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런 소설을 기다려왔다!
“제임스 조이스, 사뮈엘 베케트 등 20세기 최고 데뷔작에 비견할 만한 작품” _가디언
“한정된 시공간에서 사는 인간에게 소설은 벽에 난 창문과도 같다. 우리는 그 창문을 통해 다른 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창밖 세상이 꼭 진실일 필요는 없으며, 독자도 그것이 진실일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_ 옮긴이의 말에서
소설이 독자와 다른 세상을 연결해주는 창문이라면, 그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만큼 읽는 이를 설득하고 공감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 그리고 그 창문이 얼마만큼 세상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통찰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창문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역량에 달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 한 소설가가 있다. 데이비드 미첼. 국내 독자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미 영미문학 쪽 평단과 언론 그리고 독자들의 까다로운 감식안을 통과해 서서히 거장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작가이다. 그를 단숨에 문학계의 기대주로 부상시킨 데뷔작 『유령이 쓴 책』이 발표된 지 꼭 십 년 만에 한국 독자를 찾아간다.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문단과 언론에서는 “내가 읽은 최고의 데뷔작 중 하나”(A. S. 바이어트), “제임스 조이스, 사뮈엘 베케트 등 20세기 최고의 데뷔작에 비견할 만한 작가”(가디언), “데이비드 미첼은 소설 고유의 즐거움을 창조해낼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라는 찬사를 쏟아내며 새로운 문학 천재의 탄생에 대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유령이 쓴 책』은 1999년 그해 35세 이하의 영국 작가가 쓴 최고 작품에 주어지는 ‘존 루엘린 라이스 상’을 수상했으며, 가디언 신인 작가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유령작가’ 혹은 ‘유령’이 쓴 이야기
이 책의 원제인 ‘ghostwritten’은 단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유령작가(ghostwriter)가 쓴’이라는 뜻이다. 『유령이 쓴 책』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는 서로 다른 아홉 명의 화자가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아홉 편의 이야기 중 하나인 ‘런던’ 편에서는 실제 뮤지션이자 유령작가(우리가 흔히 대필작가라 부르는)인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몽골’과 ‘뉴욕’ 편에서는 말 그대로 ‘유령’ 혹은 어떤 ‘영혼’이 등장인물로 나온다. 따라서 이 작품의 ‘ghost’라는 말은 유령작가를 뜻함과 동시에 실제 유령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제목은 또한 이 소설 구성 전체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아홉 개의 파트가 서로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몽골 편의 주인공인 유령은 오키나와, 홍콩, 중국 편에서도 출연했음이 드러나며 런던 편의 대필작가는 홍콩, 페테르부르크, 아일랜드 편과의 관련이 밝혀진다. 결국 소설을 다 읽은 독자는 세계를 놀라운 방식으로 연결시키는 기묘한 ‘우연’의 모습에 유령을 본 듯한 섬뜩함을 느끼며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고 싶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판타지, 로맨스, 공상과학, 신화, 역사, 스릴러…
기묘한 퍼즐처럼 얽혀드는 서로 다른 장르의 아홉 가지 이야기
오키나와로 도피중인 지하철 테러범, 수줍은 첫사랑에 설레는 레코드숍의 청년, 오욕의 아시아 근대사를 온몸으로 겪는 중국 성산의 한 여인, 배신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페테르부르크의 미술품 절도단, 도박장에서 우연과 운명의 전쟁을 겪는 런던의 대필작가, 미국 군수기업에 쫓겨 아일랜드 전원으로 피신한 저명한 여성 물리학자……
『유령이 쓴 책』은 오키나와, 도쿄, 홍콩, 중국의 성산, 몽골, 페테르부르크, 런던, 아일랜드, 뉴욕 등 서로 다른 지역과 시간을 배경으로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각각의 이야기는 하나의 중편처럼 읽히는 동시에 거대한 모자이크의 한 조각으로 결합된다. 작가는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다른 편의 이야기에 여러 형태로 등장시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우연’과 ‘운명’의 기묘한 관계에 대해 역설한다.
이 소설은 ‘몽골’과 ‘홍콩’ 편에 유령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판타지 소설이기도 하지만, ‘오키나와’와 ‘페테르부르크’ 편에서는 스파이와 테러, 국제 미술품 절도를 다루는 스릴러 소설의 형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산’과 ‘홍콩’ 편은 역사소설의 면모를, ‘몽골’ 편은 전설과 신화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도쿄’와 ‘런던’ 편은 성장 로맨스 소설의 요소를 내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클리어 아일랜드’와 ‘나이트 트레인’ 편에 이르면 근미래 공상과학 소설로 발전한다.
