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 저자
- 남보라
- 저자2
- 박주희,전혼잎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일
- 2021-08-12
- 사양
- 280쪽 | 135*205 | 무선
- ISBN
- 978-89-6735-939-3 03300
- 분야
- 정치/사회
- 정가
- 15,000원
-
도서소개
346만 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떼인 돈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는 순간
착취는 필연적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사악한 착취 구조를 가장 디테일하고도 광대하게 담아낸 이 시대의 아픈 벽화 같은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중간착취의 지옥도』다. 이 책은 한국일보 마이너리티 팀이 100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인터뷰하여 그 실상을 담아낸 기록이다. 이 책의 출발은 다음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당신은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피·땀·눈물의 대가로 월급을 받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중 수십, 혹은 수백만 원을 늘 떼간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이 고질적인 문제를 포착한 기자들은 노동시장의 최하부에 위치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중간착취’에 대해 묻고, 그 지옥도地獄圖를 펼쳐보기로 했다.
화폐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의 시간들
우리가 하루에 꼭 한 명 이상은 접하게 되는 부고의 당사자들인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삶이 이 책의 주제다. 죽음이 가시화될 때 이들에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역할에 비해 존재감이 미미하고 받아가는 급여 또한 미약하다. 최저임금이 매해 오른다 해도 이들의 월급은 100만 원대에 묶여 있다. 경력 1년과 10년 차가 별반 다른 대우를 받지 않는 것도 이들 노동자군의 특징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높아지는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화폐가치로 환산되지 못하는 것은 ‘노동자-하청업체-원청’이라는 피라미드 구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오로지 ‘중간착취’와 관련된 노동-자본 세계에만 초점을 맞춘다.
우선 간접고용 노동자를 총 100명 인터뷰했다. 이들에게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월급명세서다. 명세서를 보고 나서는 하청(용역)업체의 ‘도급비 산출 내역서’를 확보해 직접노무비가 인건비로 제대로 지급됐는지 분석했다. 수많은 자료의 조각을 맞추자 거대한 착취의 면모가 드러났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자 착취는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특별한 기술 없이 오직 ‘사람 장사’만 하는 하청업체 사장 가운데 어떤 이는 20억 원 안팎의 연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가 고소득을 올리는 것을 두고 잘못이라 할 순 없다. 문제는 대표의 소득액 중 일부가 중간착취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다수의 하청업체는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하는 직접노무비를 전액 지불하지 않고, 47~61%만 지불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보통 72~73%가 인건비로 쓰여야 한다). 즉 노동자에게 줘야 할 노무비 중 39~53%를 중간에서 착복한 것으로, 이는 대부분 하청업체 대표들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
346만 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얼마를 벌까
저자들이 인터뷰한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 중 종일 근무하며 월급제로 급여를 받는 이는 86명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절반인 43명의 월급이 100만 원대였다. 한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파견직 사무보조원 김미연씨는 162만 원을 받았고, 국립해양박물관의 청소 노동자 최용일씨는 163만 원, 같은 박물관 주차관리원 박선호씨는 180만 원을 받았다. 아파트 경비원 구자혁씨는 169만 원, 한국장학재단의 콜센터 상담사들은 170만 원을 받았으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IT 개발자 이민준씨는 172만 원,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에 파견된 박민현씨는 180만 원을 받았다.
이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이 주어지는 것만도 버티기 힘겨운 요소지만, 연차가 쌓여도 경력이 제자리걸음 취급받는 것은 이들의 미래 희망까지 앗아간다. ‘꾸준히 일하다보면 월급도 오르겠지’는 거의 모든 노동자가 품는 미래에 대한 바람이다. 하지만 2012년 한 철강기업의 하청업체에 입사한 유재영씨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월 240여 만 원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매달 80만 원씩 하청업체 대표에게 토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30대는 일을 시작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이 그렇게 끝나가고 있다. 10년 차 은행경비원 강지선씨의 월급도 191만 원으로 10년 동안 겨우 59만 원 올랐다. 14년 차 철도 역무원 이진홍씨의 월급은 164만 원으로 14년간 64만 원 올랐다.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상담사들은 경력 10년 차든 1년 차든 모두 170만 원을 받았다. 신입 직원과 30년 일한 숙련 직원의 월급이 똑같은 건 간접고용 세계에선 흔한 풍경 중 하나다.
