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조망하는 극한의 우아함
전대미문의 미스터리를 인간의 온기로 되살려낸 문학적 성취!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차마 상상할 수 없고
상상했더라도 감히 글로 쓸 수 없는
실제 사건이야말로 소설가에겐 가장 큰 좌절이다” _필립 베송
1984년 10월, 프랑스의 산골 보주의 차가운 강물에서 손발이 묶인 네 살짜리 사내아이의 시신이 떠오른다. 전설이 된 미스터리 ‘그레고리 사건’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다. 이 사건은 2001년 공소국이 사건 종결을 선언할 때까지, 무려 17년간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미결로 남았다. 그 과정에서 수차례의 현장 검증과 공판 결과의 번복은 물론, 죽은 아이의 엄마를 용의자로 몰아 수감 시키는 경악스러운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10월의 아이』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소재로 쓴, 그라세 출판사에서 기획한 ‘이것은 실제 사건이 아니다’ 시리즈의 첫 타자가 된 필립 베송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출간 당시 소설 외적인 요소들로 문단 밖까지 한 차례 들끓게 했다. 유족들이 문단의 중요 작가인 베송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소설을 발표했다는 것에 불만을 품어 소송을 제기했고(재판부에서는 소설 속 실명을 다른 이름으로 대체할 것을 주문하는 것으로 사실상 작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전대미문의 미스터리를 다시 소환해 소설화한 작가의 의도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실화에 바탕을 둔 소설은, 특히 프랑스의 문학 전통에서는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스탕달의 『적과 흑』,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또한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했으며, 그라세 출판사의 시리즈도 이미 1930년대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앙드레 지드가 ‘심판하지 마시오’ 시리즈로 이미 시도했던 기획이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식상해 보이는) 이 기획은 실제 사건에 대해 필립 베송이 소설가로서 느끼는 좌절감과 만나 상승효과를 가져와, 『10월의 아이』라는 빼어난 수작을 탄생시켰다(이 작품은 출간 당시 평단으로부터 ‘필립 베송의 최고 작품’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필립 베송은 말한다.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차마 상상할 수 없고 상상했더라도 감히 글로 쓸 수 없는 실제 사건이야말로 소설가에겐 가장 큰 좌절이다.” 그러나 동시에 실제 사건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탐구하는 소설가의 운명이기에, 베송은 ‘그레고리 사건’을 모티프로 집필한 『10월의 아이』에 큰 공을 쏟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이런 사랑』을 통해 국내 독자들을 매료시켰던 베송 특유의 정련된 문체와 지극히 감상적인 줄거리를 역설적으로 조화시킨 스타일은 이 비극적 사건을 문학적으로 가공하는 데서도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사건을 가감 없이 담담하게 전달하는 삼인칭 내레이션과 엄청난 비극을 몸소 겪어낸 죽은 아이의 어머니의 일인칭 서술을 교차시킴으로써, 실제 사건과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핵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나는 그레고리를 죽이지 않았다!”
20여 년이 지난 후까지 미결로 남은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해 논란을 일으킨 문제작
1980년대 초 지스카르데스탱 정권 말년, 프랑스의 산골 보주. “안개로 둘러싸인 깎아지른 계곡에 세월이 흐르고 권태가 쌓이면서 형성된 부락과 마을이 시가지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곳, “썩은 곰팡내를 풍기는 시골 마을, 경쟁심으로 곪은 협소한 세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친인척들로만 이루어진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한결같이 권태와 포기, 체념으로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운명을 거부했던 한 쌍의 남녀가 있다. 바로 피에르와 발레리다. 안주하는 삶, 미래의 희망을 꿈꾸지 못하는 삶은 자신들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둘은 모두에게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소망을 실천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상상도 못 한 채.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 피에르와 발레리는 그들을 옭아매는 저주 같은 산골마을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보란 듯이 부유한 동네로 이사를 간다. 그러나 이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 시기와 질투, 증오의 눈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의 협박이 시작되면서 두 사람의 행복에 서서히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진다. 그사이 아들 ‘그레고리’가 태어난다. 아이는 젊은 부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티 없이 자란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1984년 10월 16일, 며칠 동안 실종되었던 그레고리가 손발이 묶인 채 익사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일가족 전체를 용의선상에 올린 후 필적 감정, 대질심문을 실시해 피에르의 사촌을 유력 용의자로 지목하고 구속하지만 곧 그는 무혐의로 풀려난다.
