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시대의 근대문학과 근대성
『오빠의 탄생』의 저자 이경훈이 두번째 평론집을 펴냈다. 이번 평론집 또한 식민지시대의 다양한 풍속을 통해 근대문학과 근대성을 고찰한 것으로, 이 책에서 산견되는 문학, 테크놀로지, 세대, 청년, 청춘, 식민지, 타자, 전쟁, 민족, 국가, 국어 등은 모두 근대와 근대성이라는 테마의 변주곡적인 양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평론집은 전작 『오빠의 탄생』을 계승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자료에 근거한 치밀하고 섬세한 분석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번 평론집에서는 논의의 범위와 시각을 보다 확장시키며 이제껏 새로운 경향으로 보여왔던 풍속론적 근대문학연구의 위치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학의 해체적 내부
이번 평론집에서 저자가 중점을 둔 것은 단순히 여러 풍속적 현상의 이면에 작용하는 근대의 이념이나 근대성의 본질이 아니다. 저자는 여러 텍스트들을 통해 발현되는 현실의 모습 그 자체를 강조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텍스트들을 가로지르는 ‘콘텍스트’의 효과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문학작품이나 작가의 삶을 포함하여 그와 연결된 풍속적, 제도적, 문화적 현실도 하나의 텍스트로 취급하는 콘텍스트 작업이 수행된다. 저자에게 ‘풍속’이란 텍스트의 외부에 현존하며 정확히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복잡하고 계속적인 상호작용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콘텍스트 작업이야말로 곧 문학의 해체적 내부를 지속하는 일이다.
“이는 문학작품의 본원적인 타자성을 활성화하여 텍스트를 탈관념화하고 탈중심화하는 일인 동시에, 텍스트의 크고 작은 모든 요소들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활동하게 함으로써 그 외연과 내포를 계속 갱신해내려 하는 근대문학연구자의 특수한 위치와 입장을 고백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제1부에서 근대문학연구의 방법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이는 곧 『오빠의 탄생』이 나온 이후 제기된 풍속문화론적 문학연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대한 저자의 입장이다. 예를 들어 하정일은 “대부분의 풍속론적 연구는 풍속에 방점이 찍힌, 곧 문학작품이 한갓 풍속의 자료로 취급되는 문제점을 동일하게 보여준다”고 비판했고, 천정환은 “『오빠의 탄생』이 문학사에서 인정된 작가의 작품에 치중되어 문학으로 영토화된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 상반된 평가에 대해 저자는 문학의 탈영토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을 결합하거나 어느 한쪽에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더욱 본격적으로 문학사에서 인정된 작가의 작품을 풍속의 자료로 취급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문학적 해석과 기원의 다양한 맥락을 술어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문학=풍속’은 성립되면서 문학의 탈식민, 탈영토화가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을 바탕으로 제2부에서는 이광수와 그의 작품에 대해 논의한 글들을 묶었다. 여기에서는 춘원 이광수의 『창조』 가입을 살펴보면서 근대 문단 형성의 한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춘원의 장편소설 『흙』에 나타난 민족과 국가, 『유정』『사랑』「무명」「육장기」로 귀결되는 춘원의 의학과 생물학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식민지문학에서 등장하는 백수들과 번역문학, 기계와 테크놀로지, 기독교를 통해 근대사회 및 근대문학의 발생과 변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제4부에서는 김이석의 초기 소설과 임영빈의 소설, 그리고 채만식의 장편 『아름다운 새벽』을 통해 식민지시대 말기의 문학과 사상의 문제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대합실의 추억」에서는 대합실을 중심으로 식민지시대의 ‘백수’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근대사회에서는 개인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진보해나가는 것이 중요시되면서 본격적으로 직업생활이 시작된다. 직업을 위한 교육을 받은 자만이 “대합실은 언제든지 「튜-립」처럼 밝고나”라는 김기림의 시처럼 출발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여기서의 대합실은 계획된 미래를 전망하는 문명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대합실은 곧 교육과 직업이다. 그것은 바로 근대소설이다. 하지만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근대사회는 근대적 의미의 무직자도 생산한다. 무직자 또한 근대 시스템의 산물인 것이다. 교육을 받았으나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룸펜들은 딱딱한 대합실 역 의자에서 밤을 새운다. 오장환의 시 「The Last Train」에서처럼 어두운 대합실에는 “청춘의 조각”들이 떨어져내리는 것이다. 대합실에 남은 슬픈 룸펜들은 말 한마디 없이 앉아, “우렁찬 기적 소리”와 “총총한” 여객들 틈에서, 가장 정확한 대합실의 시계를 보며 자신의 근대적 부재를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식민지의 ‘백수’들은 신경(新京)에서 직업을 구하기 위해 대합실을 떠나 기차에 오른다. “아즉도 누귈 기둘”렀던 대합실의 “추억”을 넘어 이들은 만주 열풍을 따라 떠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