지는 철에 나는 사람의 눈에 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_「즐거운 일기」
“그러나 우리는 사랑에 빠질 것이다.
해본 적 없는 말을 쏟아낼 것이다.”
읽고 나면 기어코 쓴 사람을 찾아내게 만드는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찾아내게도 만든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려는 듯이, 살지 않은 삶을 살아보려는 듯이 탐닉에 가까운 독서를 하게 만든다.
『사랑의 은어』는 지난 몇 해간 쓰인 산문들을 엮은 서한나의 첫 단독 저서다. 대전에서 잡지 『보슈BOSHU』를 만들며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공저 『피리 부는 여자들』(BOSHU, 2020)과 『한겨레』 칼럼 ‘서울 말고’, 메일링 서비스 ‘잡문프로젝트’를 발행하는 동안 써온 글들이 그렇게 읽혔다. “몇 번이나 울면서 읽었”고(임승유), “잠을 못 잤다”(이슬아)는 추천의 말들이 증언하듯, 독자는 어떤 열렬함 속에서 그의 글을 만나왔다.
“글을 쓰면 삶이 두 번째가 되고 그저 체험할 것이 된다.”(230)
지겨운 쪽이든 그리운 쪽이든, 익숙하게 여겨온 것들은 낯선 모습을 하고 이 책에 다시 나타난다. 그 낯섦에 따라붙는 기이함과 정다움은 늘 보아왔지만 짐짓 못 본체 지나온 것들을 작정이라도 한 듯 불러다놓고 주시함으로써 저자가 만들어낸 감각이다. 오늘의 한국이라는 비애와 부조리, 잊힐 수 없는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동요를 차곡차곡 가라앉힌 다음 그가 다른 무엇으로 길어 올린 말들은, 일단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이들에게는 ‘은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번에 알아들을 경험으로 제시된다. 쓰는 사람들 입에 빈번하게 오르내리던 은어는 더 넓은 세계에서 인식되고 회자될 때 비로소 그것이 은어였음이 자명해진다. 또 바로 그 순간부터 더는 은어가 아니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 바로 그런 역설의 운명을 지우고,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굳이…… 싶은 모든 것을 하게 하고”(231)
글이 된 삶이 재현이자 환상이라면, 독자가 글을 읽는 동안 글이 독자를 응시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어떤 마음을 먹게 하는 일도. 『사랑의 은어』에는 많은 장소와 인물이 등장한다. “아, 여기는 한국이다”(25) 싶은 장소들의 무서움, 추함, 광기. 이해되지 못한 채 견디어진 세계를 기어코 살아내고야 마는 사람들. 그 잡스러운 세상에서 한없이 무거운 것이 어떻게 한없이 가벼워지는지, 한없이 가벼운 것은 또 어떻게 모든 것을 짓누를 수 있는지―다시 말해 사랑이라는 것이 어떻게 탄생하고 지속되는지를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상함 거대함 지난함에 부딪혀 간과되고 포기되고 망각될 뻔한 사랑을 건져 올린다. 사라지려는 것을 사라지지 않게 하고, 보이지 않게 됨에 저항한다. 일순간의 위력에 제압될 뻔한 오래된 진실, 허술한 장면 아래 잠재하는 과정의 견고한 힘을 드러냄으로써. 단지 결과이기만 한 게 아니기에 이 책의 사랑은 내 것이 아닐 이유가 없고, 우리가 아닐 이유도 없다. 구체성은 은어일지언정 사랑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언어를 통해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 똥집에서 우러난 경험!”(177)
그리고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독자를 부추겼던 바로 그 방식으로 익숙한 순간들을 다시 살아내며 자기를 발견하고 사랑을 혁명으로서 경험하는 과정을 적어 내려간다. “나를 제때 변호하지 못했다는 생각과 말없이 웃던 시간이 모여”(12) 쓰게 되었다는 글은, “신이 나면서도 당혹스러웠”(12)던 이 세계와의 불화를 돌파해나간다. 어려움과 불가능함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면서, 화해가 필요 없는 세계와 결별하고 당연한 세계를 재창조함으로써.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글은 독자의 삶에 작가의 이름을 등장시키는 동시에 이 세계에 그의 독자를 등장시킨다. 사랑하는 두 여자는 내밀한 둘만의 세계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세계를 부수고 나온다. 혼자서 느낀 위화감의 맥을 끊고 그 안에 흐르던 것을 밖으로 넘치게 한다. 만나고 스며들며 여기 쓰인 이야기를 보라고 말하는 대신, 이것을 경유해 홀로 내면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타나는 그것이 바로 우리 각자의 진실임을 굳게 믿어준다.
바로 여기서 어떤 독자는 자기를 발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서한나가 될 것이다. 생각이 읽힌다는 감각에서 생각을 내맡긴다는 감각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가 살고 싶어할 때 우리도 살고 싶어지고, 그가 사랑에 빠져들 때 우리도 사랑에 빠지며, 그가 허벅지에 번지는 황홀의 극치를 라듐이라고 말할 때 우리도 그것에 피폭된다. 작품에 독자적인 생을 부여한다.
“우리의 믿음은 아주 조금씩 생겼다”(162)
“시간들을 뚫고”(195)
이 특별한 이중 동일시는 조건을 탁월하게 조명하면서도 조건을 초월할 때 가능해진다. 무엇이 거부되는지, 어떻게 부정되는지는 거부하고 부정해야 할 것 자체보다 그것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세계를 더 드러낸다. 어떤 성별, 어떤 계급을 가진 이들은 의심도 불안도 없이 누려온 것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삶의 목적을 압도하는 선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날것의 현실을 잡아다 앉히고 말을 퍼다 부으며 저자가 발 디딘 곳은 그 같은 현실이 주어지기 전부터 존재했고 사라진 이후에도 존재할 자기 삶, 그만의 고유한 세계다.
그 세계는 동세대 감수성이나 로컬의 구수함 같은 범주에는 오롯이 담기지 않는다. 청년 여성의 삶과 중노년 여성의 삶, 태어나지 않은 여성과 죽은 여성의 삶이 다르면 얼마나 다른가? 1960년대와 1990년대, 2000년대와 지금은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나? 서한나를 다른 많은 작가와 구분 짓는 글의 인상은 이런 차이를 날카롭게 인식한 상태에서 공통을 꿰어 관통할 줄 알고, 그 안에서 “천당도 지옥도 다 여기에 있다고 재미있지 않냐고”(231)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읽는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는 언어로 그 발견을 활자화할 수 있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다.
조명된 현실을 초월하기 위해 저자가 내어놓는 것은 글이 된 삶이다. 그가 놓인 삶의 조건들, 그것이 표현된 방식, 그리고 이 책이 소설 아닌 수필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독자는 세상에 없는 책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고, 비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칼로 베고 살로 안아낸 현실이 미혹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 현실이 사랑 자체이기 때문임을 다시 확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