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고 웅숭깊은 문장, 뛰어난 직관과 안목으로 포착한 삶의 편린들을 빛나는 결정체로 빚어내는 작가 이현수의 두번째 소설집 『장미나무 식기장』이 출간되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지 18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도 12년 만에 두번째 소설집, 두 권의 장편소설을 포함, 네번째 책이면 결코 빠르다고는 할 수 없는 걸음걸이다.
어쩌면 이현수의 문장들은―그리고 작품들은―그 더디지만 힘있는 걸음걸음이 보여주는 것처럼, 오랜 세월을 같이해 한 가족의 소소하지만 빛나는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낡은 가구를 닮아 있다. 보는 이를 한눈에 유혹하는 화려한 꾸밈도, 요모조모 쓸모 있는 최신식 기능성도 갖추지 못하고 있지만, 언제나 집안의 어느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사를 갈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꼭꼭 챙겨가야 하는, 끝내 처분해야 할 때는 차마 버리지 못해 불태워버려야 하는……
식기장을 열 때마다 텁텁하고 쌉싸래한 감나무숲의 냄새가 난다. 이 식기장이 있는 한, 불에 타 없어진 책상과 함께 우리가 거쳐온 여러 집들과 그 집에 얽힌 역사와 소소한 일들을 나는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번개가 치듯 찰나에 스러지고 마는 생의 한순간을 오롯이 기억하자면 그들도 대책없이 큰 책상이나 수퉁스런 장미나무 식기장 하나쯤은 가져야 하는 것이다. 떠나온 집이 나를 짓고, 장마재 출신의 책상이 아버지를 짓고,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지은 그 집들이 전부 불에 타기 전에. _「장미나무 식기장」 중에서
단단하게 오래 벼리고 다듬어져 군더더기가 없는 그의 문장은 그래서 더욱 힘을 발한다.
오늘 산 여자는 닭살 피부였다. 옷을 벗겨보니 생각보다 훨씬 오돌토돌했다. 드물게도 운이 좋은 날이었다. (……) 그는 자신이 만진 것들은 무엇 하나 잊지 않고 낱낱이 기억한다. 그의 손등과 손바닥은 아득한 시간의 저편, 음습하고 소소한 기억의 작은 편린조차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_「녹」 중에서
감자탕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니 혼자 끓였다. 살점을 발라낸 돼지등뼈를 뭉툭한 식칼로 내리칠 때, 허공에 떠 있던 어머니의 눈동자도 그때만은 제자리에 박혀 푸르스름한 빛을 냈다. (……) 고백건대 추풍령 엄마가 감자탕 끓이는 걸 몰래 숨어서 훔쳐본 적도 있었다. 어머니가 별안간 저고리 섶을 헤치고 뭉툭한 식칼로 자신의 가슴 한쪽을 쓰윽 도려내는 것은 아닐까, 핏물이 뚝뚝 듣는 가슴살을 감자탕 속에 집어넣고 같이 끓이는 건 아닐까, 아니면 마지막 남은 해가 하혈을 하듯 서산이 온통 핏빛으로 낭자하게 물들 때쯤 갑자기 어머니가 가랑이를 벌리고 솥 안에 아기를 낳는 건 아닐까, (……) _「추풍령」 중에서
이런 문장들 앞에서, 우리는 그저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장식된 것도, 또한 정색을 하고 도려낸 경제적인 문장들도 아닌, 그저 읽는 순간에 마음에 들어와 박히는 그 문장들로, 그의 소설은 독자들의 마음속 한켠에 단단하고 오래된, 쉽게 버릴 수 없는 낡은 가구가 되어 들어앉고야 만다.
‘모성’과는 다른 이름의 어머니들
이번 작품집에서 작가는 호주제, 부동산 투기, 기러기 아빠, 종갓집 종부, 이웃과의 소통 부재 등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인물들의 삶 속에 담아낸다. 그러면서도 인물들 개개인의 삶 자체를 들여다보는 데 소홀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빛을 발하는 존재들은 주변의 다른 인물들을 압도하는 ‘어머니’들이다.
