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사이더 하우스>의 원작 소설
존 어빙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사이더 하우스』는 라쎄 할스트롬이 감독을 맡고 마이클 케인, 토비 맥과이어,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을 맡은 영화 <사이더 하우스>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는 두 시간이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인 데다 비록 흥행몰이는 하지 못했지만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1, 2권 도합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저 호머 웰즈라는 한 청년의 사랑과 성장기로 읽히는 영화가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것은, 낙태금지법이 발효되던 당시 미국에서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진 여성과 버려진 아기들을 구제하는 사명을 지닌 한 의사의 고집스런 삶이며, 더 깊게는 삶의 ‘룰(규칙)’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다. 원제 ‘The Cider House Rules(사이더 하우스 룰스)’, 즉 ‘사과농장의 규칙’의 깊은 뜻이 여기에 있다.
• ‘규칙과 삶’에 관한 소설, 『사이더 하우스』
이 책에서 ‘사과농장의 규칙’은 일반적인 삶의 규칙을 말한다. ‘낙태금지법’처럼 우리 삶을 결정적으로 구속하는 큰 법률에서부터, 공장 지붕에 올라가지 말라는 단순한 작업상의 규칙, 그리고 자동차극장에서는 영화보다는 연인과의 데이트에 열중해야 한다는 연인들의 데이트 규칙에 이르기까지, 삶의 무수한 순간들을 지배하는 무수한 규칙들. 그게 하필 ‘사과농장’인 이유는 이 소설에서 ‘사과농장’은 ‘바깥세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인트 클라우즈 고아원에서 나고 자란 호머 웰즈와, 이 병원에서 청춘을 바쳐 일한 닥터 라치에게 세인트 클라우즈 이외의 세상은 다 ‘바깥세상’이다. 청년기를 문턱에 두고 있는 호머는 우연한 기회에 고아원에서 벗어나 오션 뷰 사과농장으로 가서 살게 된다. 거기서 그는 ‘바깥세상의 규칙들’을 배우고 이 규칙들이 삶을 돕거나 삶을 방해하는 것을 배우며 인생살이를 깨치게 된다.
‘규칙’에 관한 이야기. 언뜻 보면 이처럼 딱딱한 주제를 가지고 이만큼 감동어린 작품을 쓴 것은 거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주제의식과 탄탄한 스토리, 독자를 울고 웃기는 감동을 제조해내는 솜씨, 수많은 인물들 각자에게 전혀 다른 개성을 부여하여 엑스트라 1인이라도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그 재주 역시 거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존 어빙 스스로가 “나는 이야기를 짓는 목수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무릎을 칠 만큼 정확한 표현이다. 섬세한 톱질과 대패질, 정확한 측정, 빈틈없는 끼워맞춤으로 크고도 복잡하여 만들기 까다로운 장 하나를 훌륭히 만들어냈다는 느낌이 드는 이 소설은, 인간애 가득한 정통 서사를 갈구했던 독자들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 소설 내용
닥터 라치의 ‘주님의 일’
19세기 내내 벌목촌과 제재소 공장이 있던 세인트 클라우즈는 미국 메인 주의 내륙에 있는 외진 시골 마을로, 20세기 들어서 더 이상 베어낼 나무가 남아나지 않자 제재소는 철수하고 목재 하치장은 버려진 채 황폐한 마을이 되었다. 공기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톱밥가루와 공장 노동자들이 기숙하던 버려진 숙소 건물들, 그리고 노동자와 창녀가 결합하여 낳은 버려진 고아들만 남은 세인트 클라우즈의 음울한 풍경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20세기 초기에 이 마을에 부임한 청년 의사 닥터 라치는 이 버려진 마을을 위해 살겠다는 소명을 가지고 고아원과 병원을 운영하면서 이후 죽는 날까지 자신의 소명을 다한다.
닥터 라치의 소명 중 가장 큰 것은 ‘버려진 생명들을 돕는 것’이고 이것은 즉 ‘낙태 수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미국은 낙태금지법이 시행되는 나라였기에 낙태 수술은 불법이었다. 청년 시절, 단 한 번의 섹스 경험이 남긴 상처가 컸던 닥터 라치는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게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기 전에’, 낙태금지법에 의해 ‘출산 후 버려지는 무수한 고아들을 구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낙태금지법에 열렬히 반대하며 몰래 낙태 수술을 해준다. 당시 동료 의사들은 출산은 ‘주님의 일’이며 낙태는 ‘악마의 일’이라고 불렀지만, 닥터 라치에게는 낙태 역시 ‘주님의 일’이다.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한 여자들 사이에서 세인트 클라우즈 병원은 비밀리에 알려지고, 몰래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