최저임금은 오르는데 월급은 오르지 않는 이유
2017년 7월은 한국장학재단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염희정씨와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가장 설레어했던 때다. 징조를 좋게 해석할 근거는 많았다. 정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확정했는데, 이는 무려 16.4%나 오른 역대 최고 인상액이었다. 새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도 차차 실현되는 듯했다. 그해 171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던 희정씨는 2018년에 자신의 월급이 당연히 오를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명세서가 좀 이상했다. 2017년에는 식대(10만 원)와 시간외 수당(1만1000원)이 각각 지급됐고, 액수는 총 11만1000원이었다. 그런데 2018년 갑자기 두 항목이 합쳐지면서 금액은 10만4000원으로 줄었다. ‘7000원쯤이야’라며 넘길 일이 아니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기타 급여 항목이 줄어드는 일은 매년 반복됐다. 2018~2021년 희정씨의 월급 액수는 변화가 전혀 없다. 월급이 오를 때마다 직책수당이나 인센티브 등이 사라지면서 월급 총액은 묶였다.
원청인 장학재단의 해명은 이랬다. “2020년 1월부터 상담사들의 임금을 평균 2.9% 인상 완료했다.” 상담사들에게 이것은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진상을 파악하려고 상담사들이 직접 나서자 도급업체는 자신들이 “도급비가 동결됐다”고 거짓말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못박았다. “그렇더라도 현재 최저임금보다 많이 주고 있어 더 이상 올릴 수는 없다.”
떼인 돈이 흘러가는 곳
이 책은 노동자들만 취재하지 않았다. 하청업체와 원청의 자료를 입수하고, 이들 기업의 관계자들 이야기도 들었다. 이는 2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는데, 갑자기 100만~200만 원대에서 수억 원으로 단위가 뛰어 노동자 개개인에게서 떼인 돈이 얼마나 큰 규모를 이루며 종착지로 향하는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 액수는 예상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어서 왜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몇만 원, 몇십만 원을 때로는 불법적으로, 때로는 합법적이지만 일말의 선의도 없이 거둬들이는지 알 수 있다.
사례 1: 현대제철 하청업체 H사
현대제철의 한 하청업체 대표는 연간 20억 원의 소득을 얻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사협의회 녹취를 통해 계산한 수치다. 이 업체의 2020년 9월 도급비는 9억5000만 원이었다. 이 금액을 토대로 업체 대표의 소득이 추산된다. 우선 도급비에서 법정 비용과 관리비 15%를 뺀다. 다시 여기서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빼면 나머지는 다 회사(대표)의 순이익이다. 문제는 대표의 소득액 중 일부가 중간착취의 결과물로 보인다는 점이다.
사례 2: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네트웍스는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로, 코레일로부터 주차 관리, 승차권 매표, 역사 운영 등을 위탁받아 수행한다. 비유하자면 코레일이 원청이고, 코레일네트웍스가 하청업체인 셈이다. 코레일네트웍스 상임기관장의 최근 5년 연봉은 평균 1억 원을 웃돈다. 이에 비해 직원들의 월급은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중 최하위다. 안전관리사(교대조 역장) 김호성씨의 2020년 월 기본급은 약 170만 원이었다(야간근무 등 시간외 수당을 합치면 190만 원~200만 원대다). 이는 모회사 정규직의 44% 수준이다. 노동자들이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자 2020년 위탁비가 크게 늘어 직원들의 월급을 올려줄 여건이 마련됐다. 하지만 코레일네트웍스는 아직까지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해주지 않고 있다.
