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국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현대문학의 고전,
퓰리처상 수상 작가 이디스 워턴의 대표작!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 작가 이디스 워턴의 대표작 『여름』이 출간되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활약한 이디스 워턴은 미국 문학사에서 본격적인 의미의 최초의 여성 작가이기도 하다. 『여름』은 흔히 『겨울』과 함께 워턴의 작품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소설로 평가받는다. 무려 서른한 권에 이르는 많은 소설을 썼지만 그녀는 이 두 작품만으로도 미국 문학사에 지울 수 없는 획을 긋는다. 뉴욕의 상류사회를 다룬 『환락의 집』이나 퓰리처상 수상작인 『순수의 시대』보다 뉴잉글랜드 시골 마을을 다룬 『여름』과 『겨울』이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워턴은 『여름』을 자신이 쓴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고, 어느 작품보다도 이 작품을 쓰면서 상당한 희열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쓰다가 중단하기를 수천 번, 그리고 비참한 세계대전에 내 여생을 바치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창작의 희열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이 작품을 썼다. 내 기억으로는 등장인물들의 내면 풍경이나 성격을 이보다 더 강렬하게 그려본 적이 없다 _이디스 워턴
이렇듯 워턴이 『여름』을 쓰면서 희열을 맛본 것은 아마 이 작품과 작가의 개인적 삶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겨울』 못지않게 작가가 걸어온 고단한 삶의 궤적을 읽을 수 있다.
이디스 워턴이 『여름』(1917)을 쓴 것은 1916년, 그녀가 쉰네 살 때였다. 이때 그녀는 남편 에드워드와 이혼한 후 제2의 고국이나 다름없는 프랑스 파리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1916년이라면 인류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이다. 미국 뉴잉글랜드의 한적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여름』은 언뜻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는 동떨어져 있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더 꼼꼼히 살펴보면 이 작품에서도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작중인물들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과 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워턴은 유럽을 잿더미로 만들다시피 한 1차 세계대전을 평화스럽기 그지없는 뉴잉글랜드의 시골 마을에 옮겨놓은 셈이다.
『여름』은 사회적 인습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유의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고 애쓰는 채리티 로열이라는 젊은 여성의 정신적 투쟁을 그린다. 유독 성장소설이 많은 미국 문학사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시기적으로도 본격 여성 성장소설로 불리는 『앵무새 죽이기』보다 빠르고, 정신적 성장의 필수요소인 여성의 성적(性的) 열정을 최초로 다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의는 주목할 만하다. 이 소설은 오늘날 『겨울』과 함께 미국 문학사에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저는 로열 씨와 결혼했습니다. 언제나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
생의 열기로 뜨거웠던 한여름 소나기 같은 사랑!
“모든 게 지긋지긋해!” 질식할 정도로 지루한 작은 마을 노스도머. 바람마저 잘 통하지 않는 도서관의 사서 채리티는 하루라도 빨리 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한다. 그녀는 네 살 때, 변호사 로열 씨가 ‘산에서 데려온 아이’였다. 그녀는 사람들 말대로 그곳이 더러운 곳이며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6월의 어느 날 오후, 어느 날 젊은 건축가 루시어스 하니가 뉴잉글랜드 시골 지방의 옛 건축양식을 조사하기 위해 노스도머에 들른다.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리티는 남모를 연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무렵 채리티는 자신의 후견인 로열 씨에게 프러포즈를 받고 그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이제 하니 생각으로 꽉 차 있다. 로열 씨는 슬그머니 하니에게 채리티가 산 출신임을 흘리지만, 하니는 채리티의 출신을 오히려 반가워한다. 사랑이란 언제나 혼란스럽고 비밀스러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온 그녀에게, 그는 사랑을 여름 공기처럼 밝고 싱그러운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채리티는 술에 취한 로열 씨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고 충격에 휩싸인다. 노스도머에서의 조사를 모두 끝낸 하니는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뉴욕으로 떠나지만, 그가 그곳에서 보낸 편지 속에는 언제 다시 돌아가겠다는 약속이 없다. 게다가 하니가 다른 여자와 곧 결혼할 거라는 소문마저 퍼지자, 채리티는 하니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쓴다.
만약 당신이 애너벨 밸치와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면, 그녀와 결혼했으면 합니다. 당신은 그 일로 제가 몹시 가슴 아파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군요. 오히려 저는 당신이 옳게 행동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43쪽)
채리티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고 있지만, 하니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그녀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산이라는, 어쩔 수 없는 도피처를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한다. 산에 오르는 도중에 채리티는 산(山)사람과 목사를 우연히 만나 자신의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고,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도착했을 때 이미 그녀의 어머니는 도랑에 버려진 죽은 개처럼 처참히 죽어 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산속 농부들의 비참한 모습을 목격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여기서 살았다면 넝마를 걸친 채 야생마들처럼 돌아다니는 이곳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가 그랬듯 로열 씨처럼 점잖은 사람에게 그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때 마침 로열 씨가 목사로부터 소식을 듣고 그녀를 데리러 산에 올라온다.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온 로열 씨는 집에 데리고 가 편히 보살펴주는 것이야말로 채리티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채리티는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응한다. 그리고 하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저는 로열 씨와 결혼했습니다. 언제나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 (316쪽)
초여름에서 가을로 전개되는 한 젊은 영혼의 성장기
로열 변호사와 결혼함으로써 채리티는 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제 성년을 맞이한다. 그녀의 나이가 열여덟 살이라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열여덟 살부터 법적으로 성인으로 간주한다. 채리티는 법적으로 성년이 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년이 된다. 작품 첫머리에서 처음 만나는 채리티와 작품 끝 장면에서 만나는 그녀 사이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그녀가 하는 첫마디가 입버릇처럼 자주 되뇌는 “모든 게 지긋지긋해!”라면, 맨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아저씨도 훌륭하세요”이다. 모든 일에 불평하면서 짜증스러워하던 태도가 어느덧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로 바뀐 것이다.