이번 작품집에는 ‘모성’이라는 단어에서 풍겨나오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있는 어머니들이 등장한다. 이 어머니들은 딸을 집안 식구들 속에 버려둔 채 추풍령고개를 넘어 석 달이고 반년이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유령처럼 떠돌면서도 탈이 난 사람과 음식을 바로잡고 큰일을 앞둔 집에서는 화려한 솜씨를 펼치며(「추풍령」), 서방 잡아먹었다는 사람들의 말에 아랑곳없이 손해와 이익의 오차가 집 한 채 값인 장사를 동물적 감각으로 운영하며 사람들을 부리는 헌헌 여장부로 살고(「장미나무 식기장」), 고향과 가정을 등지고 미제 물건 장수나 어음할인 등 안 해본 일 없이 살다 나중에는 치고 빠지는 데 선수인 주식의 귀재 ‘개봉동 빠가사리’로 이름을 날리고(「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 들이지 마라」), 미국에서 아이 둘을 건사하며 기러기 아빠로 한국에 혼자 있는 남편이 어설프게 바람 한번 피운 후에 가정부터 깨자고 나올까봐 걱정한다(「태중의 기억」).
하지만 이들은 남편이 만든 애물단지 책상에 그토록 눈을 흘기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하다 그것이 불에 타는 것을 보며 목놓아 울고(「장미나무 식기장」), 평소에는 아무런 왕래가 없다가도 딸애가 입원을 하면 병원에 나타나 딸을 키워준 계모에게 허리를 깊이 숙이며(「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 들이지 마라」), 미국에 들렀다 혼자 다시 한국으로 떠나는 남편 앞에서 섧게 우는(「태중의 기억」)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렇게 작가는 ‘어머니’라는 존재의 모범답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한 식구는 물론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도 어떤 것 앞에서는 더없이 약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 이들을 통해, 작가는 ‘어머니’에게서 ‘모성’의 굴레를 벗겨내고 그들 각자에게 영혼의 자존을 찾아주고 있는 것이다.
*
「녹」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포장 전문 학예사다. 그는 손으로 만진 것들을 무엇 하나 잊지 않고 낱낱이 기억한다. 그는 예민한 손을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손등과 손바닥에 팩을 하고, 한 달에 한 번꼴로 여자를 사서 그 몸을 더듬으며 손목, 손등, 손끝, 손가락뼈가 사물의 고유한 촉감을 느끼게 되도록 훈련한다. 유물을 포장하고 있으면 잊고 싶은 기억까지 포장이 되고, 그의 본색은 서서히 사라져 마지막엔 두 손만 하얗게 남는다. 그는 유물을 포장할 적마다 거듭나는 것이다. 그 혹은 전혀 다른 그로.
「추풍령」 나는 과부로 대를 이어온 안동 권씨 집안의 여자 호주다. 우리 집안은 남녀간의 내외는 물론 원색의 옷조차 금지되는 등 한 집안으로, 이 땅에 온전히 발붙이기 위해 엄격한 법도를 지키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머니는 과부 집안의 규율을 서슴없이 깔아뭉개고, 추풍령고개를 넘어 석 달이고 반년이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유령처럼 떠돈다. 그리고 집에 올 때마다 감자탕을 끓여 집집마다 돌린다. 우리집 여자들은 물론 동네 과부들은 모두 감자탕을 알뜰히 긁어 먹고 이튿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절절 끓는 아랫목에서 몸을 지진다. 그러곤 힘 좋은 남자와 한바탕 정사라도 치른 양 노골노골해진 얼굴로 살 풀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추풍령 감자탕’이라고 부른다.
「장미나무 식기장」 어느 나른한 봄날, 나는 고풍스럽고 아름답지만 우리집과 조화를 이루지는 못하는 장미나무 식기장을 줍는다. 이것은 아버지가 결혼 전에 만들었던, 속은 쌀통인 나무책상과 꼭 닮아 있다. 그것은 너무 커서 방 안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마루 귀퉁이나 현관에서 비를 맞고 뒹굴며 쌀통 역할을 하다 물건을 얹어두는 허름한 궤짝으로 전락했다. 아버지의 본가에서 이태를 묵고 결혼 후 살림을 제금날 때도 우리 가족과 함께했던 책상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우리가 귀향할 때도 따라왔다. 귀향한 후 어머니는 내리 다섯 달 동안 잠만 잤다. 그 결과 몸에 엄청나게 살이 오르며 인물도 좋아졌고 목소리도 우렁차게 변했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방 잡아먹고 사람 됐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 들이지 마라」 일주일에 두 번꼴로 들르던 그녀의 정원에 오랜만에 가보게 된 나는, 옆집 여자로부터 그녀의 상을 치른 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녀를 ‘개봉동 빠가사리’라고 불렀다는 사실도 그때서야 알게 된다. 계모이자 후처로 사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해주던 그녀는 벙어리 어머니 밑에서 자라 홀로 서울로 올라온 뒤 미제 물건장수나 어음할인 등 안 해본 일 없이 살아온 사람이었다. 얼마 뒤, 혼자 살기엔 지나치게 컸던 그녀의 삼층집에 새로 사람들이 들어온다. 알고 보니 그들은 독신인 줄 알았던 그녀의 딸과 전 남편. 그녀의 집 밖에서 넘겨다본 그녀의 딸은, 귀를 양쪽에 두 개씩 달고 있었다.