사례 3: 방사선관리 용역업체 S사
S사 대표는 20억 원이 넘는 연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업체에서 방사선안전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박영수씨는 “월 300만 원(세후)을 받는데, 중간착취 금액은 무려 700만 원 정도”라고 밝혔다. 업체가 관리비 명목으로 월급의 배가 되는 액수를 가져간다는 주장이다. 이 회사는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1인당 용역 단가로 1년에 1억2000만 원을 받는다. 이때 용역 단가는 첫째 직접인건비(5000만 원), 둘째 사무실 운영 등 제경비(5500만 원), 셋째 방사선 안전 관련 연구나 기술 개발에 사용하는 기술료(2100만 원)로 구성된다. 그러나 영수씨는 용역업체가 제경비와 기술료를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장비를 한국수력원자력이 제공해주는 데다 1인당 제경비가 5500만 원이 든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수씨는 용역업체가 지원해주는 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참신하고 창의적이며 뻔뻔한 착취의 묘안들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똥떼기’라는 단어가 널리 쓰인다. 최기영씨도 똥떼기로 매일 7만 원씩 팀장에게 갖다 바쳤는데, 그의 일당은 13만 원이지만 실제 근로계약서에는 20만 원으로 돼 있다. 그를 데리고 다니며 전기 작업을 하는 팀장이 팀원들로부터 매일 7만 원씩 떼어가는 것으로, 고질적인 중간착취의 수법이다. 건설업계에서는 팀원 대여섯 명 기준으로 팀장이 한 달에 1000만~2000만 원 똥 떼기로 가져간다고 본다.
위장 폐업도 단골 수법이다. 정규직 전환을 해주지 않으려고, 혹은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방해하려고 허위로 하청업체 대표들이 사업을 접는 것이다. 보통 위장 폐업을 한 기업은 상호만 바꿔 새 회사를 차린 뒤 기업활동을 이어간다. 문제는 위장 폐업을 한 기업의 소속 노동자들이 퇴직금과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류상으로는 이들이 속해 있던 회사가 사라지기 때문인데, 이처럼 위장 폐업은 중간착취를 동반한다.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직원으로 근무 중인 심현우씨는 18년간 소속 업체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첫 업체가 폐업했을 때 임금 체불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못 받았고, 두 번째 회사에서는 퇴직금을 못 받았다. 그는 “소속 업체가 바뀔 때마다 업체 대표도 달라졌지만, 실소유주는 언제나 첫 업체 사장이었다”고 한다. 그의 첫 업체 사장은 두 번째 회사에서는 소장으로, 세 번째 회사에서는 이사로 일했고, 네 번째 회사에서는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의 후반부는 하청업체 역시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원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노동자들의 월급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착취가 이뤄지고 있다는, 좀더 근본적인 구조 분석으로 파고들어간다. 대기업에서 주요 임원직을 맡았던 이들이 은퇴 후 대기업 원청으로부터 일을 받는 하청업체 사장을 맡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원청과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서로의 주머니를 채우는데, 그럴수록 더 빈약해지는 것은 노동자들의 호주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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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남보라
2009년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노동 복지 분야를 주로 담당했다. 크고 작은 목소리를 정직하게 기록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박주희
2012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산업부, 문화부, 지역사회부 등을 거쳐 현재 어젠다기획부 마이너리티팀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백상기자대상,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 등을 수상했다.
전혼잎
한국일보 기자로 2014년 입사, 정치부와 정책사회부, 디지털콘텐츠부를 거쳐 어젠다기획부 마이너리티팀에 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 장애인먼저운동실천본부 ‘좋은 기사상’ 등을 수상했다. 공저로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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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1부 합법적인 착취, 용역
1. 지선씨를 인터뷰한 날
2. 지선씨도 용균씨도
3. 불법이 아니라고요?
4. 최저임금 인상의 기쁨과 슬픔
5. 휴식 시간에 하는 ‘봉사’
6. 월급을 여쭤봐도 될까요
7. ‘관리비’라는 거짓말
8. 부고와 해고
9. 도처에 거머리가
10. 어느 은행 경비원의 절규
노동의 대가를 도둑맞은 100명의 이야기
2부 떼인 돈이 흘러가는 곳
1. 용역업체 정규직과 계약직
2. 월급 줬다 빼앗기
3. 건강, 안전보다 중요한 것
4. ‘이중 착취’ 기술
5. 있는 줄도 몰랐던 연차수당
5. ‘유령’이 떠도는 곳
7. 노동자를 위한 판결의 딜레마
8. 사장들의 억대 연봉, 어디서 왔나
9. 하청업체 대표, 그들은 누구인가
10. 원청의 과욕
11. 원청이 간접고용을 원하는 이유
12. 을이 을을 착취하는 야만사회
3부 진화하는 착취
1. 2020년의 서연씨는 1998년의 ‘미스 김’이 부럽다
2. 이름값 못 하는 파견법의 탄생
3. “당신 아니라도 일할 사람 많다”
4. 우리 회사가 갑자기 사라졌다
5. ‘진짜’ 사장님은 누구일까
6. 간접고용 노동자는 어디에나 있다
7. 착취는 더 낮은 곳으로 흐른다
8. 이상한 플랫폼 속 선희씨와 기순씨
9. 요금의 절반을 가져간다고요?
