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이치와 어린이 눈높이에 가장 가까운 시심
이안은 따뜻하고 정감 있는 시와 날카로운 어린이문학평론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시인이다. 이미 두 권의 시집 『목마른 우물의 날들』과 『치워라, 꽃!』을 통해 세상을 보는 느리고 여린 시선이 결국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임을 보여준 바 있다. 그는 마치 작은 곤충처럼 더듬이로 사물들의 신비로운 비밀을 포착해낸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그의 따스한 시선은 소외되고 상처 난 삶을 전통 서정시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이안은 최근에 우리 동시문학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을 담은 평론을 여러 차례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는 그의 시와 동시가 일회적 감성과 순간적 영감으로 창작된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하나의 궤적을 이루며 전진해가고 있다는 증거다. 어린이문학평론 가운데서도 동시평론이 드문 시기에 그의 평론 활동은 매우 값진 일이다.
이번에 나온 이안의 첫 번째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은 그의 시적 관심이 어린이문학으로 옮겨와 알뜰하면서도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동시집에서는 자연의 속살을 만지고 속삭임을 들으려고 귀를 쫑긋 열어둔 귀여운 화자를 자주 만나게 된다. 이안 동시의 가장 큰 미덕은 어린이의 눈높이와 성품에 가장 가까운 시심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미사가 붙지 않아도 맑고 아름답다.
이안은 현재 충북 충주에 살고 있다. “먹고살 만큼 농사짓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자”라는 계획을 안고 시골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듯, 그 역시 돈 벌 생각보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며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 마음을 빼앗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가 세상에 선보이는 동시에는 자연의 이치와 자연을 닮은 어린이의 심리가 미세하게 포착되어 내밀하고 순연한 상상력이 담겨 있다.
순연한 상상력이 고스란히 담긴 동시집
야야,/ 요것이, 요 쪼맨 것 좀 보래이/ 요 쪼맨 것도 살라고/ 이래 애를 쓴다야
요 쪼맨 것이/ 그걸 으째 알았으까만
나물꾼덜이,/ 꽃 핀 거는 안 캐고 비키 가니까/ 이래 바짝 서둘러/ 피었닸다야!
―「냉이꽃」전문
이처럼 이안의 동시에는 작은 목숨 하나하나의 마음을 발견해 들려주는 것들이 많다. 그러한 동시들을 읽으며 동화작가 박기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구리 우는 소리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봄날 바삐 오가며 나는 새들을 보며 그 부푼 마음을 알아 들려줍니다. 벌들에게 꿀을 빨리는 해바라기를 보면서, 봄이 오기도 전 꽃을 피우는 회양목을 보면서, 더덕 줄기에 섶을 해주려 꽂아 둔 자두나무 가지에 싹 나는 걸 보면서… 이렇듯 시를 쓰는 것이란 세상 모든 목숨들의 마음을 알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인가 봐요.”
고양이는 고양이/ 개가 아니죠
오란다구 오지 않고/ 가란다구 가지 않죠
보세요, “야옹” 소리도/ 마음 내켜야 한다구요
그래도 고양이를/ 말 잘 듣는 개처럼 키우겠다고요?
굶기고 때리고/ 묶어서라도요?
아빠,/ 제발요 아빠.
―「고양이는 고양이」전문
집에 오는데/ 해바라기가 비를 맞고 섰다
그냥 가려다가/ 잠깐/ 우산을 받쳐 주었다
―「해바라기」전문
그의 동시에는 멋을 부리거나 억지로 만들어낸 거짓된 시의 흔적이 없다. 가난한 밥상일지언정 정말로 밥이 되는 시를 쓰고, 사는 데 보탬이 되는 시를 쓰려 하는 데에서 그의 시의 진정성이 빛을 발한다. 이안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동그랗게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는 못하나 한 덩어리로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것들에게 마음의 귀를 기울이면서.
화가 김세현은 그 어느 작업보다 더 마음을 쏟아 이안의 동시집 그림을 그려냈다. 전통 수묵화 기법을 사용했지만, 마치 판화로 찍어낸 듯한 느낌이 들고 그림 속에 시 한 편이 오롯이 담겨 있는 듯하다. 보면 볼수록 여운이 남는 그림은 오랫동안 독자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