하지만 훌륭한 작품들이 다 그렇듯, 이 소설은 결국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독창적 기법과 철학적 깊이를 성취한 소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영국과 미국의 언론들은 『유령이 쓴 글』을 슬립스트립, 즉 장르소설의 영향을 받은 주류 문학으로 분류하고 있고, 보르헤스,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등과의 유사점과 영향 관계, 다른 대가들에 대한 오마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설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은 아이작 아시모프에 대한 오마주이며, 런던 편의 주인공이 소속된 밴드 이름 ‘우연의 음악’은 폴 오스터의 『우연의 음악』을 따서 지은 것이다. 또한 데이비드 미첼의 두번째 소설인 『넘버 나인 드림』은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과 마찬가지로 비틀즈의 곡명에서 제목을 따왔다.
여행자, 이방인으로서의 소설가 - 길 위에서 영감을 찾는 작가
일본의 광신도 테러리스트, 중국 산골의 할머니, 홍콩의 영국인 변호사, 재즈를 사랑하는 청년, 몽골의 유령, 러시아의 미술품 절도범, 런던의 플레이보이 드러머, 아일랜드의 핵물리학자, 뉴욕의 라디오 디제이……
데이비드 미첼은 어떻게 이처럼 세계 곳곳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작가 자신과 비평가들은 그 답을 여행자와 이방인으로서의 삶에서 찾고 있다.
미첼은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그것으로 학위까지 받았지만, 서른이 다 될 때까지 소설을 쓰지도 않았고, 모국에서 직업을 얻고 안정된 생활을 하려 들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생계로 영어회화를 가르친다. 『유령이 쓴 책』에 등장하는 장소와 인물들의 이야기는 이러한 직접 체험이 없었다면 쓰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실제로 작가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모두, 그 순서 그대로 가봤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에게는 소설쓰기가 일종의 여행기를 쓰는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결국 미첼은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봤기 때문에 소설가가 될 수 있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그에게 소설은 여행을 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일 수도 있는 것이다. A. S. 바이어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데이비드 미첼은 현명한 작가여서 멀리 떨어져 살아야 이렇게 길고 복잡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튼튼한 정신과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각 장의 내용
오키나와
일본 도쿄 지하철에서 독가스를 터뜨려 많은 사람을 죽인 테러리스트가 오키나와에 피신해 있다. 그는 ‘우연을 지배하는 자’라고 불리는 교주를 모시는 종교 집단 소속으로, 사건을 일으킨 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위장해 일본의 시골을 떠돌며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애써 교주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종교 집단은 점차 와해되어간다.
도쿄
일본 도쿄의 재즈 레코드 전문 숍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고아 청년 사토루. 이천만 명이 넘게 살고 있는 이 소란스러운 도시에서 그는 문란한 성적 분위기에는 초연한 가운데 음악과 더불어 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무얼 해야 할지도 확실히 정하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코드숍에 한 소녀가 나타나고, 사토루는 묘한 설렘을 느낀다.
홍콩
홍콩의 다국적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영국인 변호사 닐. 그는 상관의 지시를 받아 뭔가 비밀스러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과거 살육의 역사를 지닌 땅 위에 지어진 아파트에 살면서 그는 유령 여자아이에게 시달리고, 이 때문에 결국 아내와도 별거에 들어간다. 중요한 고객을 위한 브리핑을 앞두고 그는 회사동료의 독촉 전화를 받으면서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산길을 헤매기 시작한다.
성산
중국의 신화적인 산 가운데 하나인 성산(聖山) 기슭에서 오래된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여인의 일생이 중국의 가혹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역사와 맞물리면서 애틋하게 펼쳐진다. 신해혁명부터 현대 중국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국군, 일본군, 혁명군에게 차례로 집과 몸이 밟고 찢기면서도 삶에 대한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여인. 이 여인의 가슴속엔 평생 헤어져 살아야 했던 딸에 대한 모정이 강하게 들끓고 있다.
몽골
몽골 전역을 여행하는 한 영혼(혹은 유령)의 이야기. 중국 성산에서 한 백인 남자의 정신 속에 깃들어 몽골에 건너온 이 영혼은 자신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 이 영혼은 접촉을 통해 다른 숙주에게로 옮겨가는 기생생물처럼 살면서 여러 명의 흥미로운 숙주들을 조종해 자신의 기원을 밝혀줄 아름다운 전설의 근원을 찾아간다.
