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사후 이십 년 만에 출간된 최초의 시전집
시인이 타계한 지 꼭 이십 년이다. 1988년 작고하기 전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였음에도 왜인지 그는 오늘의 우리에게 교과서 속에서만 살아 있는 시인, ‘오늘’에서 한참 멀리 있는 시인이었다. 그런 그의 시가, 돌아왔다.
이번에 출간된 『전봉건 시전집』은 시인 사후 최초로 나온 본격적인 시전집으로, 시인의 전 작품을 망라하고 있다. 시인이 생전에 낸 시집과 시선집에 실린 작품 외에도, 미처 시집으로 엮이지 못한, 후기의 「6·25」 연작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전봉건은 ‘전후(戰後)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평자들이 지적했듯이, 그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문예』지를 통해 데뷔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지극히 상징적이다. 그의 시적 출발이 자연스럽게 50년대 한국 현대시의 전개와 그 보조를 함께한다는 사실은 이후 그를 가리켜 ‘전후시(戰後詩)의 한 모델’이나 ‘전후 신서정파의 기수’라고 명명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그의 시는 전쟁의 참혹한 현장과 전후의 폐허-초토-황무지를 관통하며 씌어졌고 전쟁의 상흔이 어느 정도 가신 다음엔 전 사회적으로 추진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근대화의 물결을 헤쳐나가며 벌인 힘겨운 고투를 반영하고 있다. 50년대의 많은 시인들이 그랬듯이 그는 서구 모더니즘을 학습하고 자기화하는 과정을 통해 개성적인 시세계를 일구어나갔다. 『사랑을 위한 되풀이』(1959) 『춘향연가』(1967) 『속의 바다』(1970) 『피리』(1979) 『북의 고향』(1982) 『돌』(1984) 등의 시집과 『꿈속의 뼈』(1980) 『새들에게』(1983) 『전봉건 시선』(1985) 및 기타 여러 종의 시선집에 실린 시편들과 타계하기 전까지 썼지만 책으로 채 묶이지 못한 그밖의 많은 작품들이 바로 그 증거물로 존재하고 있다. 양적 풍부함과 더불어 질적으로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 작품은 한국 현대문학이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성과 독자성을 구비하고 있으며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읽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다.
누구나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보았을, 신선하고 생기 있는 감각으로 충만한 저 「피아노」의 시인 전봉건은, ‘타고난 언어의 테크니션’ ‘초현실주의적 미학을 잘 다루고 있는 테크니시앙’으로, 지금 보아도 신선함이 살아 있는 빼어난 언어감각으로 50년대 시문학에서 보기 드문 이미지의 선명성과 상상력의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전봉건은 6.25전쟁의 참전 체험을 가장 절실하게 지속적으로 노래한 전장시인 혹은 실향민의 아픈 가슴을 가장 뜨겁게 대변한 월남시인으로 일컬어진다. 일평생 북쪽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산 실향민이자 전쟁이 남긴 상처를 간직한 피해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체험적 진실이 녹아 있는 시들을 상당량 남겼으며, 그 시들은 전쟁의 비극성을 건조하면서도 적확하게 묘사한 드문 성취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전봉건은 모더니즘적 외양 속에서도 서정적이고 낭만주의적인 특성을 유지한, 서정시인으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시인이었다. 특정 이념이나 작시법을 앞세우지 않고 타고난 감각에 기초해 서정시의 본령을 지키는 데 주력함으로써, 전통성과 모더니즘이 적절히 조화된 작품들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는 「사랑을 위한 되풀이」 「춘향연가」 「속의 바다」 「돌」 「6·25」 등 많은 분량의 실험적 장시와 연작시 들을 남겼다. 그의 유장한 시적 호흡과 함께 치밀한 시적 사유를 보여주는 이 시들은, 현대에 와서 이러한 형태의 시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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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건이 남긴 시편들은 전후 모더니즘의 차원을 넘어 20세기 한국 현대시사를 전체적, 입체적으로 파악하려 할 때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뛰어난 성과물로 여겨진다. 