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더이상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미학 이야기
사랑과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경험이다. 성별, 사회적 지위, 교육 정도, 부의 크기와 무관하게 사람이면 누구나 사랑과 죽음을 만나게 되어 있다. 또한 사랑과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경험이기도 하다. 사랑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행위이며,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 타자를 자신 안에 품는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성숙하게 하는 한편, 죽음의 상실감을 인내하고 인간의 한계에 의연해지는 법을 가르쳐 한층 고양된 존엄성과 자유를 얻게 한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이렇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테마를 방기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깊은 뿌리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단순히 어떻게 잘 견뎌낼 것인지에 대한 얄팍한 전략과 기술에 관한 논의만 풍성하다.
사랑과 죽음에 대한 담론의 빈곤, 그것의 심각성을 자각한 데서 이 책은 출발했다. 예술과 철학의 죽음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지상에 사랑이 존재하고, 누구든 한 번쯤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면, 예술과 철학의 종언 테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문제는 “예술과 철학의 사망선고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사망선고가 지상에서 사랑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암시한다”는 점이며, 오히려 우리는 이 점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랑과 죽음은 저자에게 우리의 삶, 그리고 예술과 철학의 관계를 추적하는 데 중요한 논제이다. 우선 저자는 상사병에 걸려 괴로워하고 연인을 “천사”라고 부르며 신격화하는 <글루미 선데이>의 남자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사랑의 증상들을 설명한 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죽지 않”기 위해 찾은 길이 바로 ‘사랑’이라는 플라톤의 에로스론을 소개한다. 하나의 개체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타자와의 합일을 통해 새로운 개체를 잉태하고 탄생시킴으로써 인간은 간접적으로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유전자의 창조적인 복합, 이 방법을 통해 인간은 불멸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끝없
이 사랑에 집착하고 기다리고 꿈꾸는 이유다. 이렇게 이 책은 우리 마음속에 숨겨진 사랑의 욕구를 이해하게 하고, 사랑의 경험이 우리를 어떻게 예술과 철학에 관심을 갖게 만들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만드는지 들려준다. 『멜랑콜리 미학-사랑과 죽음 그리고 예술』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탐구를 통해 예술과 철학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미학 이야기이다.
인간의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사랑, 그것의 이상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연인을 위해, 사랑을 위해 죽기보다 자신의 자긍심을 위해 죽는 안드라스와, 타인보다 자신의 자유를 더 사랑하는 라즐로에게서 저자는 서양 문화에 뿌리 깊이 새겨진 자기 사랑의 한계를 밝힌다. 그리고 그들의 연인인 일로나의 ‘여성적 사랑’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일로나는 안드라스를 위해 혼자 있을 때만 노래한다는 작은 삶의 준칙을 깨트리고, 라즐로를 구하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한스에게 몸을 허락한다. 사랑을 위해 자긍심도 목숨도 서슴지 않고 내놓을 수 있는 사랑, 태아에게 자신의 피와 살을 건네줄 수 있는 ‘여성적 사랑’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자기 내부에 잉태된 미래의 타자에게 자신의 피와 양분을 공급하면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고통, 흥분, 일렁임, 고독, 우울을 겪게 된다. 즉, 사랑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슬픈 존재, ‘멜랑콜리커Melancholiker’가 된다. 게다가 지상의 사랑은 결국 이별과 죽음을 만나게 되어 있다. 삶에 죽음이 깃들듯 사랑의 내부에는 이미 이별이, 죽음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죽을 줄 알면서 살아가고 이별할 줄 알면서 사랑하는 우리는, 타자를 품기 위해 자기 상실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우리는, 모두 슬픈 운명을 타고난 멜랑콜리커다. 이 책은 예술과 철학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안에 감춰진 죽음에 대한 공포와, 자기를 파괴함으로써 타인을 받아들이는 사랑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지 설명한다.
플라톤의 말처럼, 예술은 에로스의 ‘결실’이자 사랑의 선물이다. 무명의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안드라스는 일로나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비로소 타인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작곡할 수 있었고, 라즐로는 시인 흉내를 내기도 하고, 죽음에 직면해서는 <글루미 선데이>의 메시지를 철학적으로 해석한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모든 감각과 생각의 가능성들이 최대로 실현되고, 그래서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거나 볼 수 없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사랑은 우리를 예술가이자 철학자로 만들고, 그 어느 때보다 창조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한다.
그러나 또한 예술과 철학은 사랑하는 대상의 부재와 상실에 대처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이기도 하다. 이별의 아픔을 담담하게 노래한 미당 서정주의 시를 읽으면 한껏 고조되었던 슬픔과 설움이 정갈하게 정제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창조하는 행위는 이렇게 참기 힘든 슬픔의 고통을 조용히 갈무리하는 애도 작업이며, 새로운 미래를 제대로 맞이할 수 있게 하는 준비 작업인 것이다.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는 저자는 우리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어떤 배역을 맡고 있는 배우”이며 많은 경우 “자신이 배우라는 사실을 모”르고, 심지어 “배역에 빠져들어 그곳에서 빠져나올 줄을 모른다”고 말한다. 거기서 우리 삶의 실제 비극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이끌 수 있으려면 “관객의 시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관객의 시선을 확보해야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삶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삶을 비판적 관객으로서 성찰하게 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이렇게 이 책은 예술과 철학이 사람의 슬픈 운명을, 고단한 삶의 여정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학문임을 깨닫게 한다. 예술과 철학에 덧씌워진 베일을 과감히 걷어내고, 그 본연의 의미를 일깨워 우리 곁에 되돌려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대중이 환호하는 그 어떤 심리서나 자기계발서들보다 우리 안의 어두운 마음을 마주 보게 하고 다독이고 밝혀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