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림의 시는
대자연과 호흡했던 원시적 아름다움에
현대적인 일상의 삶을 오버랩하고 있다.
새로운 영역을 일궈가는 시를 기다려왔거나
현대적인 감각과 도시적 감수성에 식상해진 독자들은 서림의 첫 시집 『尹西國으로
들어가다』를 통해 신선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서림은 늦깎이 시인이다. 그러므로 이
첫 시집은 청년의 풋풋함과 중년의 원숙미를 아울러 갖추고 있다. 1956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에서 공부했고, 현재 대구대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현실에서의 첨예한 이해관계에 매달리거나 대중들과 문단에서 주목하고
있는 주제나 형식에서 비켜서 있다. 유년의 꿈을 키워왔고 청년기의 고뇌어린
눈물을 키워왔으며, 중년의 사색을 키워온 산책길에서 길어올린 그의 시편들은
독자들에게 낯선 숲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한편, 그 숲의 향기에
취하게 만든다.
그는 경북 청도 사람이다. 그의 고향
청도의 옛 지만의 바로 尹西國이다. 부족국가시대의 지명을 통해 그는 대자연과
호흡했던 원시적 아름다움에 현대적인 일상의 삶을 오버랩하고 있다. 그가 빌려온
역사성은 그러나 과거의 시간을 지향하지 않고 현실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린다.
시간을 무화시켜서 과거와 현대의 조우를 꾀하는 장소적 매개물이 尹西國-청도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는 신화적인 환상과 몽환적인 세계로 짜여진
독특한 옷을 입고 있지만, 그것이 현란함에 닿아 있지 않고 진지하고 소박한
일상성에 닿아 있다. 서림의 새로움은 바로 여기서 발현된다. 일상 속에서 부대끼고
있는 현실적 삶의 무늬들을 치밀하게 묘파해내는가 하면, 그 삶에 대한 비애와
참담함을 악마적인 거울을 통해 되비추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때로
퇘폐의 인상을 풍긴다. 퇴폐가 도시를 빠져나가는 원시의 공간을 제공해 주기도
하고 원초적인 활력을 되찾게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제1부는 尹西國연작과 이서국이란
역사성에 힘입은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청도 사람들의 애환을 부족국가에서부터
이어지는 기나긴 시간성에 기대어 신화적인 이미지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서림에게는
청도 사람뿐만 아니라 현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족국가의 족장이거나
수렵시대의 수렵꾼이거나 그의 종족이자 백성이다. 청도라는 소읍 자체가 수렵시대의
풍경으로 자리한다. 이러한 가상마을을 통해 이서국을 복원시킴으로써 삶을
더욱 치밀하고 풍요롭게 드러낸다. 그 치밀함은 그의 시들이 집과 길보다는
사람에게 더 치우쳐 얻은 빽빽함 때문이고, 그 풍요로움은 사람을 묘사함에
집과 길들의 희노애락을 밑그림으로 빌린 때문이다. "수렵꾼에게 삶이란
힘들게 구입했다가 / 손쉽게 잃어버리는 화살촉이거나 / 자신도 아끼는 닳아바진
곰 가죽옷이다. 하지만 또 / 가마솥에 푹 고아낸, 쓸개를 터뜨리지 않고 / 짜내야
할 잉어이기도 하다"(「청도장」)에서처럼 일상인의 삶의 애환을 수렵시대의
언어들로 담아냄으로써 참신한 이미지를 획득함과 동시에 신화적인 이미지들로
나아가기도 한다. 서림으 시세계는 그러므로 자연 장대한 그릇을 가질 수밖에
없다. "淸道川 무너미서 / 똥누다 별 쳐다보니 / 밤하늘 동으로 돌고 /
내 똥은 지구 위에 포개진다"(「내 똥이 지구 새롭게 만들기까지」)와 같은
우주적 상상력과 익살스럽게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제2부는 노예라는 부제가 붙은 일련의
연작들이다. 이 시집에서의 노예는 한때의 젊음을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바쳤으나, 이후에 자본주의의 일상적이고 구차한 삶으로 전락한 서민들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한때 빛나는 主思波"였다가 "6번째
낙방"한 고시생을 묘사(「고시생 徐」)하는가 하면,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경위직급을 얻어 파출소에 근무하며 퇴근 후 전자오락실에서 "얼굴없는
급류 향해"(「急流 속에서」)사이버 총탄을 난사하는 인간상 등이 그러하다.
좌초한 굼의 파편들이 빛나게 소멸해가고 있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는 2부 시편들의
후반부는 사막의이미지들이 유토피아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 시편들은 우리의
빛나는 고전은 「청산별곡」의 맥을 이어주는 듯하다. 삶의 애환을 다 짐지하지
못한 이가 청산에 살고 싶다 하며 숨어들어 잘 익은 술향기에 매료되어 거기서
위한을 찾으려는 자세가 여기서도 엿보인다. 삶의 애환을 술로 달래려 하거나,
모나고 각진 현실에 부대끼어 야생의 부드러움인 사막을 평화로운 피안처럼
인식한다는 면에서 그의 시는 퇴폐의 매혹적인 세계를 아루르고 있다. 「주점
블루, 그리고 사막」이나 「꿈틀거리는 사막」과 같은 시편들이 이에 해당된다.
제3부는 도시화되어버린 일상적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노스탤지어를 향해 손수건을 흔드는 현대인의 모습이 정교한 시의
문법으로 구현되고 있다. "장날 큰맘 먹고 사온 튜울립 조화 한 다발"을
통해 팔순 노모의 삶을 조응해 보이는가 하면(「어머니의 造化」), "을지로3가역
지하통로, 시골 노파가 버들피리 팔고 있"고 시인의 아내는 백원짜리 버들피리를
사서 불고 있다. 시인은 그 피리소리를 통해 "아내의 사픈 비밀들"과
자신 " 속의 슬픈 사연을 더듬는다"(「아내는 버들피리를 분다」)
그와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신범순씨(문학평론가.관동大
국문과 교수)가 "현실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자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가서
그들의 미묘한 심리적 무늬와 운명, 그리고 그 속에 뼈처럼 박혀있는 의지 등을
조각해냄으로써 막연한 서정적 진동을 넘어선다"라고 해설에 쓰고 있듯이
치밀하고도 풍요로운 서림의 시들은 한편, 청도 혹은 이서국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재구성함으로써, 지역적인 특수성을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려 지방자치화
시대에 있어서 지방문학이 나아갈 한 방향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서림이라는 진지한 시인의 눈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신화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울하고
아프며 컴컴하다. 그러나 거기에 삶의 진실이 있기에 우리는 새로운 삶의 투명한
거울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