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은 가을날, 조용한 카페나 공원에 앉아 이 책을 읽어라. 단숨에, 이 기적과도 같은 작은 책을 읽어라. 우리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이토록 간명하고 투명한 글쓰기.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아마존 프랑스 독자
알랭 푸르니에 상, 르 프랭스 모리스 로맨스소설 상 수상작
기어이 눈물샘을 터뜨리고야 마는, 기적 같은 사랑 이야기!
매 페이지가 아름답다. 처절하도록 아름답다. 지워지지 않을 화인 같은 작품. _르 피가로
정신의학자이며 심리상담사인 스캇펙에 의하면 “삶은 고해(苦海)”다. 과연 삶이 고해라면, 문학은 그 바다를 건너는 인간에 대한 기록이자 그 유한한 시간을 영원으로 봉인하려는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으나 딸의 실종이라는 불가항력의 시련에 떠밀려 헤어진 두 남녀가 여자의 죽음을 앞두고 용서와 화해에 이르는 가슴 뭉클한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둘이 헤쳐 나가야 했던 고통의 파고에만 시선을 두지 않음으로써 그 비범함을 획득한다. 150페이지가 안 되는 짧은 분량임에도 이 소설이 긴 여운과 감동을 주는 것은, 지난하고 어둔 불행의 시간 속에서도 미약하지만 끈질기게 빛을 발하는 삶의 위대함을 웅변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어둠에서 빛으로, 망각에서 기억으로, 화해로 가는 여정이다. 최후의 순간에 만난 두 사람은 행복했던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며 부조리한 삶과 화해한다. 그리고 이 최종적인 화해가 이 슬픈 이야기에 빛을 던져준다. 이 여정을 통해 작가 타르디외는 소설의 제목과는 반대로, ‘존재하는 영원’을 그리고자 한다. 소설 말미에 남자의 입으로 낭송되는 베를렌 시(詩)의 마지막 구절이야말로 타르디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 것이리라. ‘육체는 가지만 영혼은 영원하다.’ 역설적이게도 ‘순간의 깊이 속에 깃든 영원’, 즉 기쁨과 상처을 모두 긍정함으로써 우리 안에서 영원히 살아 숨쉴 이 생(生)에 대한 기억이 삶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우리를 위로할 것이라고, 그렇게 삶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 소설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는 역량 있는 신인에게 수여되는 알랭 푸르니에 상과 문학적 성취가 검증된 사랑 이야기에 수여되는 르 프랭스 모리스 로맨스소설 상을 수상했다.
이곳에서, 이 시간 속에서 사라진다 해도
사랑만은 우릴 기억하기를.
영원한 것은 없기에…
2005년 6월, 뱅상
´난 죽어가고 있어 뱅상 난 죽어가 보고 싶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고 싶어 당신을 보고 만지고 당신 목소릴 듣고 싶어 보고 싶어 뱅상 난 죽어가.’ 십오 년 만에 그녀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기력을 다해 흔들리는 필체로 적힌, 마지막에 적힌 그 이름이 아니었다면 가볍게 웃으며 휴지통으로 던져버렸을 편지. 순간 세상은 판지로 만든 초라한 무대장치인 듯 무너져버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고요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나는 미처 겉옷도 챙겨 입지 못한 채, 함께 사는 여인의 근심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십오 년의 사랑 그리고 다시 십오 년이라는 심연.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만나 꿈같은 사랑을 했다. 고독 속에 사는 것을 익숙해하던 내게 행복이 무엇인지, 기쁨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그녀. 그러나 그토록 서로 사랑했음에도 딸아이의 갑작스런 실종이라는 시련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슬픔은 우리를 서로에게서 돌아서게 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닮지 않은 점들을 드러냈다. 시련은 흔히 말하듯 서로를 가까워지게 하는 대신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삶이 다시 제 권리를 찾도록 하기 위해 나는 도시의 소음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녀는 정적과 은둔의 삶을 찾아 전원으로 떠났다.
