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캔버스가 들려주는 창조와 부활의 미스터리!
2005년 네덜란드 최고 권위의 리브리스문학상 수상작
네덜란드에서 크게 주목받는 작가 빌렘 얀 오텐의 소설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다. 생을 탐사하는 철학적 시선을 견지하며 소설뿐 아니라 영화와 희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학적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빌렘 얀 오텐은 우리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전적인 주제와 전위적 형식의 조화를 통해 강렬한 페이소스를 끌어낼 줄 아는 작가로 꼽힌다.
특히나 이번에 소개되는 『스페흐트와 아들』은 그의 문학적 시도를 맛볼 수 있는 독특한 구성을 가진 소설로,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가 바라보는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어 더욱 참신하고 흥미로운 화법으로 읽힌다. 이 작품은 무언가를 창조하여 세상에 내놓고자 하는 예술가의 욕망을 중심으로 죽음과 탄생, 존재에 대한 물음, 사실에 대한 진위와 믿음에 대한 복합적인 물음들을 던지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로 2005년 리브리스문학상(The Libris Prize)을 수상했으며,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 비견된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현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등에서 출간되어 현지 독자들의 끊임없는 관심을 얻고 있다.
캔버스에 물감이 스며드는 순간, 죽은 아이의 눈빛이 당신을 유혹한다!
초상화가 펠릭스 빈센트는 준설회사 사장인 거부(巨富) 발레리 스페흐트에게 죽은 아들 싱어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의뢰자는 초상화를 통해 아들의 생명을 되살리고자 한다면서, 아무에게도 초상화를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단다. 빈센트는 자신이 원하는 저택을 구입하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만 그린다는 자신의 원칙을 버리고 이 주문을 받아들인다.
펠릭스는 초상화에 착수하기 위해 스페흐트와 몇 번의 대담과 아들을 촬영한 비디오와 폴라로이드 사진 등을 통해 인물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다. 그 과정에서 화가는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한다. 그의 아들 싱어는 검은색 피부와 넓적한 코의 아프리카인으로, 그를 촬영한 비디오에 눈을 반쯤 내리깐 채 나체로 있는 소년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버지라고 하는 스페흐트는 아들에 대해 상세한 사항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이 언제, 왜 죽었는지 언급을 회피한다.
화가는 죽은 대상을 두고 살아 있는 상태로 되살리기 위해 고심한 결과, 소년을 엎드려 누운 나체의 모습으로 그리기로 결정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화가의 아내는 소년의 모습에서 어떤 정신적인 교감을 느끼며 공교롭게도 임신을 한다.
초상화를 완성한 후 펠릭스는 약속한 날짜에 의뢰자를 기다리지만 스페흐트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화가는 옛 여자친구이자 잡지사 기자인 민커와 혼외정사를 갖게 되고, 약속을 어기고 싱어의 초상화를 보여준다. 민커는 펠릭스에게 초상화 속 소년의 정체에 대하여 자신이 기사를 쓰기 위해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말해준다. 민커는 스페흐트가 소아대상 성도착증 환자이며, 싱어는 팔려온 아이이고 스페흐트는 현재 죽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펠릭스는 자신이 농락당했다고 느끼고 싱어와 관련된 비디오와 폴라로이드뿐만 아니라 완성하고 스스로 만족해한 초상화마저 태워버린다. 그후 펠릭스는 병원에서 아내가 난산을 통해 아들을 출산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집 앞에서 휠체어에 앉아 그를 기다리는 스페흐트를 만난다. 펠릭스는 스페흐트와의 대화를 통해 민커가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 비디오에 담긴 아들의 모습은 그가 마약에 빠져 자살을 시도했을 때의 모습이며, 아들은 마약에 중독된 상태에서 컴퓨터 사이트를 통해 자신을 모함하였고, 언론은 그 사이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보도한 것이라는 뜻밖의 사실을 알려준다. 그제야 펠릭스는 폴라로이드로 찍어둔 초상화 사진을 품속에서 꺼내 스페흐트에게 보여준다. 이 사진을 본 스페흐트는 다시 한번 아들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아들이 초상화를 보게 되면 다시 삶으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아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살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피조물인 동시에 창조자, 캔버스가 화자인 특별한 소설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행동과 사건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나’, 일인칭 화자는 화실 안에서 그림이 그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캔버스, 즉 사물이다. 그러나 캔버스에 마침내 그림이 그려지는 순간, 이 캔버스는 자신의 몸 위에 어떤 것이 그려지는지를 보지 못하는 유일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러한 화자 시점은 이 소설의 매우 특별한 점이다. 이 캔버스가 놓인 위치와 그 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따라서 화자의 시점 역시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캔버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생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제한적 상황에 놓인다. 화자가 가진 이런 제약은 서술된 부분이 충분하지 않음으로 해서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적인 구실을 한다.
