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문학에 새바람을 일으킨 신예시인
곽해룡은 눈높이아동문학대전 동시 부문 수상과 더불어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을 받으며 어린이문학계에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무서운 신인이다. 그의 이력은 조금 남다르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쳤고 돈을 벌기 위해 서울살이를 하며 식당 종업원, 신문 배달원, 공장 노동자로 손발을 쉬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온전한 어린이’가 되기 위해 동시문학 중앙에 뛰어든 것이다.
특히 동시문단에서 신인은 이름 없는 존재, 시 한 편 내밀지 못하는 존재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저돌적으로 돌진하여 동시문단에 곽, 해, 룡이라는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다. 이제 수많은 독자들에게 그의 존재가 뿌리 깊게 박힐 순간이다.
진짜 동시는 순진무구하고 천사와 같은, 깨끗한 아이의 마음에서 나오는 거라 말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어찌 보면 닳고 닳은 우리네 삶, 즉 때가 묻고 할큄을 당하고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고 고통을 느껴본 자만이 우리 삶의 이면을 헤아리는 진지한 시선을 가질 수 있다. 곽해룡은 고달픈 삶의 여정을 거쳐오는 과정에서 진짜 동심, 진짜 동시가 가져야 할 진정성과 합치된 보기 드문 시인이다. 그는 동심을 가장한 거짓 동시가 무엇인지 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동심의 한가운데에 서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끌고 가려 하는 것이다.
새로운 말법과 참신한 발상으로 빚은 동시집
육십 촉 전구만 한/ 노랑 병아리가/ 강아지 집으로 들어갔다
어둑하던/ 강아지 집이/ 환해졌다
―「병아리」전문
눈덩이를 굴리면/ 흙도 묻어오고/ 검불도 묻어오고/ 발자국도 묻어온다
눈사람 속에는/ 길 한 자락이/ 돌돌돌 감겨 있다
―「눈사람」전문
곽해룡의 첫 동시집 『맛의 거리』에서는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는 깔끔한 동시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이를 두고 어린이문학평론가 김제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동시가 단지 가르침을 주기 위한 수단이거나 허무맹랑하고 유치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통념을 깨뜨리기 위해 참신한 시적 발상과 새로운 언어 감각을 동원하려 애쓰고 있다. 그가 상정한 독자는 적어도 시어가 지니는 말맛과 웅숭깊은 시의 내면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독자이다.”
오늘도 지각한/ 배추머리 병식이/ 뒷머리가 폭 패었다
병식이 베고 자던/ 베개 어딘가에/ 배추벌레 한 마리 숨어 있겠다
―「배추머리 병식이」전문
곽해룡의 참신한 상상력은 기존의 안일한 동시적 상상력을 일거에 혁파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다루는 소재는 우리 생활에서 익숙한 것들이다. 하지만 익숙하고 평범한 것들은 그의 손을 거쳐 전혀 새로운 풍경과 목소리로 다시 태어난다. 자아와 대상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예민한 끈을 찾아낼 줄 알고, 명징하고 투명한 이미지 구사를 확실하게 보여주기에 그의 동시는 더 뜨겁게 다가온다. 이처럼 곽해룡은 우리 동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차세대 대표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때로는 익살스러운, 눈시울을 적시다가도 큭큭 웃게 만드는 곽해룡의 동시를 읽다 보면 동시가 나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걸, 내 다친 마음에 조금씩 새살이 돋는 걸 느낄 것이다.
서정적인 색감과 다양한 콜라주 기법이 조화를 이룬 이량덕의 그림이 시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 있다. 이량덕은 동시집의 삽화는 귀엽고 앙증맞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기존 동시집에서 볼 수 없는 동시집의 새로운 화풍을 열고 있다. 곽해룡 동시에 이량덕 그림이 더해져 어린이 독자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의 마음까지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