4부 법을 바꾸는 여정
1. 메일이 가리키는 곳
2. 실패의 역사
3. 잔인한 말, 검토
4. 고용노동부와 경총
5.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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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 추천사
한국 사회의 노동 현장에서 약육강식은 법제화되어 있고 일상의 관행으로 정착되었다. 먹이사슬의 모든 단계는 적대적이다. 약자는 먹고살기 위해 자신의 살점을 강자의 먹이로 내어주어야 하는데, 사슬의 하위 단계에서 착취는 더욱 극악해진다. 그리고 이 중첩된 야만의 구도 위에서 계약의 자유, 경쟁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보통선거, 대의민주주의 같은 자유의 푸른 깃발이 펄럭이고 약탈당하는 개인은 개별적 존재로 흩어져서 무력화된다. 이 책은 자고 새면 날마다 밥벌이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 지옥도 속을 헤집고 들쑤시면서 복장 터지는 세상을 실증한다. 아아, 젊은 기자들아, 내 옆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이 사태를 어찌하면 좋겠는가._김훈 소설가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의 몫으로 원청이 책정했던 522만 원과 그의 통장에 마지막으로 입금된 211만 원 사이에는 어떤 착취의 구조가 숨어 있을까? 저자들은 100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를 인터뷰하며 찾아낸 답을 ‘중간착취의 지옥도’로 묘사한다. 늘 해고와 산재의 불안에 시달리고, 권리 대신 체념에 익숙해진 노동자들을 착취로부터 지킬 책무는 바로 국회와 정부에 있다. 어렵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국회와 정부는 국민을 위해 어렵고 힘든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_장혜영 정의당 의원
중간착취의 본질은 노동자를 직접고용할 때 발생하는 비용과 책임은 회피하면서도 일은 마음대로 시키고 싶은 원청의 욕망에 있다. 형식상 위탁계약을 맺지만 일을 시킬 땐 평점과 알고리즘으로 통제하는 플랫폼의 욕망과 닮았다.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20년간 방치된 비정규직 간접고용 문제가 어떻게 플랫폼 노동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지옥도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중간 업체가 자신의 몫에서 얼마를 떼가는지 궁금해한다. 플랫폼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절망은 노동자가 진실을 알더라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다. 독자가 이 책을 덮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 같다. 그러나 ‘독자’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가 되고, 다른 노동자의 말을 경청하고 연대할 수 있는 ‘시민’이 된다면 ‘변화’라는 두 글자를 새길 수 있을 거라 믿는다._박정훈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책속으로
아파트 경비원들은 경비 초소에 선풍기도 한 대 없어 주민들이 버린 선풍기를 고쳐 썼다. 목장갑은 한 달에 한 켤레씩 지급되는데 낙엽을 많이 쓸어야 하는 가을에는 손가락에 금방 구멍이 나서 두 켤레를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땡볕에서 맥주 상자를 나르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용역업체에 그늘막 설치를 요청했다가 역시 거절당했다. 하루 수백 명의 손님을 접촉하는 은행 경비원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1년이 넘도록 용역업체로부터 마스크를 단 한 장도 지급받지 못했다.
