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이라는 거울에 인류의 진화를 비추어보다
이 책에서 인지언어학자이자 언어공학자인 저자는 진화생물학과 동물행동학, 심리학과 철학을 아우르며 인류가 어떻게 언어 능력을 발달시켜왔는지를 탐색한다. 『말의 자연사: 언어의 기원』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말이나 언어, 그리고 그것의 역사에 갇혀 있지 않다. 이 책에서 언어는 연구 대상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발달과 인간의 특성, 인류가 이루고 사는 사회 등 다양한 분야를 들여다보는 돋보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저자는 다양한 각도에서 방대한 영역의 학제간 연구와 혁신적인 이론으로 언어와 인류의 공진화사를 풀어내고, 독자는 그 창의적이고도 체계적인 전개를 따라가며 언어학적 상상력을 키운다.
인간 언어에서 진정으로 가장 혁신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는 예기치 않은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모든 사건을 전달토록 유도하는 서사 활동에 있다. 서사적 행위의 존재만으로도 인간 언어는 의사소통의 여러 방식에 있어서 유일한 것이 된다. 즉 인간 언어는 동물들의 의사소통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다. 서사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우리의 자발적인 언어 행위는 섀넌이 말하는 정보를 감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언어행위를 별도로 구별한다. _54쪽
저자는 3부 18장에 걸쳐 인류의 진화, 인간의 생물학적 기능, 그리고 그것이 유리하게 기능하는 사례를 언어와 관련된 행동과 연결 지어 탐구한다. 언어를 우연한 호기심의 산물로 상정하고, 그 진화 단계를 분석한 뒤 그것이 언어의 구조에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밝힌다.
1부에서는 ‘인간 종의 역사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위치’에서 동물의 언어와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의 언어 능력을 생물학 및 진화론의 관점에서 살핀다. 저자는 언어의 효용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우며 필수적이기까지 하지만, 언어의 존재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언어의 탄생이나 특성과 관련해 제기되었던 가설들의 맹점을 꼬집고, 보다 통합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2부 ‘말의 기능적 해부학’에서는 통사 기능과 의미 기능의 탄생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룬다. 인간 언어의 많은 특성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 음운론, 통사론, 의미론의 몇몇 측면을 연이어 분석한다. 나아가 통사 기능과 의미 기능의 탄생, 언어가 달리해온 의미 구조의 방식을 짚어보며 통사적 기제의 역할을 알아본다. 마지막 3부 ‘언어의 동물 행동학’에서는 의사소통이라는 사회적 행동을 다시금 적자생존이라는 진화 경향성에 적용해 설명한다. 동물 행동학의 접근 방식을 적용하여, 인간의 가장 특징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언어의 명확하고 자발적인 사용, 즉 대화를 통해 인류라는 종의 특징을 들여다본다. 대화라는 행동의 의미와 역설을 살피며 독자들의 눈을 틔운다.
언어 능력의 구조에서 아무것도 대화에서 다루는 주제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음식, 모험, 낚시 기술 또는 이웃남자가 이웃여자에게 한 일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하든, 음소의 배열, 합성의 배열 또는 정신적 이미지의 조합은 동일한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 가십 성향이 있더라도 이것은 언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는 데 쟁점이 있다. 이 문제는 인간 사회를 동맹들로 구조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동맹을 맺는 모험을 할 사람들에 대해 언제든지 통찰력 있는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_530쪽
탄탄하고 명쾌한 논증과 분석을 통한
인간과 언어에 대한 경이로운 발견
인간의 가장 유용하고 자연스러우며 기본적인 도구인 언어를 통해 인류의 진화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의 의미는, 언어라는 놀라운 존재에 대해 감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연히 여기기 쉬운 우리의 행동 양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단편적인 연구가 해소하지 못하는 교차적이고 심층적인 층위의 분석을 이루어내며, 저자와 그의 말을 충실히 옮겨낸 역자들은 언어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권한다.
언어 기원에 대한 탐구는 시작 단계일 뿐이다. 이 책에서 시도한 것처럼 여러 분야의 지식을 아우름으로써 인간 계통발생에서 언어와 비언어를 분리하는 단계들에 대한 생각을 얻을 수 있다. _5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