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권력, 그 황홀한 얼굴 뒤에 숨겨져 있는
욕망의 실타래를 파헤치는 한 편의 우화.” _존 쿳시
인간은 권력의 부재를 견디지 못한다!
석사 논문으로 쓰인 소설,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러브콜 받고 출간 예정!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작가 커리드웬 도비의 데뷔소설 『함정』이 출간되었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문예창작 석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논문용으로 제출한 이 작품은 2007년 출간 즉시 영미권과 유럽, 아프리카 유수 언론의 극찬을 받았고, 20여 개국에 판권이 팔리는 이변을 낳았다. 또한, 이 작품은 출간 이듬해 35세 이하의 영국 작가가 쓴 최고 작품에 주어지는 존 루엘린 라이스 상 후보에 올랐고, 도비는 영어로 작품을 쓰는 30세 이하 젊은 작가가 수상할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이자 세계에서 가장 상금이 후한 딜런 토머스 상의 최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려, 진정한 ‘엄친딸’의 진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정치적 격변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원죄를 우화적으로 다룬 이 소설은 바르가스 요사, 가르시아 마르케스, 존 쿳시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을 들었다.
누구도 헤어나올 수 없는 위선과 관능의 거미줄이 당신을 옭아맨다!
독재정권이 쿠데타로 전복되고, 대통령과 그의 전속 화가, 이발사, 요리사가 포로로 억류된다. 대통령은 포박당한 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영문도 모른 채 불안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 나머지 세 남자는 곧 새 권력자를 위해 각자의 본업을 재개한다. 한편 그들의 여자들 역시 쿠데타의 여파에 휘말린다. 화가의 아내는 임신한 채로 잡혀와 다른 방에 구금되고, 이발사의 죽은 형의 약혼녀는 이제 쿠데타를 일으킨 지도자(‘두목’)의 아내가 되어 이발사와 재회한다. 요리사의 딸은 어머니의 병원비를 직접 받아내기 위해 반목하던 아버지를 찾아간다. 이전 정권의 잔혹행위가 조금씩 폭로되면서 쿠데타 정권은 조금씩 입지를 굳혀가고 평온한 일상이 되돌아오는 듯하지만, 여름밤의 열기 속에 은밀한 욕망이 하나 둘씩 기지개를 켜고, 또다른 쿠데타가 일어나던 날 그들의 욕망은 치명적인 함정으로 돌변한다. 작가는 위선과 배신으로 얽히고설킨 이들의 관계를 통해 권력과 욕망의 본질과 그것들 앞에 무력한 인간의 한계를 냉소적이고도 지적인 태도로 조명한다.
이 책은 각각의 장을 남자들과 여자들이 1인칭 화자가 되어 번갈아 가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짧은 호흡으로 긴장감 있게 이어가는 독특한 구성은 작품 전체에 폭풍전야 같은 불안함과 전운을 드리우는 역할을 한다. 퍼즐 조각 맞추듯이 이들의 이야기들은 말미에 이르러 하나의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들이 품었던 욕망은 위선과 배신, 쾌락과 관능으로 얼룩진 채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우리는 왜 복종하는가…… 권력과 욕망은 공범이다!
『함정』은 각 인물들의 내밀한 욕망들을 완벽에 가까운 솜씨로 유기적으로 엮어내며, 인간의 권력과 욕망의 상관관계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욕망이 있는 곳에 권력에의 복종이 있으며, 권력이 있는 곳에 욕망이 생겨난다. 그러나 권력과 욕망이 결합하는 순간, 그들에게 남는 것은 환멸뿐이다. 매일같이 권력자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화가는 아내에게 지나친 소유욕과 맹목적인 애정을 품는다. 그러나 영부인의 유혹이 ‘불쌍하게’ 여겨져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고, 단 한 차례 저지른 이 ‘외도’는 그에게 아내를 향한 엄청난 죄의식을 안겨주고 인생의 족쇄로 작용한다. 그후 그의 아내에 대한 집착은 더욱 병적으로 흐른다. 이발사는 반정부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형의 복수를 위해 대통령의 이발사가 되는 데 성공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의 목을 벨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살고자 하는 욕망에 발목이 잡혀 끝내 대통령을 죽이지 못하고 죄책감에 하루하루 고통받으며 살아간다. 젊은 시절, 잠자리를 함께한 여자들의 사진으로 앨범을 만들 정도로 육욕적이었던 요리사는 이제 늙고 쇠약해져서 권력자의 식사를 전담하여 그의 식성을 좌지우지하고 주방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는 데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두목의 아내를 만난 후 그녀에게 이루지 못할 욕망을 품게 되고, 권력과 욕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작한다.