「태중의 기억」 나는 매사에 결정적일 때 한발 빼고 마는 신중함 혹은 열패감과, 아이들과 미국에 간 아내가 혹시나 바람이 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번에도 나는 후배인 박대리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작성한 기획안을 월례회의에 올리지 못한다. 나의 뿌리 깊은 열패감은 순전히 김석모라는 인간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항상 나에게 ‘현저하게 차이나는 이등의 비애’를 맛보게 했던 석모는, 나와 함께 강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얼음구멍 속에 빠진 나를 구하고 대신 구멍 속으로 빨려들었다. 한순간에 내 손을 놓아버리고 하류로 떠내려간 석모의 시신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이등만 했던 한이 골수에 맺힌 내가 석모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고 믿었다.
「남은 해도 되지만 내가 하면 안 되는 것들의 목록」 은영은 여덟 살이나 어린 애인 정호의 집에 인사를 드리러 전주로 내려간다. 천연염색을 한 생활한복과 고무신 차림인 정호의 모습에 어색함을 느낀 것도 잠시, 은영은 민속자료로까지 지정된 정호네 기와집 ‘남유당’의 위용에 기가 죽는다. 정호는 은영에게 동학혁명 당시 증조부가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 지은 남유당의 비리를 까발리고, 그의 형수는 만약 결혼하게 되면 일주일에 한 번은 내려와 종부 노릇을 해야 할 거라고 말한다. 종부로 폼 잡을 수 있는 건 단 십 분이고, 그 십 분의 폼을 위해 평생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은영은 정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난다. 가짜 한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에 이르자 은영은 진짜가 주는 기괴함과 무서움, 숨통을 죄는 듯한 불안함을 떨치고 비로소 안도한다.
「난징의 아침」 한때 잘나가던 표지 디자이너였던 주원은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다 사장과 대판 싸우고 회사에서 나온다. 여름내 쉬고 있던 주원에게, 예전에 같이 일한 적이 있는 편집장이 『난징의 아침』이라는 작품을 주며 표지를 그려보라고 한다. 이것은 주원과 함께 초현실주의 예술인들의 모임 ‘오브제’ 회원이었던 건축가 주상도의 에세이. ‘오브제’ 회원들 중 가장 먼저 사라졌던 그는, 건축 공모전에 뽑힐 정도로 재능이 있으면서도 관계자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며 도저히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건물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지금 책을 통해 ‘제2의 르네상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도 초현실주의가 죽은 것으로 진단되고 포스트모던 경향의 시인들이 나타나 문단을 휩쓸고 있는, ‘오브제’ 회원들조차 모두 그 시절을 잊어버린 지금에 와서.
우리 안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태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희망의 에너지
사라지는 삶 가운데서 문학을 빌어서만 겨우 그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보존하는 일은, 좀 과격한 비교를 하자면, 석굴암 같은 유적을 보존하는 일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왜 그런지 잘 설명하기란 어렵지만, 이현수의 「추풍령」 같은 작품을 읽다보면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된다. _이남호(문학평론가)
이현수의 작품들은 모든 이에게 존재하는 샤먼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모든 이에게 존재하는 초인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동시에 그녀의 소설은 우리를 이 세계 내에서의 초월과 치유의 에너지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장애물의 카탈로그이기도 하다. _정여울(문학평론가)
* 초판발행 | 2009년 6월 25일
* 145*210 | 288쪽 | 값 10,000원
* ISBN 978-89-546-0840-4 03810
* 책임편집 | 조연주 서현아(031-955-8865, 8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