업체가 말하는 관리비에는 노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을 사는 돈이 포함돼 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받는 게 없었다. 이들이 속한 용역업체 역시 이들의 일터와 먼 곳에 있었고, 일은 노동자들끼리만 하고 있었다.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용역업체와 노동자의 거리는 멀었다. 용역업체들이 노동자를 대부분 방치하고, 모른 체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용역업체를 두고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번다”고 분노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_57쪽
직접적으로 임금의 일부를 빼돌린 사례도 있었다. 유재영씨는 2012년 한 철강기업의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 이 업체 사장은 중간착취에 있어서만큼은 좌고우면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재영씨는 입사 초기 때의 상황을 최대한 상세히 설명해줬다. “첫 월급날이었어요. 나이 많은 선배들이 통장에 들어온 월급 중 일부를 현금으로 회사에 돌려주더라고요. 그 모습이 의아해서 선배들한테 무슨 상황인지 물어봤죠.” 이 업체는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했다가 이 중 일부를 다시 현금으로 갈취하는 수법으로 중간착취를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세후 350여 만 원의 월급 중 80만 원을 토해내는 식이었어요. 선배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적게는 30만 원, 많게는 90만 원을 회사에 돌려주고 있더라고요.”_108쪽
폐기물수거 업종에서 안전화, 작업복 등은 노동자들의 안전과 직결된다. “폐기물을 수거하는 데 안전화가 왜 필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하루에 수십, 수백 번씩 수거 차량을 오르락내리락하잖아요. 그러다보면 신발 밑창이 일반 신발보다 빨리 닳아요. 이 상태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자주 미끄러져요. 특히 비 오는 날은 더 심하죠. 차량에서 추락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안전화는 밑창이 마모되면 바로 바꿔줘야 돼요. 방치했다가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거든요. 원청이 1년에 두 번 정도 안전화를 새로 사라고 돈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런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인데 우리 회사는 2, 3년에 한 켤레씩 사주고 있어요.”_115쪽
파견·용역업체는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거머리처럼 붙어 임금을 떼어먹고, 혹시 이들이 항의라도 하면 원청과의 교감 속에서 해고하면 그만인 시스템이었다. 사실 법적으로 해고도 아니다. 파견이나 도급, 위탁 등의 용역계약 해지는 법적으로 해고에 속하지 않는다. 해고를 제한하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청소나 경비 등 하청 노동자들은 아주 쉽게 잘려나간다. 우리 사회가 중간착취의 지옥이 되기까지 작동해온 벽돌처럼 단단한 시스템이다._216쪽
346만 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떼인 돈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는 순간
착취는 필연적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사악한 착취 구조를 가장 디테일하고도 광대하게 담아낸 이 시대의 아픈 벽화 같은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중간착취의 지옥도』다. 이 책은 한국일보 마이너리티 팀이 100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인터뷰하여 그 실상을 담아낸 기록이다. 이 책의 출발은 다음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당신은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피·땀·눈물의 대가로 월급을 받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중 수십, 혹은 수백만 원을 늘 떼간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이 고질적인 문제를 포착한 기자들은 노동시장의 최하부에 위치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중간착취’에 대해 묻고, 그 지옥도地獄圖를 펼쳐보기로 했다.
화폐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의 시간들
우리가 하루에 꼭 한 명 이상은 접하게 되는 부고의 당사자들인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삶이 이 책의 주제다. 죽음이 가시화될 때 이들에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역할에 비해 존재감이 미미하고 받아가는 급여 또한 미약하다. 최저임금이 매해 오른다 해도 이들의 월급은 100만 원대에 묶여 있다. 경력 1년과 10년 차가 별반 다른 대우를 받지 않는 것도 이들 노동자군의 특징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높아지는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화폐가치로 환산되지 못하는 것은 ‘노동자-하청업체-원청’이라는 피라미드 구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오로지 ‘중간착취’와 관련된 노동-자본 세계에만 초점을 맞춘다.
우선 간접고용 노동자를 총 100명 인터뷰했다. 이들에게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월급명세서다. 명세서를 보고 나서는 하청(용역)업체의 ‘도급비 산출 내역서’를 확보해 직접노무비가 인건비로 제대로 지급됐는지 분석했다. 수많은 자료의 조각을 맞추자 거대한 착취의 면모가 드러났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자 착취는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특별한 기술 없이 오직 ‘사람 장사’만 하는 하청업체 사장 가운데 어떤 이는 20억 원 안팎의 연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가 고소득을 올리는 것을 두고 잘못이라 할 순 없다. 문제는 대표의 소득액 중 일부가 중간착취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다수의 하청업체는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하는 직접노무비를 전액 지불하지 않고, 47~61%만 지불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보통 72~73%가 인건비로 쓰여야 한다). 즉 노동자에게 줘야 할 노무비 중 39~53%를 중간에서 착복한 것으로, 이는 대부분 하청업체 대표들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
346만 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얼마를 벌까
저자들이 인터뷰한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 중 종일 근무하며 월급제로 급여를 받는 이는 86명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절반인 43명의 월급이 100만 원대였다. 한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파견직 사무보조원 김미연씨는 162만 원을 받았고, 국립해양박물관의 청소 노동자 최용일씨는 163만 원, 같은 박물관 주차관리원 박선호씨는 180만 원을 받았다. 아파트 경비원 구자혁씨는 169만 원, 한국장학재단의 콜센터 상담사들은 170만 원을 받았으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IT 개발자 이민준씨는 172만 원,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에 파견된 박민현씨는 180만 원을 받았다.