자신의 육체가, 몸뚱이의 그것들이 힘을 잃고 나면 늙은 남자가 목에 힘주기 위해 기댈 수 있는 것이 권력(또는 하다못해 권력과 가깝게 지내는 것) 외에 뭐가 있을까. 알다시피 권력과 욕망은 쉽게 붙는 놈들이다. _본문 87쪽
여자들 역시 자신의 욕망에 따라 권력에 굴복한다. 화가의 아내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남편을 철저하게 경멸하며 쾌감을 느끼고, 자신을 흠모하며 쳐다보는 대통령의 앞에서 립스틱을 고쳐 바른다. 그리고 남편이 영부인의 권력에 굴복하던 날 밤, 그녀 역시 남편을 배신한다. 이발사의 죽은 형의 약혼녀이자 두목의 아내는 권력을 잡은 뒤 돌변한 남편에 대해 혐오를 느끼던 중 죽은 약혼자를 꼭 빼다 박은 이발사를 만나게 되면서 치명적인 욕망에 휩싸인다. 그러나 요리사가 자신에게 욕망을 품는 것에도 쾌락을 느끼고, 남편을 혐오하면서도 자신을 보호해줄 방패로서 그에게 의존을 하는 등 남자라는 존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통령의 아들의 연인인 요리사의 딸은 복잡한 여자관계로 가정을 등한시하여 엄마를 미쳐버리게 한 아버지에게 강렬한 반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외모뿐만 아니라 성도착적인 욕망임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언제나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되며 그의 권력 앞에 기꺼이 순종한다. 권력에 대한 이들의 절대 복종은 각자의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나름의 무게중심이 잡혀 있던 이들의 욕망은 권력의 주체가 바뀌는 순간 추악하고 비틀린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나의 약혼자는 같이 가고 싶어했다. 쓰레기장에는 혼자 있는 여자를 노리는 깡패들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것은 꼭 필요한, 내가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위험이었다. 나는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해서 내 것으로 만든다는 데서만 즐거움을 느낀 게 아니었다. _본문 126쪽
아랫배가 묘하게 간지럽고, 초조하게 두근거리고,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아들은 입을 내 목에 갖다 대고 천천히 물기 시작했다. 이빨로 점점 더 세게 물어서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한 손을 내 가랑이 사이에 넣고 눈으로는 창문 너머로 움직이는 육체를 좇으면서, 다른 손의 손톱으로 내 무릎에 난 상처를 헤집었다. 내가 열심히 귀를 종긋 세웠다면, 방 안에 있는 여자가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의 회복력이 자랑스러웠고, 나의 아픔을 그가 원한다는 것도 자랑스러웠다. 기분이 좋았다. _본문 201쪽
비대칭의 아름다움, 권력과 욕망
이 책에서 또한 흥미로운 점은 사회적 대의를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성공을 거둔 새로운 지도자(‘두목’)가 권력을 맛보게 되자 그의 이상이 점점 변질되어가는 모습이다. 작가는 두목이 부르짖는 ‘사회 정의 구현’이 단순히 개인의 욕망을 구현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리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권력의 함정과 모순을 지극히 세련되고도 문학적인 방식으로 묘사해낸다.
두목은 그 옆에 명랑하게 앉는다. 처음으로, 두목의 아름다움이 비대칭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의 얼굴은 반반씩 나누어 별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의 옆얼굴은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괴담에 나오는, 얼굴이 반으로 나뉜 유령들처럼. _본문 105쪽
처음 대통령을 봤을 때, 남편의 미래의 모습(그가 노인이 됐을 때)을 보는 듯했다. 광포한 눈매의 탐욕스러운 호색한. 처음엔 남편의 열성적인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쿠데타가 일어나고 몇 달이 흐른 지금은 그가 무엇에 열중하는지 주의해야 했음을 알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권력과 마찬가지로 본래 그의 것이 아니었다. _본문 193쪽
권력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인간의 본성과 원죄
작가는 하버드대 <크림슨> 지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의 결말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언 매큐언은 허무주의는 젊은이의 특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되려 인간의 욕망이 권력과 결합하여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권력의 변화 앞에서 인간의 적응력은 얼마나 탁월한지 여실히 드러내 보이며, 작가가 결말에 장치해놓은 반전은 인간 본성에 대한 심한 실망감과 좌절마저 맛보게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야 독자들은 작가가 곳곳에 심어놓은 절묘한 암시와 복선들을 알아채고, 그리고 각 인물 간 관계와 서사의 탄탄한 유기적 구조에 탄복하게 된다. 촌철살인적인 마지막 문장은 이 작품의 본질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양심의 가책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서는, 후회란 좀처럼 오래가지 않는다.” 분명, 『함정』은 또 하나의 천재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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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권력, 그 황홀한 얼굴 뒤에 숨겨져 있는 욕망의 실타래를 파헤치는 한 편의 우화. 존 쿳시(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치밀하고 가차 없는 그녀의 ‘권위’에 절대 존경을 표할 수밖에 없다. 선데이 뉴욕 타임스
최면을 거는 듯한 나른한 문체로 먹이 위를 맴도 는 굶주린 독수리 떼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가디언
이 책은 20세기 후반 정치적 함의를 담은 영문학 작품들의 계보를 확장시킨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LA 타임스
조지 오웰 식 기교와 여흥이 공존하는 수작. 선데이 비즈니스 포스트
지은이 커리드웬 도비 Ceridwen Dovey
198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독특한 이름은 문학비평가인 부모가 웨일스 작가 리처드 루엘린의 소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1939)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런던에서 일 년간 파트타임으로 일한 뒤, 1999년 장학금을 받고 미국 하버드대에 진학하여 인류학과 시각환경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 도비는 다큐멘터리 촬영에 심취했는데,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와인 농장 분배 정책에 관한 다큐멘터리 <여운 Aftertaste>(www.der.org)을 찍어 졸업 논문으로 제출하기도 했다. <여운>은 전 세계 민족학 필름 페스티벌에서 상영되고 있다. 졸업 후 뉴욕의 방송국에서 일 년간 리서치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돌아와 케이프타운대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대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녀의 데뷔작인 『함정』은 석사 논문 제출용으로 쓰인 것이나,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스웨덴, 호주, 터키 등 약 이십 개국에 판권이 팔리는 이변을 일으켰다. 정치적 격변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원죄를 우화적으로 다룬 이 소설은 바르가스 요사, 가르시아 마르케스, 존 쿳시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을 듣는다.
* 저자 웹사이트 www.ceridwendovey.com
옮긴이 엄일녀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출판기획 및 잡지편집을 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 2009년 7월 30일 발행
* ISBN 978-89-546-0855-8 03840
* 140*205(무선) | 240쪽 | 10,000원
* 담당편집: 해외문학 1팀 김진경(031-955-2652 moonriver6@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