페테르부르크
마르가리타 라툰스키는 페테르부르크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실을 지키는 러시아 여성이다. 그녀는 한때 쟁쟁한 권력자의 정부로 화려한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젊은 남자에게 이용당하며 왕년의 영국 스파이까지 낀 미술품 절도단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훔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 지긋지긋한 페테르부르크를 떠나 스위스로 날아갈 꿈을 꾸지만, 일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된다.
런던
록 밴드 ‘우연의 음악’의 드러머이자, 대필작가로 일하는 마르코. 그는 무절제한 삶을 살고, 돈도 몹시 쪼들리는 구제불능 바람둥이이다. 심지어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저당 잡힌 드럼 세트를 잃을 판이다. 그런 그가 부유한 친구들의 놀이에 끼여 카지노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우연과 운명의 전쟁을 겪게 된다. 그 소용돌이가 끝나고 그는 문득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청혼을 한다.
클리어 아일랜드
스위스의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기술 연구소에서 일하는 중년의 여성 핵물리학자 모 문터베리. 그녀는 자신의 연구가 대량 살상 무기를 제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연구소에서 홀연히 사라진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도피생활을 하던 모는 자신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섬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가족, 그리고 가족 같은 마을 사람들은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그녀가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떻게든 그녀를 지키려 한다.
나이트 트레인
미국 뉴욕의 수많은 군소 라디오 방송 가운데 하나인 심야 프로그램 나이트 트레인의 디제이 배트 세군도는 독특하고 기발한 유머와 진행으로 꽤 많은 청취자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청취자와의 전화 연결이 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하는데, 어느 날 스스로를 ‘동물원 사육사’라고 칭하는 한 존재가 전화를 걸어온다. ‘동물원 사육사’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해대는데, 청취자와 매스컴은 그의 정체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위기 상황이 닥치고, ‘동물원 사육사’가 지구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 어떤 새로움보다도 새롭다, 윤리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게다가 긍정적인 유머!
_ A. S. 바이어트(소설가)
빛나는 상상력이 넘실거리는 새로운 세계, 아름다운 묘사 그 이상의 글쓰기를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
_ USA 투데이
데이비드 미첼은 소설 고유의 즐거움을 창조해낼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이다. _ 뉴욕 타임스
신화, 스릴러, 공상과학, 로맨스의 환상적인 믹스와 강렬한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특출한 야심작.
_ 인디펜던트
데이비드 미첼 David Mitchell
1969년 영국에서 태어나 켄트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비교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시칠리아에서 일 년을 거주하다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가 팔 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는 등 세계 각국을 떠돌다 영국으로 돌아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99년 첫 소설 『유령이 쓴 책』을 발표하며 데뷔한 미첼은 이 작품으로 단숨에 영미 문단과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이 소설은 그해 35세 이하의 영국 작가가 쓴 최고 작품에 주어지는 ‘존 루엘린 라이스 상’을 수상했으며, 가디언 신인 작가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데이비드 미첼은 고전적인 스릴러와 유령 이야기, 공상과학 소설과 우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대담하고 도전적인 형식 안에 비극과 희극을 절묘하게 녹여내고 있다. 감정적 깊이와 문학적 야망에서는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연상시킨다는 찬사와 더불어 그는 유려하고 격조 높은 작품을 선보이며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지닌 천재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에는 <그랜타>가 선정한 ‘영국 최고의 젊은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타임>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또한 그는 『넘버 나인 드림』(2001), 『클라우드 아틀라스』(2004), 『블랙 스완 그린』(2006)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맨 부커 상 등 각종 문학상 후보에 올리며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미첼은 현재 일본인 아내 게이코, 그리고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아일랜드에서 살고 있다.
옮긴이 최용준
서울대 천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시건 대학에서 이온추진 엔진 분야에 대한 연구로 비(飛)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콜로라도 볼더에서 이온추진 엔진 및 저온 플라스마 현상을 연구한다. 옮긴 책으로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둠즈데이 북』 『마지막 기회』 『바람의 열두 방향』 『핑거스미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 있으며, 『이 세상을 다시 만들자』로 제17회 한국 과학기술 도서상 번역 부분을 수상했다. 시공사의 ‘그리폰북스’와 열린책들의 ‘경계 소설 선집’, 샘터사의 ‘외국소설선’을 기획했다.
* 2009년 3월 16일 발행
* ISBN 978-89-546-0769-8 03840
* 140*210 | 688쪽| 각권 15,500원
* 책임편집: 해외문학1팀 이현자(031-955-8859, raintree@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