이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이 주어지는 것만도 버티기 힘겨운 요소지만, 연차가 쌓여도 경력이 제자리걸음 취급받는 것은 이들의 미래 희망까지 앗아간다. ‘꾸준히 일하다보면 월급도 오르겠지’는 거의 모든 노동자가 품는 미래에 대한 바람이다. 하지만 2012년 한 철강기업의 하청업체에 입사한 유재영씨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월 240여 만 원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매달 80만 원씩 하청업체 대표에게 토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30대는 일을 시작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이 그렇게 끝나가고 있다. 10년 차 은행경비원 강지선씨의 월급도 191만 원으로 10년 동안 겨우 59만 원 올랐다. 14년 차 철도 역무원 이진홍씨의 월급은 164만 원으로 14년간 64만 원 올랐다.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상담사들은 경력 10년 차든 1년 차든 모두 170만 원을 받았다. 신입 직원과 30년 일한 숙련 직원의 월급이 똑같은 건 간접고용 세계에선 흔한 풍경 중 하나다.
최저임금은 오르는데 월급은 오르지 않는 이유
2017년 7월은 한국장학재단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염희정씨와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가장 설레어했던 때다. 징조를 좋게 해석할 근거는 많았다. 정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확정했는데, 이는 무려 16.4%나 오른 역대 최고 인상액이었다. 새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도 차차 실현되는 듯했다. 그해 171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던 희정씨는 2018년에 자신의 월급이 당연히 오를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명세서가 좀 이상했다. 2017년에는 식대(10만 원)와 시간외 수당(1만1000원)이 각각 지급됐고, 액수는 총 11만1000원이었다. 그런데 2018년 갑자기 두 항목이 합쳐지면서 금액은 10만4000원으로 줄었다. ‘7000원쯤이야’라며 넘길 일이 아니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기타 급여 항목이 줄어드는 일은 매년 반복됐다. 2018~2021년 희정씨의 월급 액수는 변화가 전혀 없다. 월급이 오를 때마다 직책수당이나 인센티브 등이 사라지면서 월급 총액은 묶였다.
원청인 장학재단의 해명은 이랬다. “2020년 1월부터 상담사들의 임금을 평균 2.9% 인상 완료했다.” 상담사들에게 이것은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진상을 파악하려고 상담사들이 직접 나서자 도급업체는 자신들이 “도급비가 동결됐다”고 거짓말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못박았다. “그렇더라도 현재 최저임금보다 많이 주고 있어 더 이상 올릴 수는 없다.”
떼인 돈이 흘러가는 곳
이 책은 노동자들만 취재하지 않았다. 하청업체와 원청의 자료를 입수하고, 이들 기업의 관계자들 이야기도 들었다. 이는 2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는데, 갑자기 100만~200만 원대에서 수억 원으로 단위가 뛰어 노동자 개개인에게서 떼인 돈이 얼마나 큰 규모를 이루며 종착지로 향하는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 액수는 예상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어서 왜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몇만 원, 몇십만 원을 때로는 불법적으로, 때로는 합법적이지만 일말의 선의도 없이 거둬들이는지 알 수 있다.
사례 1: 현대제철 하청업체 H사
현대제철의 한 하청업체 대표는 연간 20억 원의 소득을 얻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사협의회 녹취를 통해 계산한 수치다. 이 업체의 2020년 9월 도급비는 9억5000만 원이었다. 이 금액을 토대로 업체 대표의 소득이 추산된다. 우선 도급비에서 법정 비용과 관리비 15%를 뺀다. 다시 여기서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빼면 나머지는 다 회사(대표)의 순이익이다. 문제는 대표의 소득액 중 일부가 중간착취의 결과물로 보인다는 점이다.
