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예술이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다.”
막상스 페르민의 컬러 3부작 중
『눈』에 이은 두번째 이야기!
소설의 형식을 허물고 자신만의 장르를 새로이 만들어가는 작가 막상스 페르민, 그가 써내려간 또하나의 독보적인 작품『검은 바이올린』을 난다에서 출간한다. 17가지 언어로 번역되고 프랑스에서만 3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가는 기록을 세운 첫 소설 『눈』의 뒤를 잇는 작품이다. 페르민은 “넉넉한 여백을 둔 맑은 이야기 속에 젊음의 이상과 마음의 문제를 뜨겁게 끌어안고 있다”는(「Kirkus Reviews」) 찬사를 받으며 매년 새로운 작품으로 프랑스문학의 틀을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눈』에서 백색의 설국을 그려냈다면 『검은 바이올린』에서 페르민은 첫사랑의 목소리를 담은 흑단 바이올린의 이야기를 특유의 몽환적인 문체로 풀어낸다. 백색과 흑색에 한 번씩 담금질한 그의 스토리텔링은 이번 책에서 더욱 깊고 매혹적인 색채를 띤다. 전쟁 속에서 바이올린도 삶도 부서져버린 천재 연주자 요하네스와 연주해서는 안 되는 검은 악기를 간직한 바이올린 장인 에라스무스, 그리고 그들에게 들려오는 환상 속 아리아에 얽힌 이야기는 다양한 명암을 만들어내며 잔잔하면서도 가쁘게 펼쳐진다.
번역은 언어학자이자 연세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임선기 시인이 맡았다. 전작 『눈』에서 “구름에서 떨어져내리는 가벼운 백색송이들로 이루어진 시”를 완성했던 그는 『검은 바이올린』에서도 막상스 페르민만의 어감과 리듬을 살려내고자 만전을 기해 섬세한 번역을 완성하였다.
검은 바이올린은 단 한 줄도 스치지 말게.
그 악기에서 나오는 음악이 연주자의 인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네.
막상스 페르민은 “절대적인 것과 사랑에 빠진 인물을 몽환적인 서사를 통해 그려내”는 작가이다(「Lire」). 『검은 바이올린』에서 저자는 최상의 아름다움이라는 이상을 좇는 요하네스와 에라스무스의 삶을 매력적인 고즈넉함으로 담아내고 있다. 대상에 가닿을 수 없음에서 비롯된 애잔한 슬픔을 페르민은 과장 없는 간결한 문장으로 담담히 표현한다. 『눈』에서부터 이어져온, 그만의 투명한 문체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때는 18세기 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이 국경 언저리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어린 시절 신동이라고 불리던 바이올린 연주자 요하네스 카렐스키는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다는 꿈을 못다 이룬 채 전쟁에 나서게 된다. 음악과 결별하게 되었다는 상실감도 잠시, 베네치아에 주둔하는 동안 요하네스는 바이올린 장인 에라스무스의 작업장에 머무르게 된다. “지극히 숭고한 오페라를 작곡하여 하늘에 자신을 보여주고 하느님께 말을 걸고 싶어”한 요하네스와,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만”들어 “하늘에 말을 걸고 하느님과 소통하”기를 꿈꾸었던 에라스무스. 닮은꼴의 두 영혼 사이에는 침묵과 음악으로 이루어진 강렬한 유대가 생겨나고, 에라스무스는 요하네스에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결코 연주해서는 안 될 바이올린, 한번 연주하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검은 바이올린과 그 안에 담긴 여인의 목소리에 대한 비밀을.
“진정한 음악은 음표들 사이에 있다”는 모차르트의 말로 서두를 떼는『검은 바이올린』은 음표들 사이의 백색을 연주하는 이야기이며 말없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악은 한마디 말도 없이 “고통이라는 것, 궁핍과 배고픔, 추위와 외로움, 모욕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열리는 문이 주는 위안, 집안의 따뜻함, 주고받는 미소, 마을 사람들의 인정, 마음에 다시 온기를 주는 음악, 웃음들, 가끔 생겨나는 사랑”을 알게 한다. 같은 “음악의 나라”에 속한 요하네스와 에라스무스는 “말없음으로도 충분히 모든 것을 이해”함으로써 두 자아 간의 온전한 만남을 보여준다. 연주자와 바이올린 장인의 이러한 유대, 언어의 영역을 벗어난 교감을 페르민은 독자와 시도하고 있다.
단순한 줄거리가 남기는 여백은 그의 문장이 선사하는 풍부하고 선연한 감각이 메우고 있다. 그래서 책을 정밀하게 읽어내려갈수록 독자는 알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눈』에서 그 세계가 하이쿠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검은 바이올린』에서는 음악이다. 첫 작품에서 보여준 시적 세계에 청각적 풍부함을 더한다는 점에서 이는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페르민이 시로, 글로 섬세하게 연주하는 ‘검은 바이올린’은 이미 그의 문학세계에 흠뻑 빠진 독자들을 또다시 음악이라는 새로운 예술의 세계로 이끌 것이다.
페르민의 작품이 지닌 감각의 깊이는 어떤 문구로도 표현하기 어렵기에 책 앞면의 띠지는 비워두었다. 여백이 그 어떤 말보다도 많은 의미를 전달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대신 검은 바이올린의 이야기 아래에서 흐르는 음악을 깊은 강물의 색으로 담아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도시, ‘매일 조금씩 더 바다로 가라앉는 고요한 뗏목’과 같은 베네치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물빛이다.
사랑을 잃었다고 슬퍼하는 시대에
막상스 페르민이 보여주는 사랑의 얼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아름다운 바이올린으로 만들어 소유하려다 결국 돌이킬 수 없이 “그녀를 영원히 잃고, 나 자신도 파괴”하게 된 에라스무스. “아무리 작곡을 해도 현실에는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오페라를 계속해서 써내려가는 요하네스. 소설은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을 뜨겁게 끌어안는다. 그 온기 때문일까, 독자 역시 그들의 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소유의 강박에 시달렸던 경험을 하나둘 떠올려보게 된다. 요하네스와 에라스무스의 삶이 서로 닮아 있듯 읽는 이의 삶 역시 그들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혼의 어딘가가 소유에 대한 갈망으로 메말라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검은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음표들 사이의 침묵에 귀기울여보는 것이 어떨지.
사랑은, 예술은,
소유하려는 순간부터 비극으로 치닫고 만다.
사랑이란 예술이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다.
페르민의 검은 바이올린에서는
그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소리는, 사랑을 잃었다고 슬퍼하는
착각하는 시대에
사랑의 얼굴을 보여준다.
─「역자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