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운』은 대부분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 단편들을 쓰면서 나는 스스로가 산산조각 나는 듯한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고집스럽고 갈팡질팡하는 한 젊은이의 삶에서 이 소설은 태어났다.” 주노 디아스
만일 문학을 고상하고 진지하고 엄숙한 것으로, 대학의 화사한 교정이나 중산층 집단 거주지에서 발원하는 언어유희쯤으로 믿고 있다면 주노 디아스를 멀리하는 것이 좋다. 『드라운』을 읽는다는 것은 문학이 쓰고 있는 우아한 복면을 벗기고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경험이다. 시궁창‘에도’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시궁창‘에만’ 꽃이 핀다는 것, 소설이라는 것의 출신 성분이 본래 그런 ‘잡놈’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미국 독서계를 뒤흔든 화제의 소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의 작가, 그 괴물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톺아보는 흥미로운 여정이기도 하다. 김영하(소설가)
이 어마어마한 재능은 언제나 소란을 일으킬 것이다.
디아스는 냉정한 저널리스트의 눈과 시인의 혀를 지녔다. 뉴스위크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의 작가 주노 디아스의 데뷔작 『드라운』이 국내에 출간된다. <뉴요커> <패리스 리뷰> <베스트 아메리칸 쇼트 스토리스> 등에 발표하며 디아스가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기의 단편소설 열 편을 모아 1996년에 출간한 소설집이다.
미국 뉴저지를 중심으로 이민자들의 거친 삶을 독특한 스타일과 생소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형상화한 『드라운』이 출간되자마자 디아스는 미국 내에서 일약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기존 문학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소설의 탄생에 평단과 독자 모두가 환호했기 때문이다. 그해 디아스는 작가로는 유일하게 <뉴스위크>의 ‘1996년 뉴 페이스’로 선정되어 <뉴스위크> 표지를 장식했을 뿐 아니라 뛰어난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펜/말라무드 상을 수상했고, 1999년에는 <뉴요커> 선정 ‘21세기를 빛낼 최고의 작가 2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드라운』은 데뷔작으로는 이례적으로 십만 부 이상이 팔려갔으며 14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겨우 스물일곱이었다.
흩어진 가족, 잡히지 않는 사랑, 방황하는 우정, 혼란스러운 자아정체성
『드라운』에서 우리는 『오스카 와오』의 그 입심 좋은 이야기꾼 ‘유니오르’를 다시 만나게 된다. 『오스카 와오』가 유니오르가 들려주는 오스카 와오 집안의 삼대에 걸친 대서사였다면, 『드라운』은 화자 유니오르 자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작가가 말했듯 자신의 경험이 깊이 녹아들어간 단편들에서 유니오르는 일견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디아스가 진정 말하고자 한 바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디아스는 모국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건너가 자리 잡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아버지, 부재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모국에서 가족을 건사하며 악착같이 삶을 꾸려가는 어머니, 아버지가 미국으로 데려가주길 기다리며 유년기를 보내고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채 주변부를 맴돌며 거칠고 불안정한 거리의 젊은이로 자라나는 이민 2세대들의 삶을 냉소적이면서도 시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어 ‘모두들 존재하는 줄 뻔히 알면서 아무도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았던’ 불편한 당대의 현실을 드러내보인 것이다. 『드라운』은 바로 이 지점에 놓여 있다.
아버지는 엄마와 형에게 입을 맞추고 내켜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손을 맞잡을 것이며, 그다음에야 모두의 뒤에 있는 나를 볼 것이다. 저 녀석은 왜 저래? 아버지는 물을 것이고 엄마는 말할 것이다. 쟨 당신을 모르잖아. 연노랑 고급 양말이 보이도록 쭈그려 앉으며, 아버지는 내 팔과 머리의 흉터를 손으로 쓰다듬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수염을 짧게 깎은 까칠한 얼굴을 내 얼굴 앞에 대고 엄지로 내 뺨에 원을 그리며 말할 것이다. 유니오르.(121~122쪽, 「아구안탄도」)
「아구안탄도」에서 아홉 살 유니오르는 라파 형과 엄마와 함께 도미니카 산토도밍고에서 미국으로 돈 벌러 떠난 아버지를 속절없이 기다린다. 하지만 아버지는 번번이 약속을 깨고 그들을 데리러 오지 않고, 유니오르는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를 그저 상상해볼 뿐이다.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건너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에도 아버지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다지 자상하지 않다. 권위적이고 무뚝뚝할 뿐 아니라 푸에르토리코 여자와 바람까지 피운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유니오르의 불안한 심리는 아버지의 차를 탈 때마다 시달리는 멀미의 형태로 드러난다.(「피에스타, 1980」)
