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예순여섯 해를 기다린 한 남자가 있었다. 영어선생님으로 27년을 살았던 그는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결국 펴낸 것은 아일랜드에서의 지난한 유년기를 풀어낸 회고록이었다.
이 한 권의 책이 미국에 던진 반향은 엄청났다. 그해 미국인들 사이에는 아일랜드의 모든 것이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고, 책에 등장한 아일랜드식 농담이 유행했으며, 책의 배경이 된 아일랜드 리머릭에는 책의 이름을 딴 관광 코스가 생겨났다. 그리고 작가는 이 첫 책으로 1997년 모든 미국 작가들이 한 번쯤은 꿈꾸는 퓰리처상과 전미 도서 비평가상 등 그해 회고록이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예를 누렸다. 책은 미국에서만 4백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고, 27개국에 판권이 팔렸으며, 17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알란 파커 감독 연출, 에밀리 웟슨, 로버트 칼라일 등의 연기파 배우의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기 넘치는 작가들과 위대한 술꾼의 나라 아일랜드,
그 유구한 전통과 슬픈 역사
그렇다면, 이 남자의 대단한 유년기는 대체 어땠을까.
에메랄드빛 들판과 요정, 켈트족의 영웅과 기네스 맥주, 놀라운 입담을 자랑하는 재기 넘치는 작가들과 유럽에서 유일하게 ‘2차’를 뛰는 위대한 술꾼들의 나라 아일랜드. 8세기 동안 영국에 지배당한 이 아름다운 나라에는 서구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한의 정서와 배꼽 잡는 유머감각이 동시에 공존한다. 마이클 콜린스와 에이먼 데 벌레라 같은 역사적 인물과 IRA의 무장 항쟁, 부활절 봉기 등 피 맺힌 투쟁 끝에 1920년대 경에 와서야 비로소 영국으로부터 조건부 독립을 얻어낸 아일랜드인들은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영국인들이 우리에게 8백년 동안 한 짓이 있는데.”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인들의 주식이었던 감자에 병이 생기면서 일어난 대기근으로 아일랜드에서는 미국으로의 대이민 행렬이 이어졌고, 이는 20세기 초반까지 계속되었다. 1929년, 아일랜드에서 한 아가씨가 부푼 꿈을 안고 대공황이었던 미국 뉴욕에 도착한다. 그녀는 곧이어 경범죄로 갓 출소한 젊은 아일랜드 동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덜컥 임신을 해버린다. 억센 친척들의 반협박에 못 이겨 두 사람은 결혼하고, 곧이어 1930년 8월 19일에 첫 아들이 태어난다.
이 두 사람이 바로 저자 프랭키 매코트의 부모인 말라키 매코트와 안젤라 시언이다. 어린 프랭키의 뒤를 이어 부부에겐 말라키와 쌍둥이 아들 유진과 올리버, 여자아이 마거릿이 태어나지만, 마거릿은 생후 몇 주 만에 죽고 만다. 아이를 잃은 슬픔과 대공황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가족은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간다.
그러나 고생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일랜드 리머릭에서도 그들은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다. 북부 출신인 말라키는 남부인 리머릭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 8세기에 걸쳐 영국인들이 대거 정착한 아일랜드 북부는 신교도들이 많았고, 아일랜드가 독립국이 될 때도 일부는 영국령으로 남았기 때문에 남부와 북부는 지역감정의 골이 깊었다. 말라키는 다정한 아버지이지만, 그런 연유로 실업자 신세에다 늘 술독에 빠져 있다. 습기 찬 날씨와 허름한 주거 환경, 끼니조차 제대로 때울 수 없는 힘겨운 생활 속에서 쌍둥이인 두 아이가 차례로 스러져간다. 그러나 낙태나 피임을 허용치 않는 가톨릭 신앙 때문에 아이들은 또다시 연이어 태어나고, 가족은 가톨릭 구호단체에서 주는 구호품과 리머릭에 사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삶을 연명해간다.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휩쓸리자 아버지 말라키는 영국의 군수공장에 일하러 떠나고, 남은 가족은 결국 살던 셋집에서마저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술독에 빠져 집으로 돈 한푼 보내지 않는다. 십대가 된 프랭크는 굶주리는 세 남동생과 어머니를 먹여 살려야 한다. 글재주 있는 총명한 학생이었던 그는 결국 열세 살에 학업을 중단하고 우편배달과 신문배달, 협박편지 대필 등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그리고 근근이 돈을 모아 드디어 열아홉 살이 되던 해, 꿈에 그리던 미국으로 가는 배에 홀로 몸을 싣는다.