1990년, 주느비에브의 일기
클라라가 실종되었다.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는 생각지 않기로 한다. 불행은 이유 없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고, 이 점에서 우리 모두는 평등하니까. 그러나 자책을 멈출 수가 없다. 내가 왜 딸아이의 곁에 있지 못했던 걸까. 뱅상은 분노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너져가고 있다. 그러나 살아남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결과를 떠안기로 하자. 품위를 지키고, 의연한 자세로 일어서자. 전과는 다른 삶일 테지만, 그래도 삶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그는 자신의 절망 속으로 나를 끌어들여 함께 빠져들려고 한다. 그의 고통은 외로움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잃어가고 있다. 너무 늦었다. 세상에는 한 방향으로만 건너야 하는 사막도 있는 법이다. 클라라가 없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찬란하다. 기억에 새겨둘 것. 우리에게 기쁨이 존재했음을. 의심하지 말 것. 기억에 새겨둘 것. 클라라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히 달아올랐었음을. 그러나, 희망이라는 신기루에 눈이 상하지 않도록 할 것. 내가 뱅상을 떠나면 이제 누가 그를 돌봐줄까……?
다시 2005년 6월, 뱅상과 주느비에브
광막한 밤, 남프랑스 구석진 샛길에 자리잡은 주느비에브의 집 앞. 십 수 년 동안 수천 번도 더 그 길을 오갔을 주느비에브의 발걸음을 상상해본다. 초인종을 누른다. 쉰여섯이나 먹었는데도 아이처럼 두렵다. 앙상한 몸뚱이에 휑한 두 눈뿐인 얼굴 저편에 있는, 예전의 주느비에브를 응시한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당신과 그애 이야기를 하지 않곤 사라질 수 없어.” 그녀는 클라라가 실종된 후 일기를 써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일기장을 내게 주고 싶다고 한다. 그때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없었던 걸 이제는 내가 기억하기를 원한다고. 주느비에브는 말한다. “그런데 의사가 나한테 마지막이라고 하는 거야. 난 마치 긴 꿈에서 갑자기 깨어난 사람처럼 자신에게 물었지. 이제 나한테 남은 게 무얼까 하고. 그것은 당신이었지.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것, 뱅상, 우리 두 사람의 사랑, 그리고 클라라, 그애의 실종…… 이게 내 삶이야. 이 삶이 누린 기쁨과 상처. 나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왜 삶의 밝은 면만 기억해야 하는 걸까? 빛을 눈부시게 만드는 건 어둠인데 말이야. 만일 우리가 클라라를 잃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난 순간의 가치를 몰랐을 거야. 슬퍼하지 마, 뱅상. 영원은 시간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깊이 속에 있기 때문이지. 그것이 주는 현기증 속에 있어.” 주느비에브와의 마지막 산책 후, 나는 그녀를 위해 베를렌의 시를 낭송한다. 아름다움 때문일까, 추위 때문일까, 몸을 떠는 주느비에브를 꼭 껴안는 순간, 영원히 지워져버렸다고 생각했던 딸아이의 얼굴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삶은 어떻게 같은 순간에 거두어가고 주는 것일까?
소설은 뱅상이 주느비에브의 장례를 마친 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주느비에브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다. 주느비에브의 죽음을 통해 뱅상은 외면해왔던 과거와 대면하고 비로소 그것 또한 삶의 일부였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 환해진다는 진리, 고통의 순간이 있어 행복의 시간이 더욱 소중해진다는, 그리고 그것이 삶이라는 위로를 그녀는 남겨두고 떠난 것이다. 이제 뱅상은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그는 생각한다. 사랑하는 동반자 파스칼과 센 강으로 산책을 나갈 거라고, 그리고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내 딸 클라라에 대해 이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주느비에브가 떠난 자리에 뱅상은 희망의 빛으로 가득 찬 삶을 불러들이고,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가슴을 울리는 소설. _아방타주
맑은 물처럼 흐르는 어둡고도 명징한 문장들, 크리스털처럼 투명하고 팽팽한 글쓰기. 로랑스 타르디외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빛의 순간을 선사했다. _ 라 비
옮긴이 이창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응용언어학 과정을 이수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했다. 『앙드레 말로』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 『누보 로망, 누보 시네마』 『키에르케고르』 『번영의 비참』 『길모퉁이에서의 모험』 『빈센트 반 고흐』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2008년 11월 5일 출간
* ISBN 978-89-546-0697-4 03860
* 가격 9,000원
* 판형: 사륙판 양장
* 140쪽
* 책임편집 해외문학 3팀 김지연(031-955-8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