사례 2: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네트웍스는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로, 코레일로부터 주차 관리, 승차권 매표, 역사 운영 등을 위탁받아 수행한다. 비유하자면 코레일이 원청이고, 코레일네트웍스가 하청업체인 셈이다. 코레일네트웍스 상임기관장의 최근 5년 연봉은 평균 1억 원을 웃돈다. 이에 비해 직원들의 월급은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중 최하위다. 안전관리사(교대조 역장) 김호성씨의 2020년 월 기본급은 약 170만 원이었다(야간근무 등 시간외 수당을 합치면 190만 원~200만 원대다). 이는 모회사 정규직의 44% 수준이다. 노동자들이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자 2020년 위탁비가 크게 늘어 직원들의 월급을 올려줄 여건이 마련됐다. 하지만 코레일네트웍스는 아직까지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해주지 않고 있다.
사례 3: 방사선관리 용역업체 S사
S사 대표는 20억 원이 넘는 연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업체에서 방사선안전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박영수씨는 “월 300만 원(세후)을 받는데, 중간착취 금액은 무려 700만 원 정도”라고 밝혔다. 업체가 관리비 명목으로 월급의 배가 되는 액수를 가져간다는 주장이다. 이 회사는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1인당 용역 단가로 1년에 1억2000만 원을 받는다. 이때 용역 단가는 첫째 직접인건비(5000만 원), 둘째 사무실 운영 등 제경비(5500만 원), 셋째 방사선 안전 관련 연구나 기술 개발에 사용하는 기술료(2100만 원)로 구성된다. 그러나 영수씨는 용역업체가 제경비와 기술료를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장비를 한국수력원자력이 제공해주는 데다 1인당 제경비가 5500만 원이 든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수씨는 용역업체가 지원해주는 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참신하고 창의적이며 뻔뻔한 착취의 묘안들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똥떼기’라는 단어가 널리 쓰인다. 최기영씨도 똥떼기로 매일 7만 원씩 팀장에게 갖다 바쳤는데, 그의 일당은 13만 원이지만 실제 근로계약서에는 20만 원으로 돼 있다. 그를 데리고 다니며 전기 작업을 하는 팀장이 팀원들로부터 매일 7만 원씩 떼어가는 것으로, 고질적인 중간착취의 수법이다. 건설업계에서는 팀원 대여섯 명 기준으로 팀장이 한 달에 1000만~2000만 원 똥 떼기로 가져간다고 본다.
위장 폐업도 단골 수법이다. 정규직 전환을 해주지 않으려고, 혹은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방해하려고 허위로 하청업체 대표들이 사업을 접는 것이다. 보통 위장 폐업을 한 기업은 상호만 바꿔 새 회사를 차린 뒤 기업활동을 이어간다. 문제는 위장 폐업을 한 기업의 소속 노동자들이 퇴직금과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류상으로는 이들이 속해 있던 회사가 사라지기 때문인데, 이처럼 위장 폐업은 중간착취를 동반한다.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직원으로 근무 중인 심현우씨는 18년간 소속 업체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첫 업체가 폐업했을 때 임금 체불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못 받았고, 두 번째 회사에서는 퇴직금을 못 받았다. 그는 “소속 업체가 바뀔 때마다 업체 대표도 달라졌지만, 실소유주는 언제나 첫 업체 사장이었다”고 한다. 그의 첫 업체 사장은 두 번째 회사에서는 소장으로, 세 번째 회사에서는 이사로 일했고, 네 번째 회사에서는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의 후반부는 하청업체 역시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원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노동자들의 월급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착취가 이뤄지고 있다는, 좀더 근본적인 구조 분석으로 파고들어간다. 대기업에서 주요 임원직을 맡았던 이들이 은퇴 후 대기업 원청으로부터 일을 받는 하청업체 사장을 맡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원청과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서로의 주머니를 채우는데, 그럴수록 더 빈약해지는 것은 노동자들의 호주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