눈물과 웃음, 슬픔과 따뜻함이 어린 잊혀지지 않을 민중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책으로 몇십 권은 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늘 존재한다. 하지만 쓴다고 해서 다 책이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또한 개인적인 일들을 책으로 내는 것을 유독 껄끄럽게 여기는 문화적 풍토 때문에 한국에서는 크게 발달하지 못한 분야가 바로 회고록이다.
이에 비해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는 여러 가지의 회고록이 출간돼 있고 그 성격도 퍽 다양하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많고많은 회고록들 중에서도 이 책은 월등한 문학성으로 인해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한 편의 소설보다도 드라마틱하면서 아름다운 문장들, 눈앞에 펼쳐질 듯한 생생한 묘사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안젤라의 재』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우리, 그중에서도 전쟁이나 가난을 직접 체험한 옛 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다. 방 한 칸 없이 떠도는 생활, 요람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은 갓난아기들, 굶주림을 이기다 못해 저지른 도둑질, 무력한 부모와 천진하기만 한 아이들……
그럼에도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유년기에 대한 놀랍도록 생생한 묘사, 아일랜드인 특유의 입담과 유머감각, 뭉클한 서정성이다. 예이츠, 조너선 스위프트,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엘리자베스 보언, 새뮤얼 베케트 등 영문학을 빛낸 위대한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의 DNA는 프랭크 매코트에게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먼 옛날의 아련한 추억은 과거시제와 현재시제를 오가는 문장을 통해 바로 눈앞에 펼쳐지듯 살아 움직인다. 어린 매코트는 난롯가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아일랜드의 전설과 신화, 피로 얼룩진 역사적 투쟁의 이야기만 들은 게 아니라, 이야기를 사랑하는 아일랜드인 특유의 재능도 물려받았다.
끼니조차 잇기 힘든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어린 화자가 내보이는 어린이다운 천진함과 엉뚱함은 때로는 미소를, 때로는 폭소를 부른다. 또한 비슷한 처지의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는 따뜻한 정의 이야기는 눈시울을 적신다. 물론 아일랜드의 삶에서도 악역은 존재했다. 맹목적인 신앙심과 편협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선생들,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 가톨릭 학교들, 가난한 이웃을 멸시하는 조금 더 나은 처지의 사람들, 가학적이고 관료적인 자선단체 사람들…… 그러나 화자는 이를 통해 가족이 겪은 아픔을 감정적 과장 없이 참으로 차분하게,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그리고 그 진솔함을 통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깊은 감동을 남긴다.