검은색 피부의 소년이 알몸으로 침대 위에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내가 바로 저 아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싱어라는 것도 알았다. 저게 바로 나였다. (171쪽)
캔버스는 화가가 의뢰자의 아들 싱어를 화폭 위에 그림으로써 싱어와 일체를 이루게 되지만, 그럼에도 캔버스는 과연 자신의 존재는 무엇이며 누군가라는 의문을 늘 가지게 되고, 독자 역시 그 궁금증에 시선을 맞추고 따라가게 된다. 즉 캔버스는 화자인 동시에 창조와 생명, 존재와 존재를 연결해주며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남게 된다.
동성애와 소년의 누드, 그리고 뜻밖의 반전
이 소설에서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스릴러 같은 묘미마저 느끼게 하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라 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이라는 인물의 관계는 나중에 동성애 성향을 가진 남성과 어린 노예 사이로 드러나기도 한다.
“열두 살짜리 소년의 알몸 초상화라고요?” 스페흐트 씨가 물었다.
창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려면 용기가 필요할 텐데요?” 스페흐트 씨가 말했다.
열두 살짜리 아이의 알몸 초상이면…… 창조자는 묻는 듯한 눈빛으로 스페흐트 씨를 쳐다보았다.
“순진무구하게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이겠죠.” 스페흐트 씨가 말했다. “아이의 초상화는 아주 특별한 희소성을 갖게 될 테고 스캔들 또한 가장 크게 불러일으킬 거예요.” (80쪽)
또 죽은 아들의 초상화에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린다는 것도 그로테스크한 점이 없지 않은데다, 화가가 소년의 누워 있는 누드화를 그리면서 자신이 청소년 시절에 겪었던 동성과의 성적인 문제를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등 동성애적 분위기가 감돈다. 그럼에도 내용은 동성애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생명의 탄생(창조)과 존재, 인간 사이의 신뢰, 사건의 진위, 속죄와 용서 등의 주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가 되어서야 진실이 그 베일을 벗는데, 만약 결론에 대한 독자 자신의 예측이 상투적이었다면 반전의 묘미를 만끽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 미스터리한 소설
간결한 문체임에도 독자에게 계속적으로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이 소설에는 순수성의 상실, 속죄와 용서 그리고 삶과 죽음과 같은 다양한 주제가 전개되고 있다. 비교적 얇은 분량의 원고에 이렇듯 다양한 주제를 담은 소설도 흔치 않을 것이다. 위에 언급된 여러 가지 주제가 암시하듯 이 작품에는 종교적 색채가 깊이 배어 있다. 캔버스가 화가인 펠릭스를 ‘창조자’로 부르는 것, 이 작품에 등장하는 ‘피에타’, 캔버스를 지탱하는 지지대를 십자가로 표현한 점 그리고 죽은 소년을 초상화를 통해 다시 살리게 하는 것, 초상화 제작을 의뢰한 스페흐트가 죽어가고, 펠릭스의 부인인 리데베이가 난산으로 거의 죽을 위기를 겪으며 새로운 생명을 출산하는 것처럼 이 작품의 곳곳에서 종교적 배경과 소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자신이 인생의 질문들에 대하여 교리적 관점으로 답을 찾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창조자’로 불리는 펠릭스는 한 생명을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구하려 한다는 메시지를 작품 전체에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훌륭한 소설이라 부르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이 소설로 오텐은 독자를 숨가쁘게 할 만한 중요한 작품을 써낸 것이다. <2005년 리브리스문학상 심사평>에서
심사위원단은 만장일치로 긴박한 스릴과 종교성이 혼합된, 특이한 화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을 뽑았다. 작가 오텐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수상자로서 절대적인 인정을 받았다. <파롤>
독자를 전율케 하는 동시에 숨 막히게 하는 지적인 구성으로 짜인 책이다. <네덜란드 다그블라데>
기지가 넘치는 구조를 가진 오텐의 소설이 리브리스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매우 독창적인 소설! <트로우>
빌렘 얀 오텐(Willem Jan Otten)
195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1973년 시집 『어리석은 제비』를 출간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기독교적 체험에서 비롯된 시적이면서도 명확한 인식으로 소설, 영화, 희곡, 비평 등의 예술 영역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쳤고, 이는 대부분 삶과 죽음, 믿음, 죄책감과 욕망이라는 주제로 형상화되었다. 1984년 첫 장편소설 『소문으로 떠도는 남자』를, 1994년 두번째 장편소설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야!』를 펴내며 독자들의 폭넓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2005년 캔버스를 화자로 등장시켜 창조와 죽음, 부활의 미스터리를 그려낸 『스페흐트와 아들』로 네덜란드 최고 권위의 리브리스문학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유동익
한국외대 네덜란드어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에서 법학 석사와 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네덜란드 법원인가 번역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이후 한국외대에서 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외대에 출강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하멜 보고서』 『북풍 마녀』 『레닌그라드의 기적』 『꼬마 요리사와 킥보드 공주님』 등이 있다.
. 초판발행 | 2009년 3월 2일
. 128*188(양장) | 224쪽 | 값 12,000원
. ISBN 978-89-546-0738-4 03890
. 책임편집 | 강건모 (031-955-2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