이디스 워턴이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을 늦봄에서 시작하여 한여름을 거쳐 초가을로 삼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계절의 순환은 지리적 배경 못지않게 자못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봄은 온갖 생명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고, 한여름이 무럭무럭 생장하여 활짝 꽃을 피우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결실을 맺고 조락하는 계절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마찬가지여서 채리티는 가을에 이르러서 비로소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여름 동안 루시어스 하니를 사랑하고 이별의 고통과 절망을 겪었기 때문에 더욱더 성숙한 인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절망을 느끼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없듯이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않고 참다운 사랑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디스 워턴 소설의 문학적 쌍둥이, 『여름』과 『겨울』
『여름』과 『겨울』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젊은이가 꿈과 이상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시골에 남아 좌절을 겪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겨울』에서 이선 프롬은 그가 원하던 엔지니어나 화학자가 될 만큼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의 힘은 그 꿈과 이상을 실천에 옮기기에는 너무 가혹했다. 그는 결국 외부적 힘이라는 덫에 걸린 채 ‘낡은 폐선’처럼 살아간다. 이러한 사정은 『여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채리티 로열은 질식할 것 같은 노스도머에서 벗어나 좀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사회적 제약과 타고난 성격 탓으로 그 꿈을 펼치지 못한다. 그녀는 도서관 사서로서 받는 몇 푼 안 되는 월급을 모아 도시로 나가고 싶어하지만, 그 계획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가 하면 두 작품 모두에 낯선 이방인이 나타나 그곳의 과거에 적잖이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도 비슷하다. 『겨울』에서는 코베리정션에 있는 발전소 일로 파견 나온 한 엔지니어가 목수들의 파업으로 일이 지연되자 스탁필드에 머물면서 이선 프롬과 관련된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일인칭 화자 ‘나’는 이 작품의 화자이면서 동시에 작중인물로 등장한다. 한편 『여름』에서는 루시어스 하니가 뉴잉글랜드 시골 지방의 옛 건축양식을 조사하기 위해 노스도머에 들른다.
이 밖에도 이 두 작품에는 젊은 여성의 사랑을 가로막거나 위협하는 나이 많은 여성이 등장한다. 『겨울』에서는 지노비어가, 『여름』에서는 네틀턴의 산부인과 의사 머클이 그 역할을 맡는다. 또한 『여름』에서는 작가가 앞 작품에서 중심 배경으로 삼고 있는 스탁필드를 언급하기도 한다. 문학 전통에서 자연주의 색채가 짙다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문학적 쌍둥이라고 할 만하다.
쓰다가 중단하기를 수천 번, 그리고 비참한 세계대전에 내 여생을 바치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창작의 희열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이 작품을 썼다. 내 기억으로는 등장인물들의 내면 풍경이나 성격을 이보다 더 강렬하게 그려본 적이 없다. _이디스 워턴
워턴이 선사하는 사랑의 언어는 아름답고, 감각적이고, 첫사랑의 열기로 가득 차 있을 정도로 특별하다. 달콤 쌉사래하고 화려한, 결코 잊히지 않을 마법 같은 책이다. _아마존 독자
‘정전(正典’)의 반열에 올라 있는 미국 소설 중에서 워턴의 『여름』은 나이가 어리거나 젊은 여성이 겪는 ‘영혼의 개안’을 다룬 최초의 성장소설로 볼 수 있다. _「옮긴이의 말」에서
▶ 이디스 워턴Edith Wharton 1862년 유서 깊은 전통을 지닌 뉴욕의 상류층 가문에서 태어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교에 다니는 대신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문학, 철학, 과학, 종교 서적 등을 탐독했고, 1878년 첫 시집을 출간했다. 1885년 스물세 살에 에드워드 로빈스 워턴과 결혼한 이후, 불행한 결혼 생활과 작가적 야심 사이에서 갈등하다 심각한 신경쇠약을 앓았다. 의사로부터 좀더 진지하게 소설을 써보라는 권고를 받고 작품 집필에 전념, <스크리브너스> 지를 비롯한 여러 잡지에 시와 단편소설을 꾸준히 발표하던 중 장편소설 『환락의 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작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헨리 제임스, 싱클레어 루이스, 앙드레 지드, 장 콕토 같은 작가들과 교류하며 예술적 자양분을 주고받았고, 1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에서 전쟁 구호활동을 펼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21년 장편소설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평생 장편소설, 단편소설, 시, 에세이, 여행기, 자서전 등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고, 병상에서까지 글을 썼다. 1937년 75세로 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주요 작품으로 『여름』 『겨울』 『순수의 시대』 『그 지방의 풍습』 등이 있다.
▶ 김욱동 한국외대 영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미시시피 대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뉴욕 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외대 통번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 『앵무새 죽이기』 『호밀밭의 파수꾼』 『주홍 글자』 등 20여 권이 있고, 저서로 『포스트모더니즘』 『은유와 환유』 『번역인가 반역인가』 등 30여 권이 있다.
. 초판발행 | 2009년 3월 30일
. 128*188(양장) | 364쪽 | 값 13,000원
. ISBN 978-89-546-0763-6 03840
. 책임편집 강건모 (031-955-2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