또한 이는 한 개인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20세기 중반에 아일랜드인들이 겪은 역사적 굴곡을 생생한 민중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일종의 ‘민중 자서전’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돈을 벌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던 수많은 아일랜드 남자들, 그들을 기다린 여자들, 몇몇 아일랜드인들이 심정적으로는 독일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오랜 가톨릭 전통과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겪었던 여성들의 아픔, 아일랜드인들의 힘이자 아픔의 원천이었던 강한 민족주의, 영국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와 선망, 그들의 신명나는 춤과 서정적인 노래, 신화와 전설과 역사가 페이지마다 살아 숨 쉰다. 우리와도 많은 부분 닮았으나, 지금까지는 그저 영국의 변방쯤으로 여겨져 온 아일랜드의 모든 것이 가깝게,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예순여섯 살에 첫 책을 낸 프랭키 매코트는 영어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삶을 살면서 늘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신은 그에게 다른 형태의 글쓰기 재능을 주셨고, 그 안에서 그는 축복받았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삶의 온기와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는 3부작의 회고록을 통해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로 남았다. 그리고 한 개인의 목소리는 앞으로도 스러지지 않을 영원한 보편성을 획득했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고전의 반열에 오를 작품. 실로 놀라울 뿐이다. 뉴욕 타임스
프랭크 매코트가 그 고생을 이기고 살아남아, 이 책을 쓸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질 것이다. 보스턴 선데이 글로브
못 다한 이야기들에 대한 궁금함으로 독자를 달아오르게 만드는 최고의 작가. 뉴스위크
아일랜드 이야기꾼 특유의 매력으로 독자들의 넋을 빼놓는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
가난과 굶주림과 고통을 이겨내는 사랑의 힘을 믿게 하는 작품. 책장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한 개인의 경험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실로 보편적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회고록 분야에서 고전의 반열에 오를 작품. 워싱턴 포스트
내가 읽은 그 어떤 소설보다도 소설 같은 책. 배꼽 잡는 유머와 깊은 슬픔을 동시에 지녔다. 유년시절에 대한 생생한 기억력과 놀라운 글솜씨를 동시에 지닌 작가. USA 투데이
살을 에는 슬픔과 자학의 유머 사이를 오가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년시절 회고록. 그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빗방울의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을 듯한 명료한 문장. 데일리 뉴스
문학동네가 펴낼 프랭크 매코트의 다른 책
그렇군요 ´Tis
갖은 고생 끝에 꿈의 도시 뉴욕에 당도한 프랭키. 일류 호텔에 취직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이어 군인이 되어 한국전에 파견되고, 갖은 고생을 겪은 후에 독일로 보내진다. 군복무를 마친 프랭키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면서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중단했던 학업을 이어간다. 청년 프랭키가 겪은 이민자의 삶, 그리고 전쟁과 격동의 20세기.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선생 노릇 Teacher Man
중학교밖에 마치지 못한 이력으로 뉴욕대 특별전형에 합격한 프랭키는 꿈에 그리던 영문학 공부를 시작하고, 졸업한 후에는 뉴욕의 고등학교에서 영어와 문예창작을 가르치게 된다. 뉴욕 공립학교의 보통 아이들에게 27년간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선생님 프랭키’. ‘올해의 선생님’으로 선정되며 아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베푸는 삶을 살게 된 열혈선생 프랭키의 인생 후반부 이야기가 펼쳐진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지은이 프랭크 매코트 Frank McCourt
아일랜드계 미국인 교육자, 에세이스트. 나이 예순여섯 살에 펴낸 첫 책 『안젤라의 재』로 퓰리처 상, 전미 도서 비평가상, LA 타임스 도서상, 애비 어워드 등을 휩쓸고, <뉴욕 타임스> <타임> <보스턴 글로브>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피플 매거진> <베니티 페어> ‘올해의 책’에 선정된 작가.
대공황이 한참이던 미국 브루클린에서 1930년 8월 19일, 아일랜드계 이민자인 말라키 매코트와 안젤라 시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일랜드 리머릭에서 궁핍한 시절을 보냈고, 이 시절의 경험을 아일랜드인 특유의 유머와 가슴 찡한 정서로 녹여낸 『안젤라의 재』로 퓰리처상을 비롯,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발표한, 뉴욕에서의 이민 생활과 참전 경험을 담은 『그렇군요』와 열정적이고 유머러스하며 다감한 교사로서의 체험을 그린 『선생 노릇』 역시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07년 마지막 작품인 동화 『안젤라와 아기 예수』를 발표하고, 2009년 맨해튼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김루시아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뒤 수년간 번역가로 활동해왔으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불평 없이 살아보기』 『매기와 초콜릿 전쟁』 『그렇군요』(문학동네 근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2010년 4월 20일 발행
* ISBN 978-89-546-1076-6 03840
* 145*210mm 무선 568쪽 |12,800원
* 담당편집: 해외문학 3팀 박여영 차장(031-955-8868, island@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