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사건,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 속에 철학의 씨앗이 들어 있다. 철학의 씨앗은 질문으로 비로소 싹이 튼다. 우리의 주인공 마로는 (만)6살. 궁금한 것과 하고 싶은 말은 절대 못 참는 호기심 대장에 묻기 대장이다.
마로에게 뜻밖의 질문을 받은 마로의 엄마와 아빠는 여러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해 주지만, 마로는 늘 요리조리 피한다. 그러나 마로의 창에 날아드는 생각의 새 필로는, 잘 만들어진 대답 대신 질문을 던진다. 필로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마로는 나름의 논리를 세워 가고, 그러면서 자신의 말과 생각이 가진 모순과 무지를 깨닫는다. 질문의 고수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나누던 바로 그 대화법이다. 마로와 필로의 대화를 읽다 보면 아이들도 자신의 경험을 대입시켜 자신의 언어로 문제를 사고하는 철학 연습이 될 것이다.
맘대로 하는 어른이 마냥 부러운 아이들
아이들은 어른이 부럽다. 아이가 보기에 어른은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처럼 학교에도 안 가고, 늦게까지 텔레비전도 맘대로 보고, 친구도 맘대로 만나고, 사고 싶은 건 누구 허락 없이 살 수 있다. 그런데 아이가 뭐라도 할라치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다.
마로도 마찬가지. 친구를 만나러 여행 가는 엄마처럼, 마로도 기차를 타고 전학 간 친구를 찾아가고 싶은데, 다들 “안 돼.”라고 말한다. 야속한 식구들의 반응에 마로의 불만은 터지고 만다. “맘대로 친구네서 잘 수도 없고, 핸드폰도 가질 수도 없고, 늦게까지 놀지도 못 해. 나도 내 맘대로 하고 싶어!”
“내 맘대로 하고 싶어!”에 깃든 아이의 ‘크려는 힘’
‘내 맘대로 하고 싶다’는 말은 아이를 키우면서 노상 듣는 소리다. 그런데 이것을 철부지 아이의 ‘생떼’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 안에 있는 ‘크려는 힘’이 고개를 들며 내는 소리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사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들 안에서 움트는 이 ‘크려는 힘’을 잘 살피고, 아이 몸과 마음의 성장에 맞춰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어려운 과제를 주면서, 아이의 크려는 힘을 도와주고 응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마로가 혼자 기차를 타고 멀리 가는 것은 아직 마로의 몸과 마음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로에게 엄마 아빠는, 기차 여행을 할 때 어떤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 어떤 위험을 만나게 될지 다 알 만큼 크면 혼자라도 멀리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알고 책임질 수 있을 때 날개를 다는 자유
하지만 이미 심술이 난 마로에게 이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자기 방으로 돌아와 생각의 새 필로와 이야기하면서 마로는 다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필로는 마로가 더 어렸을 적, 수영도 할 줄 모르면서 튜브를 벗겠다고 떼를 쓰다 위험했던 때를 상기시킨다.
마로는 다시 생각한다. 만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알 수 없다면,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면, 나는 정말 그 일을 하고 싶다고 해도 되는 걸까? 비로소 마로는 왜 아이가 어른처럼 맘대로 못 하는 게 많은지 깨닫는다. 아이는 자기가 한 일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이다.
“내 맘대로 하고 싶어!”를 외치는 아이에게 “지금은 안 돼!”라고 말하기 전에, 철학그림책을 함께 읽으면서, 아이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주면 어떨까.
단, 한 가지 주의할 점,
크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고 말해 주는 동시에, 어른도 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도 알려 주자. 어른이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갖지 않도록 말이다. 마로의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무엇을 할 때는,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는가, 내 몸과 상황이 허락하는가, 또 그 일의 결과를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의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