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생김새, 성격, 살아가는 모양도 가지각색이지만 ‘죽음’이라는 생명의 대전제 앞에선 모두가 같고, ‘죽음’이라는 공동의 운명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언젠가 맞닥뜨려야 할 결말이기에 죽음은 소설가 코맥 매카시가 말한 대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고, 삶에 대한 논의도 마땅히 죽음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누구도 선뜻 죽음에 관해 말하려 하지 않으니 매카시가 느낀 대로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죽음은 으레 어렵고 무겁고 우울한 주제로, 삶을 향한 의지와 희망을 꺾는 무엇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죽음을 부정함으로써 삶을 긍정하고, 죽음을 외면함으로써 삶에 충실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태도와 유쾌한 어조로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 한 권이 있다. 『리모트Remote』 『죽은 언어들Dead Languages』 등 철저한 취재와 고증을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적 작품들로 ‘다큐멘터리 소설가’라는 별칭을 얻은 데이비드 실즈의 신작 에세이가 그것. 날카로운 시선과 신랄한 분석, 재치 넘치는 문체로 PEN/레브슨 상, PEN 신디케이티드 소설상 등을 거머쥔 저자는 논픽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서 인간의 물리적 생존환경과 육체에 대한 생물학적 탐구를 펼치는 한편,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이고, 또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고찰한다.
저자는 ‘유년기와 아동기’ ‘청소년기’ ‘중년기’ ‘노년기와 죽음’까지 총 4부로 장을 나누고 각 연령대에 따라 우리 몸이 노화하면서 겪게 되는 육체적ㆍ심리적 변화들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빽빽하게 나열된 과학적 수치와 생물학적 통계 들은 우리가 모두 똑같은 동물로 태어나 똑같은 경로로 ‘죽음’을 향해 진군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공자, 셰익스피어, 장 자크 루소, 오스카 와일드, 에밀 졸라, 존 업다이크 등 세기의 지성들과 무명의 묘지기 조수, 택시 운전기사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남긴 삶과 죽음에 관한 경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움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고차원적인’ 삶의 의미나 목적을 찾아 헤매는 대신 삶 그 자체를 즐기고 사랑함으로써 인생의 무게에서 놓여나 자유로워지는 것, 자기애가 낳은 강박과 시기와 좌절감을 떨쳐내고 주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는 것 등이 그 예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저자의 가족사가 곁들여진다. 저자는 백 살을 목전을 두었지만 너무도 정정한 아버지와 천둥벌거숭이 같은 십대 딸아이의 넘치는 생명력이 부담스럽다. 소싯적엔 스타 농구선수로 활약했지만 갓 쉰을 넘긴 나이에 머리칼이 듬성듬성하고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격심한 요통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하는 자신과 달리, 아흔이 될 때까지 병원신세 한번 져본 적 없고, 만능 스포츠맨에다 여전히 왕성한 성생활을 즐기는 아버지에게 저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비슷한 애증의 감정을 갖고 있다. 생명 예찬론자인 아버지와 어린 딸의 파란 많은 삶, 그리고 자신의 유년시절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저자는 시기심 어린 시선으로, 때로는 애틋한 심정으로 그려내면서 집요하게 인생의 덧없음을 설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