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추리로 엮은 모큐멘터리 인물 그림책
‘모큐멘터리’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삼아 역사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우고 그럴듯하게 엮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완성한 이야기를 말한다. 음악의 도시 빈에 살던 시절,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교향곡 6번(전원)」등 널리 알려진 위대한 곡을 많이 작곡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이사를 많이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사를 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 책은 그 당시 베토벤이 다섯 대의 피아노를 가지고 이사한 모습을 상상하여 만든 그림책이다. 작가는 이야기의 기초가 된 몇 가지 사실은 글 속에서 ‘사실’이라고 따로 표시했다. 기발한 발상으로 경쾌한 추리를 마친 『베토벤의 기적 같은 피아노 이사 39번』을 통해 천재 음악가 베토벤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빰빰빰빠~’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반주를 깔며 1770년 독일의 본에서 태어난 아기 베토벤을 등장시켰다. 다음 장에서 베토벤은 곧 위대한 작곡가로 성장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베토벤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처음으로 산 곳은 도시 중심가에 있는 어느 아름다운 방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베토벤은 적어도 서른아홉 번의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피아노를 무려 다섯 대나 들고서!
베토벤이 빈에서 생활하는 동안 적어도 서른아홉 군데의 셋방에서 살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리 없는 피아노를 다섯 개 갖고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지요! 그러나 베토벤이 짐이나 피아노를 어떻게 옮겼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에서 빠져 버린 내용을 담고자 했습니다. 왜 베토벤은 그렇게 자주 집을 옮겼을까요? 베토벤이 살았던 복잡한 건물들 사이로 어떻게 피아노를 옮겼을까요? 이웃들이 항의하지는 않았을까요? -‘작가의 말’에서
다닥다닥 오래된 건물들이 복잡하게 들어선 도시에서 피아노 다섯 대를 옮겨가며 이사를 다니려면 어떠한 방법이 쓰였을까?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건 도무지 불가능하다! 도르래로 피아노를 빼내 올려 지붕과 지붕 사이로 옮겼을 것이다. 또 어떤 방법이 쓰였을까? 이사 갈 집의 입구로 바로 들어가기 어려운 조건이라면, 그 집과 딱 붙어 있는 오래된 저택으로 먼저 들어가서 계단 위의 벽 하나를 부순다. 벽을 통과해 나가면 간단하게 이사 끝!
정말일까, 아닐까? 이야기를 읽는 내내 기상천외한 이사 모습에 웃음이 나고, 실제처럼 묘사된 정황 설명과 증인들의 말들에 정말일까 아닐까 궁금증이 커가다, 결국엔 괴팍해 보이는 베토벤과 베토벤의 그 시절이 눈앞에 펼쳐지며 생생해진다. 미국에서 출간된 당시 ‘뉴욕타임스’가 많은 지면을 할애해 호평했듯, 베토벤을 다룬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이처럼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득 찬 독특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굳이 ‘뉴욕타임스’가 비교한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가 단 하나의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라는 점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엉뚱하면서도 짐짓 진지한 태도로 일관된 이번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담아내려는 진짜 주제는 표면적 주제인 ‘이사’ 뒤에 숨어 있다. 이 시절 베토벤은 귀가 멀고 있었다. 베토벤은 작은 소리라도 더 듣기 위해 피아노를 점점 더 세게 두드려야 했다. 당연히 이웃들의 항의는 점점 더 거세졌을 터. 천재 베토벤은 이사를 수십 번을 다니면서도 위대한 곡을 많이 만들어 냈지만, 귀가 멀어갈수록 사람들에게는 광기로 기억됐다. 그러나 베토벤의 작곡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리고 청각을 완전히 잃은 후에 만든 「교향곡 9번」같은 작품이 기적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극적인 감동을 주기에 이르렀다. 작가의 말대로, 이에 비하면 피아노를 이 집 저 집으로 옮기는 일이나, 그 와중에 아름다운 곡들을 작곡한 일은 기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베토벤의 집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베토벤의 걸작들은 엄청난 소음 끝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소리 지르고, 으르렁거리고, 반복해서 머리에 물을 들이부었던 겁니다. 귀가 점점 나빠지면서 연주는 점점 시끄러워졌습니다. 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그는 완전히 귀가 멀었고, 광인의 분노로 가득 차 피아노를 두드렸습니다. 그 당시 목격자의 증언을 보면 베토벤은 실제로 미쳤던 것 같습니다. 그가 미친 것은 당연합니다. 위대한 작곡가가 된다는 것, 그러고 나서 귀가 멀어 버린다는 것, 그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요? 청각을 완전히 잃은 후에 가장 위대한 작품인 「교향곡 9번」을 작곡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이에 비하면 피아노를 이 집 저 집으로 옮기는 와중에 아름다운 곡들을 작곡한 것은 기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