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다”
2006년 『백수생활백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고, 2008년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로 대한민국 표준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소설가 박주영의 세번째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에서 박주영은 독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원하는 것에서 절대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그것을 계속할 수 있는가? 진정으로 원하는 단 한 가지를 가진 인생과 진심으로는 원하지 않지만 뭐든 가질 수 있는 인생 중 어떤 인생을 원하는가? 왜 우리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장 절실하고 소중한 것으로 느끼며 그것을 가지려고 일생을 아등바등 살면서 스스로를 불행하고 불운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무정부주의자들의 그림책』은 이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하는 무수한 ‘무정부주의자들’을 위한 바이블이다.
무정부주의자들
지연 - 나는 구원되기를 기다리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나는 화가 박현조의 딸. 어머니는 항상 최고였고 자유로웠지. 어머니를 따라 그림을 그리려 했지만 어머니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어. 그 그늘을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유진의 아내’로 불리며 살란 말이야? 아직 진정한 내 모습을 찾지도 못했는데? 나는 구원되기를 기다리는 신데렐라가 아냐. 나도 남자를 구원할 수 있고, 나 하나쯤은 내 힘으로 구할 수 있어!
유진 - 네가 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될 때까지, 나는 영원히라도 기다릴 수 있어.
지연은 언제쯤 내 진심을 알아줄까?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할 텐데. 대체 우리 관계에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네가 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될 때까지, 나는 영원히라도 기다릴 수 있어. 그때 네가 내게로 와서 쉴 수 있길 바란다.
리나 - 사랑? 귀찮고 번거로워.
그래, 한때는 선우를 사랑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는 이제 내게 사업 파트너일 뿐. 선우가 영화를 만들면, 나는 홍보해서 성공시킨다. 능력도 인정받았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다. 남편? 그는 알면 알수록 모를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끝난 문제다. 그런데, 지금 나는 행복한 것일까?
선우 - 왜 너는 더이상 사랑을 하지 않는 거니?
여자? 대부분의 여자들은 개체로서의 특별성이 없어. 이 유리컵과 같은 존재지. 깨지면 이렇게 갈아치우면 되거든. 하지만 그녀는 다른 거 같아. 그녀는 무언가 특별해. 그 여자가 내 영화 속의 여자들이 너를 닮았다고 하던데? 슬퍼하지 않고, 추해지지도 않고, 한없이 쿨한…… 그런데 리나, 왜 너는 더이상 사랑을 하지 않는 거니?
커피와 담배, 연애와 우정, 속도와 알코올……
유명화가의 딸이자 재벌2세 유진과 연인 사이인 지연, 부유한 컬렉터인 남편과 결혼하고 기분에 따라 차를 바꾸는 쇼핑중독자 리나. 남들이 보기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그들, 오랜 친구 사이인 지연과 유진은 각자의 인생이 힘에 부친다. 유진이 미국으로 떠난 사이, 지연은 선배의 작업을 돕게 되면서 그의 남동생과 마주친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남자와 점점 가까워지는 지연. 조금 탄 커피원두처럼 쓰디쓴 이 연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한편 리나는 옛 애인인 선우와의 관계를 사업 파트너로서 계속 지속해나가면서 사랑 없는 공허한 삶을 이어나간다. 여전히 무심한 선우는 자신에게 새 여자가 생겼다고 얘기하고, 리나는 그녀를 만나볼 것을 결심한다. 남편과는 얘기다운 얘기를 나눠본 지가 이미 오래. 그녀가 피우는 독한 블렉스톤체리 담배가 점점 짧아져간다.
중독과도 같은 상처를 딛고 우리는 성장한다
내 인생에 어떤 것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나는 여전히 확실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겠다. 나는 안전한 인생이 아니라 진짜 인생을 원한다. 더이상 나를 속이지 않고, 나를 배반하지 않고, 나를 기만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분명해지는 나의 존재는 원하지 않는다. 그전부터 이미 나는 나였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나로서만 존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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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원하는 아직 삶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답은 있을까? 절실한 사랑, 절실한 행복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세상의 규칙과 사회적 규범에 의존하지 않고 더 많이 가진 자의 권위를 따르지 않으며 다수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쫓지 않는, 자신의 결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기를 원하는 그들을 박주영은 ‘무정부주의자’로 명명한다. 상처에 중독된 그들의 치유과정이 이 책에는 낱낱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책을 펼쳐보는 사람은 이제 외롭지 않다. ‘무정부주의자’들의 연합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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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규칙과 사회적 규범에 의존하지 않고 더 많이 가진 자의 권위를 따르지 않으며 다수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좇지 않는, 자신의 결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기를 원하는 그들을 무정부주의자들로 명명했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원하는 것에서 절대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그것을 계속 할 수 있는가? 진정으로 원하는 단 한 가지를 가진 인생과 진심으로는 원하지 않지만 뭐든 가질 수 있는 인생 중 어떤 인생을 원하는가? (……)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왜 우리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장 절실하고 소중한 것으로 느끼며 그것을 가지려고 일생을 아등바등 살면서 스스로를 불행하고 불운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질문에 대한 대답도 질문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서 ‘그림’ 대신 쓰고 싶은 그 ‘무엇’이 있는가? 지금부터 꿈을 꾼다고 해도 화가도 사진작가도 가수도 되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치다. 더 느리고 더 현명한 루저로 사는 것은 때로 삶을 예술로 만든다. _‘작가의 말’ 중에서
* 초판발행 | 2010년 4월 7일
* 145*210 | 296쪽 | 값 10,000원
* ISBN 978-89-546-1084-1 03810
* 책임편집 | 조연주 이경록(031-955-8865, 3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