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시리즈
한국 문학의 눈부신 결산
소설집 9종, 앤솔러지 시집 1종 출간
이 책은 경기문화재단 주관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으로, 경기도에 거주하는 문인들에게 창작지원금을 지원, 그들의 작품을 시리즈로 출간하는 기획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올해 출간되는 시리즈는 9명의 소설가들이 참여한 소설집 9권, 13명의 시인들의 신작시를 묶은 앤솔러지 시집 1권으로 구성돼 있다. 온몸으로 건져 올린 발칙하고 싱싱한 언어들, 시대를 감싸 안는 빛나는 감수성이 오늘의 소설, 시의 면면을 보여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올 한 해 우리 문학의 눈부신 결산 중 하나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아기의 냄새도 이렇지 않을까?”
SF의 악보에서 연주되는 동화적 상상력
표제작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는 기술이 포화한 사회의 미래 모습을 제시한다. 2050년경의 과학기술은 “혐오 없는 도시 만들기의 일환으로 장애아 출산율 0%에 도달”한다는 목표를 가진 인구관리국이 준비한 각종 출산 프로그램으로 실행된다. “행복한 설렘”이라는 명령어가 삽입된 주인공 임산부 로봇 헐스(HERS)와 그녀의 동료들이 캡슐형 인공자궁 대신 인간의 아이를 출산하는 프로그램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일원칙(‘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의 준수와 실행을 통해 무난히 성공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인구관리국은 태아의 두뇌·감성 지수를 높이기 위해 예전에 엄마들이 했던 태교의 형태를 발달시킨 임산부 로봇을 출시하게 되었다. 요가에서부터 뜨개질까지 태아의 공감력과 두뇌력 발달을 위해 임산부 로봇들은 존재했고, 모든 일과에는 행복한 설렘이라는 명령어가 삽입되었다. _10~11쪽
헐스는 냄새 분자를 흡입하고서는 인공자궁이 있는 배 부위에 손을 대었다. 달콤하고 청량한 향내였다.
“아기의 냄새도 이렇지 않을까?”
헐스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_16쪽
비록 유산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임산부 로봇의 프로그램을 초기화해서 유산에 대한 기억을 제거한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다. 그러나 버그는 거기서 생겨난다. “유산을 실행한 임산부 로봇에 유난히 버그가 많이 생기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지만, 인구관리국의 조치로 임산부 로봇은 버그가 유산과 유산의 기억제거에서 비롯됐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이러한 버그로 인해 ‘장애아 출산율 0%’라는 프로젝트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이거나 진실을 은폐하는 거짓으로 드러난다. ‘행복이’를 임신한 헐스는 기형아 검사를 위해 고물상이 관리하는 태아보호센터로 이동해 그곳에서 자신과 닮은꼴로 전시된 로봇을 보고 동료 임산부 로봇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작년 동료 임산부의 방전 소리에 위험 감지 모드를 작동했던 일이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무엇을 지키려고 기억을 놓은 건가. 인간들은 무엇을 지키려고 기억을 제거하는가. 인간의 일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제기해서는 안 되는 의문이었다. 헐스는 출입구 불빛을 찾아 몸통을 돌렸다. _21쪽
행복이는 안면장애를 지닌 것으로 판정되고, 헐스는 행복이를 제거하려는 고물상에게 묻는다.
“장애라는 것은 밀리유공원의 새소리,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처럼 그렇게 공존할 수 없는 겁니까?” _27쪽
아이를 지키려는 헐스와 고물상의 소동으로 임산부 로봇들은 그동안 유산된 아기와 그에 대한 기억이 강제로 삭제되었음을 알게 된다.
인구관리국 임산부 로봇들은 일제히 움직임이 느려지다가 제자리에 고정한 채 작동을 멈추었다. 로봇들은 모두 헐스의 기억 유지를 돕기 위해 마인드그램에 업로드중이었다. 자율충전중이던 로봇들도 동참했다.
-가끔씩 아기의 잔상이 남아 있었습니다. 인공자궁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는데 말이죠. 기억이 없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렸습니다. 없었던 게 아니라 지워진 거였습니다.
-그동안 아기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니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_32쪽
인구관리국에 시스템 오류가 뜨고, 임산부 로봇들의 사보타주가 이어진다. 헐스는 과연 배 속의 ‘행복이’를 지켜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