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은 시에 가까울 정도로 미려한 문장과 고유의 감수성, 생생한 질감의 이미지 전달로 문학계의 “인상주의 화가”(김화영)라는 별칭을 얻었다. 특히 단편소설의 미학적 정점에 이르렀다는 평을 들어왔는데, 이번에 재간된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의 경우 단편보다 더 아름다운 장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시원에 대한 회귀라는 작가의 일관된 주제 역시 포함되어 있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서사가 힘차며 배경인 제주가 다채로운 농도로 그려졌다.
제주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 평생을 바친 사진작가 故김영갑의 모습도 작품 중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재간을 맞아 표지로 그의 사진을 쓸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참담한 붕괴의 현장에서 만난 두 사람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현장에서 마주친 남녀가 있다. 두 사람은 간발 차로 죽음을 피했지만, 이후 9년 동안 더 많은 트라우마들을 쌓으며 피폐해져간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재회하게 되고, 더이상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처를 외면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남자는 무작정 제주도로 떠나 바다낚시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낚시를 하다가 죽은 아버지를 기억하는 여자는 남자의 나침반이 되려 노력한다. 두 사람에게 바다는 재생과 치유의 공간이며, 구원과 화해의 계기가 된다. 거대한 돗돔이란 물고기는 떨어져나간 영혼처럼 주인공들을 맴돌고, 그 사이로 제주의 생생한 풍광과 아픈 역사가 녹아든다.
작가의 말
초판본 ‘작가의 말’에 못다 한 말을 덧붙이고 싶다. 내가 ‘자발적 유배’라고 표현한 제주에서의 체류 기간은 2003년 봄부터 2005년 봄까지였는데, 서울로 올라온 직후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이 차디찬 골방에서 혼자 세상을 떠났다. 이 소설에도 등장하지만 그분과의 인연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의 사진 작품으로 책 표지를 만들게 되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비록 세상에 없다 할지라도 김영갑 선생께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뿐만 아니라 사고무친의 섬에서 당시 나와 함께해주었던 현지 어부들과 낚시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늘 술을 함께 마셔주었던 신경정신과 전문의 천자성 선생께도 새삼 감사드리고 싶다. 그들은 나의 쓸쓸한 유배생활을 도와주었으며 ‘지금,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었다.
얼마 전에 다녀왔음에도 제주가 다시금 눈앞에 그립다. 여름, 겨울의 폭풍우가 특히나 그립다. 제주에서 올라온 후 내 가슴에서 ‘거칠음’이 사라진 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 거친 힘을 회복하고 싶다. 언제든 내 안의 호랑이와 대적할 수 있는 그 힘 말이다.
2010년 봄
윤대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