감각적 리리시즘에 바탕을 둔 그의 시는 과격한 모더니즘적 실험성보다는 개개 작품의 심미적 완성도를 중시했고, 언어의 질감과 시의 형태적 조형미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50년대 씌어진 모더니즘 계열의 시 가운데 상당수가 사이비 난해시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폐기처분된 사례에 비춰볼 때 전봉건의 시가 지닌 전통성과 모더니즘의 적절한 조화는 한결 돋보인다. 그는 특정 이념이나 작시법을 앞세우지 않고 자신의 내면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차분히 그러나 집중적으로 작품을 써나갔다. 그는 ‘나사의 회전’처럼 하나의 주제를 거의 시집 한 권 분량이 될 만큼 연작시의 형태로 되풀이해서 파고들곤 했다. 이러한 ‘되풀이’는 그의 시적 호흡이 그만큼 유장하다는 것을 알려줌과 더불어 그의 시적 사유가 가지고 있는 치밀성을 일러준다. 그는 새로운 것을 찾아 날렵하게 이동하는 편력형의 시인이라기보다는 그의 사유와 상상력이 선호하는 지점을 계속 맴돌며 천착하는 끈기 있는 탐색형의 시인이었다. 그의 시세계는 소리의 울림이 주는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던 초기시에서 전쟁의 포연과 전후의 폐허가 준 충격과 불안을 사랑과 희망의 언어로 극복하고자 한 중기시를 거쳐 시를 쓰기 어려운 암담한 시대 현실 속에서 정신적 단련과 견인주의로 버텨내는 과정을 그린 후기시로 변모해왔다.
전봉건의 시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은 이 전집을 시작으로 그 시작 단계에 섰다고 할 수 있다. 이론의 도움 없이 그는 오직 시만으로 5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치열했던 시의 전장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시문학사 속에서 다시 부활할 준비를 마쳤다. 그의 이름이 지난 연대의 문학사 속에 박제화되지 않고 살아 있는 현재형의 시인으로 되살아나기 위해선 그의 텍스트가 거듭 다시 읽히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시편들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와 매력을 구비하고 있다. 이 전집과 더불어 전봉건은 21세기 시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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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세계는 둥그런 불의 이미지의 세계이다. 그것들은 붉고, 동그랗고, 뜨겁고, 반짝인다. 그것은 어둠을 밝히는 불이나 추위를 녹여주는 불이 아니라, 꽃피고 잘 익어 즐거운 불이다. 그 불은 동그란 것의 내부에 있는 불이며, 조심스럽게 잘 만지거나 헤집고 들어가야 만나게 되는 불이다. _김현(문학평론가)
전봉건의 장시들을 읽어보면 시적 진술이 매우 리드미컬하다는 점을 감지하게 된다. 그는 언어의 음악적 아름다움을 남다르게 구사할 줄 아는 시인인 것이다. _오세영(시인, 서울대 교수)
전봉건의 시들은 격동하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파멸을 거부하는 시퍼런 정신으로 자신을 지키며 실존하는 삶의 역사성을 기록하고 있다. _최동호(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그의 손에 닿으면 어떠한 언어도, 이를테면 녹슨 말은 광이 번쩍번쩍 나고, 시든 말들은 생기에 가득 찬 채, 인간이 지닌 감성의 가장 지고하고 지순한 심적 상태로 독자들을 이끌어 순화시켜주는 것이다. _조정권(시인, 경희사이버대 석좌대우교수)
전봉건이 남긴 시편들은 전후 모더니즘의 차원을 넘어 20세기 한국 현대시사를 전체적, 입체적으로 파악하려 할 때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뛰어난 성과물로 여겨진다. 감각적 리리시즘에 바탕을 둔 그의 시는 과격한 모더니즘적 실험성보다는 개개 작품의 심미적 완성도를 중시했고, 언어의 질감과 시의 형태적 조형미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_남진우(시인, 문학평론가, 명지대 교수)
이번에 발간된 『전봉건 시전집』은 시인이 생전에 쓴 모든 작품을 망라한 최초의 시전집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전봉건이 작고한 지 이십 년 만에 비로소 온전한 형태를 갖춘 시전집이 출간된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이번 시전집은 전봉건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생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_김수이(문학평론가)
■ 작가 연보
1928년 10월 3일 평안남도 안주군 동면 명학리 10번지에서 부친 전형순(全亨淳)님과 모친 최성준 (崔成俊)님의 막내(7남)로 태어남. 이후 관리인 부친을 따라 도내의 여러 군을 전전하면서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냄. 당시 심상소학교(현재의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소년소설 등 을 탐독하다가 중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하기도 함.
