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란트로피는 어디에나 있다”
기부라는 선한 행위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기부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동참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필란트로피’, 즉 자선활동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것으로, 그리스어의 친구를 뜻하는 ‘필로(philo)’에서 유래했으며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자선단체에 소수의 개인이 제공하는 대규모 기증품부터 대부분의 사람이 참여하는 소액의 기부금과 시간 기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필란트로피’이다.
이번에 출간하는 『민주사회의 필란트로피―필란트로피의 역사, 제도, 가치에 대하여』에서는 미국 사회에서의 필란트로피의 기원과 제도, 도덕적 정당성 등을 검토하면서 민주사회에서 필란트로피가 지닌 역할과 정당성을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통합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또한 변화하는 사회에서 진정한 필란트로피가 되기 위해서 어떤 제도적 역할을 필요한지, 좋은 사회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때로는 역사 속에서 때로는 현재의 제도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이 모두 같은 의견을 공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는데, 각 장에서는 자선 기부, 민간재단,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부자 조언기금 등을 세세히 분석함으로써 이러한 정의가 얼마나 다양하게 운용되고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이러한 각 장이 독립된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야나 특정 저자가 서술한 장을 선택해서 읽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필란트로피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어야 한다”
부자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으로 필란트로피를 실행하고 있다. 이 말은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귀족)’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라는 오블리주가 합해진 것으로, 사회 고위층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예로 경주 최부잣집을 들 수 있다. 주변 100리(40킬로미터)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곳간의 문을 열어놓거나 가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는 최부잣집의 육훈은 참으로 존경할 만하다. 이렇듯 부자들은 어려운 이웃이나 사회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부해왔다. 최근 빌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기부 약정)’를 만들어 전 세계 부호들에게 자기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필란트로피를 남을 위하거나 사회에 혜택을 주기 위한 자발적 기부 행위로 단순히 정의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사회학자, 정치학자, 역사학자, 정치사상가, 법학자 등이 한자리에 모여 민주사회 속 필란트로피의 기원과 제도 유형, 도덕적 근거 및 한계에 관해 토론하면서 필란트로피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책은 그 결과물로서 다양한 필란트로피 활동을 ‘기원’ ‘제도적 형태’ ‘도덕적 근거와 한계’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1부 ‘기원’에서 조너선 레비, 올리비에 준즈, 롭 라이히는 끝없이 변화하는 필란트로피 제도의 속성, 즉 우리가 민간의 공익활동을 법적으로 어떻게 제한해왔는지, 이러한 경계가 더욱 포괄적인 정치적·사회적·지적 가치를 대변한다는 사실에 대해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어 2부 ‘제도적 형태’에서 에런 호바스 및 월터 파월, 폴 브레스트, 레이 메이도프, 루시 베른홀츠는 다양한 유형의 특징을 나타내는 필란트로피 활동의 한계와 가치를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전문화된 비영리기업의 성장, 기부자 조언기금의 폭발적인 증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도덕적 한계, 디지털시대의 필란트로피를 위한 새로운 도구와 규칙의 최근 발전 양상 등에 대해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3부 ‘도덕적 근거와 한계’에서 에릭 비어봄, 라이언 페브닉, 키아라 코델리는 필란트로피의 사회적 역할과 도덕적 한계에서의 각기 다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이들은 민주국가에서 필란트로피가 수행하지 말아야 할 기능이 있는지, 개인 기부자나 재단 모두 필란트로피스트들이 기부할 때 지켜야 할 윤리 규범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고찰하기도 한다.
필란트로피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렇기에 저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필란트로피의 제자리와 제 역할을 찾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돈을 나누어주는 행위는 인류만큼이나 오래되었듯이 필란트로피는 우리 사회에 깊이 내재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필란트로피가 가장 활발한 미국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필란트로피는 세계 여러 나라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필란트로피는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