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 소설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생의 불가항력에 직면한 인물들. 각각의 소설에서 이 키워드는 빠지지 않고 소설 안에 안착하는데, 이런 키워드는 인물들의 삶이 본래적인 요소들에 패배하고 비껴 서는 순간 작동되고 분화한다.
가령,「대설주의보」에서는 연인인 남녀주인공들이 허탈한 오해와 얄궂은 상황 탓에 헤어지게 된다. 그러기에 그 둘의 삶은 마땅히 갔어야 할 길을 놔두고 어긋난 길로 탈선한다. 허망한 시간을 등 뒤로 둘의 관계는 드문드문 이어지는데, 불행한 결혼생활의 와중에 여자는 자살을 결심하고 이를 알게 된 남자가 어떤 빗장을 풀고 대설주의보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만나러 백담사로 달려간다. 20분 거리면 충분할 거리를 대설주의보 때문에 두 시간에 걸쳐 가야 한다고 투덜거리는 택시기사의 말 속에서, 우리들은 그 인연의 끈을 억누른 세월의 무게 때문에 주인공들이 12년 동안 헤맨 뒤에야 비로소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는 아픈 진리를 깨닫게 된다.
또한 「보리」의 연인은 해마다 청명(淸明)이 되면 지방 어느 온천에서 만난다. 그렇게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각자 집으로 향한다. 그러기를 횟수로 6년. 올해는 여인이 먼저 그곳에 내려와 남자를 기다리며 소설은 시작된다. 그녀는 얼마 전 유방암 선고를 받았고 이 불행한 인연의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난세월을 돌이킨다. 그런 그녀는 자기의 생을 남자에게 의탁해보려 하지만 남자는 평범한 가장이요, 어느 가족의 아비로서의 현실적인 삶에 안착하려는 중이었다. 그런 남자를 보며 그녀는 자신의 병듦과 더불어 이 인연의 끈을 놓고자 결심한다. 그 결심을 실천하기까지는 칼로 병든 가슴을 도려내는 일만큼의 안간힘이 필요했던 것. 그녀는 복숭아나무 아래에 관처럼 몸을 누이는 슬픈 제의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인연의 끈을 놓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생의 불가항력에 가로놓인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운명의 고리를 순환하지만 도중에 생의 고통과 휘둘림 끝에 가야만 했던 제자리에 도착한다. 말하자면 원래 있어야 하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인간의 여정인 것인데, 그렇다고 그런 여정만을 소설은 가리키진 않는다. 오랜 헤맴 끝에 다시 만난 연인과 뒤틀린 연의 끈을 옷고름 풀리듯 풀려는 의지를 통해 소설의 의미는 생의 불가항력에 시달린 삶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삶은 끝내 숭고한 일이라는 식의 안도감을 전해주고 있다. 마치 대설주의보를 뚫고 백담사로 올라가는 남자의 의지처럼 혹은 자해를 하고자 복숭아나무 아래 누워 달콤쌉싸래한 보리 내음을 맡고 생의 숭고함을 느끼는 여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