1945년 평양 숭인중학 졸업. 중학교 재학시 가형인 전봉래(全鳳來)를 통해 문학의 세례를 받음. 암 파문고(岩波文庫)에서 나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권유받은 후 닥치는 대로 형의 책을 읽어치움.
1946년 해방 이듬해가 되는 이해 여름 바다로 38선을 넘어 남으로 옴.
1950년 『문예』지에서 1월호에 「원」 「사월」(서정주 천)이, 5월호에 「축도」(김영랑 천)가 추 천을 받아 등단한 뒤, 잠시 경기도 양주군 갈매국민학교에서 준교사를 지냄. 6·25전쟁이 일 어남으로 징집되어 군에 입대함.
1951년 1월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가형 전봉래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숨진 채 발견됨. 위생 병으로 복무하던 전봉건은 중공군 총공격 때 중동부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제대함. 이후 대 구의 피난민수용소에서 지냄. 이 무렵 김종삼, 이철범, 최계락 등과 사귐. 또한 음악다실 ‘르 네상스’의 레코드를 황운헌과 함께 정리한 인연으로 이곳에 상당 기간 기식함.
1953년 환도와 더불어 서울에 옴. 출판사 ‘희망사’에 취직함으로써 출판계에 발을 들여놓음. 그뒤 ‘신세계’를 거쳐 ‘삼중당’ ‘태평양화장품’ ‘여상’ 등에서 일함.
1957년 한국시인협회 창립에 참여하고 동회의 기관지 『현대시』 창간호의 편집 실무를 담당함. 김 광림, 김종삼과 함께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자유세계사)를 펴냄. 김광림이 ‘전 쟁과’를, 김종삼이 ‘음악과’를, 전봉건이 ‘희망과’를 각각 소시집 제목으로 선택함.
1959년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춘조사)를 상재하고 제3회 한국시인협회상을 받음.
1961년 시론집 『시를 찾아서』(청운출판사)를 상재함.
1962년 동인회 『현대시』에 참가하고 동명의 동인지 편집을 맡음.
1964년 『문학춘추』(삼중당)지가 창간되면서 편집 책임을 맡음. 이때 박재삼과 함께 일함. 이 무렵 라디오드라마에도 손을 대어 시극 『꽃소라』 등을 씀.
1965년 『세대』지에서 김수영과 「사기론(詐欺論)」을 두고 논쟁을 벌임.
1967년 장시집 『춘향연가』(성문각)를 상재함.
1969년 『현대시학』지를 창간하여 주간직을 맡음.
1970년 시집 『속의 바다』(문원사)를 상재함.
1979년 시집 『피리』(문학예술사)를 상재함.
1980년 시선집 『꿈속의 뼈』(근역서제)를 상재함. 『피리』로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82년 시집 『북의 고향』(명지사)을 상재함.
1983년 시선집 『새들에게』(고려원)를 상재함.
1984년 시집 『돌』(현대문학사)을 상재함.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1985년 시선집 『전봉건 시선』(탐구당), 장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혜진서관)를 상재함.
1986년 시화집 『트럼펫 천사』(어문각), 수필집 『플루트와 갈매기』(어문각)를 상재함.
1987년 시선집 『아지랭이 그리고 아픔』(혜원출판사) 『기다리기』(문학사상사), 수필집 『뱃길 끊 긴 나루에서』(고려원)를 상재함. 12월31일 서울대학병원에 지병인 당뇨가 악화되어 입원.
1988년 계속 발표하던 연작시 「6·25」를 끝맺지 못하고 6월 13일 작고함.
* 초판발행 | 2008년 12월 15일
* 145*220 | 776쪽 | 값 30,000원
* ISBN 978-89-546-0729-2 03810
* 책임편집 | 조연주 서현아 (031-955-8865, 8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