한편 언론은 이 충격적인 사건을 연일 다루며 수사에 압박을 가하는 한편, 희생자 부모의 절망을 뉴스거리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되고, 피에르와 발레리는 아들의 죽음을 애도할 틈도 없이 외설스러운 카메라의 시선에 가차 없이 노출된다. 프랑스 전체가 아이를 잃은 부부를 향해 동정과 연민을 보내고 정의에 따라 죄인을 심판할 것을 요구하지만, 내심 서스펜스가 길어지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오래가지 않아 상황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된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 발레리가 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며칠 후, 유력한 용의자인 사촌이 석방되고 대신 의심의 화살이 아내에게 향한 것에 분노한 피에르가 사촌을 쏘아죽이고 구속된다.
발레리가 증거 부재로 친자살해라는 누명을 벗고 악몽의 터널을 빠져나오기까지는 사건 후 팔 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진실은 달아나버렸고, 사건의 미스터리는 영원히 봉인된다.
이것은 소설이다. 드물지만, 그래서 고귀한 사랑의 이야기다
끝내 범인이 밝혀지지 않음으로써 미스터리로 남음과 동시에, 프랑스 법기구의 문제점과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국민이라 자부하는 프랑스인들의 양면성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몰고 온 그레고리 사건. 이 사건에는 필립 베송을 위한 모티프가 아닌가 싶을 만큼, 그가 전 작품을 통해 천착해온 주제들이 집약되어 있다. 소중한 존재의 죽음, 살아남은 자들이 소중한 존재의 상을 치르는 나름의 방식, 물의 이미지, 시험에 빠진 가족관계, 홀로 집단과 맞선 자의 고독, 어린 소년의 죽음,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이 굳게 결속된 사랑…… 필립 베송은 이 모든 이야기를 담담하게 기술하면서도 극한의 우아함과 긴장을 부여함으로써 빛나는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낸다. 특히 그는 이 사건에서 인간 안에 도사린 가장 어두운 심연을 발견한다. 오로지 내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고한 얼굴로 남의 불행과 고통을 기꺼이 지켜보는 것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소설 속에서 말한 바, “우리 인간은 이렇게 생겨먹었다.”
하지만 소설 말미에 발레리의 목소리로 들려주듯, 이 이야기는 그저 유아살해사건을 기록한 일지로 그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아들의 죽음과 여론의 광기 어린 시선, 누명과 스캔들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도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맨 처음의 맹세를 지켜낸 두 남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상하기 힘들 만큼 엄청난 고통 속에서 쓰러지지 않게 그들 서로를 지탱해준 것은 사랑이었다. 그렇게 『10월의 아이』는 다큐멘터리 소설을 넘어, 숭고하고도 힘센 사랑 이야기로 각인되어야 할 소설이다.
지난 몇 년간 읽은 소설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_레브도
인간의 가장 깊고 어두운 폐부를 찌르는 소설. 필립 베송은 자신의 최고 작품에 서명했다! _프시콜로지
비극의 요인들을 심판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에 가장 가까이 가는 데 성공한 작품. 다큐멘터리 소설의 건조함을 피하고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탐구하면서 문학적 두께를 획득했다. _로피니옹 앵데팡당트
필립 베송은 그레고리 사건을 상기시키면서도 우아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가 함정을 피해감으로써 비극은 부조리와 휴머니즘으로 귀속되었다. _주르날 뒤 디망슈
옮긴이 장소미
숙명여대 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숙명여대에서 강의했으며, 파리3대학에서 영화문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런 사랑』을 우리말로 옮겼다.
* 2008년 11월 5일 출간
* ISBN 978-89-546-0698-1 03860
* 가격 11,000원
* 판형: 사륙판 양장
* 236쪽
* 책임편집 해외문학 3팀 김지연(031-955-8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