「드라운」에서 유니오르는 학교 가기는 죽도록 싫고,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 하나 없이 동네 청소년들에게 싸구려 마약을 팔고, 쇼핑몰에서 겁도 없이 좀도둑질을 하고, 게이가 된 친구 때문에 자신도 ‘비정상’이 될까봐 혼란스러워하며 십대를 보낸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약속된 건 아무것도 없는’ 이십대에는 마약 딜러가 되어 사업을 키워볼까 고민하고 마약중독자 여자친구와 가망 없는 평범한 삶을 꿈꿔보기도 한다.(「오로라」)
그녀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거기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그려봤어. 네가 봤어야 하는데. 우리 둘이 애도 낳고, 크고 파란 집에 취미도 갖고, 씨팔, 완전 새로운 인생 말이야. (……) 일주일 뒤, 그녀는 우리가 함께할 근사한 일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내게 다시 약을 달라고 사정하게 되지만, 아니, 거의 싹싹 빌게 되지만, 그 얼마 후 나는 그녀를 때려 귀에서 지렁이처럼 피가 흐르게 만들지만, 그때 그 빈 아파트에서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 같았다. 어쩌면 모든 게 정상인 것만 같았다.(93~94쪽, 「오로라」)
「네고시오스」에서 디아스는 동네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은 모조리 빌려 들고 영어 한마디 못하는 채 미국으로 건너가 고군분투했던 아버지의 삶을 그려 보인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마이애미에서 뉴욕까지 611킬로미터를 걸어가고, 시민권을 얻기 위해 시민권자와 결혼하려다 사기를 당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스무 시간을 일하고, 무리하게 짐을 옮기다 허리를 다치고, 시민권을 얻으려 결혼한 여자와 도미니카에 두고 온 가족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민 1세대 아버지의 삶은 그가 비록 끝내 가족을 버렸음에도 깊은 연민을 자아낸다.
아버지는 손에 닿는 아무것에나 답장을 갈겨써서 보냈다. 대개 화장지 상자의 얇은 마분지나 일터의 세금계산서를 뜯어낸 것이었다. 아버지는 일하느라 너무 피곤해 거의 모든 단어의 철자를 틀리게 썼고, 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아버지는 엄마와 아이들에게 곧 비행기표를 보내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받은 사진들을 일터의 친구들과 같이 보고는 지갑 속 오래된 복권 틈에 끼워놓고 잊어버렸다.(235~236쪽, 「네고시오스」)
한편 「이스라엘」과 「노 페이스」는 다른 소설들과 달리 아기 때 돼지에게 물어뜯겨 얼굴이 흉악해진 바람에 늘 복면을 써야 했던 이스라엘이라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소년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모두들 복면 너머의 ‘기형’을 구경하고 싶어하고, ‘기형’이라는 이유로 소년에게 폭력을 가한다. 디아스는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통해 ‘다름’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그 폭력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북미로 가서 얼굴 수술을 받을 날을 꿈꾸며 모든 폭력을 감내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린 「노 페이스」를 소설 말미에 실음으로써 이스라엘에게 박탈당한 인간성을 다시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거친 유머와 지성, 분노, 가슴 깊이 파고드는 따스함이 가득한 성장소설
『오스카 와오』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드라운』에서 디아스는 가난과 사기와 편견의 세월을 견디며 미국사회에 편입하고자 애쓰는 이민 1세대의 삶을 물려받은, 내면의 상처와 대상 없는 분노, 불확실성에 방황하는 이민 2세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냉정하면서도 감성 어린 문체로 그려 보인다. 유니오르로 대변되는 이들의 성장기는 숨이 막힐 듯 힘겹고 때론 암울하지만, ‘곳곳에 별처럼 반짝이는 시적인 표현과 웃음을 머금게 만드는 유머가 숨어 있다’.
“고집스럽고 갈팡질팡하는 한 젊은이의 삶에서 이 소설은 태어났다”고 디아스는 말한다. 제대로 바닥을 쳤을 때에야 진정한 도약이 가능하듯, 디아스는 이 힘겨운 성장기를 겪어냈기에, 또한 이 경험을 보편의 진실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기에 ‘미국 문단의 거인’이 될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드라운」은 단편집이긴 하지만 지난 삶의 과정을 돌아보게 해주는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으며, 독자에게 주노 디아스라는 작가의 ‘처음’과 만나는 아주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주노 디아스의 단편들은 소설 속 배경들만큼이나 역동적이고 터프하고 익숙하면서도 아름답다. 거친 유머와 지성, 분노, 가슴 깊이 파고드는 따스함이 가득한 성장소설. 그러나 이는 시작일 뿐이다. 디아스는 미국 문단의 거인이 될 것이다. 프랜시스코 골드먼(소설가)
디아스는 불경했던 젊은 헨리 밀러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훨씬 더 따스한 심장을 지닌 작가다. 아나 카스티요(소설가)
『드라운』은 전혀 새로운 흥분을 맛보게 한다. 젊은 도미니카계 미국 작가 주노 디아스의 이야기는 격렬하고, 예리하고, 가슴 아프다. 눈부신 재능이 돋보이는 데뷔작. 인디펜던트
주노 디아스는 단지 몇 번의 솜씨 좋은 찌르기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그려 보이는 드문 재주를 타고났다. 가디언
이 매혹적인 소설집은 도미니카 이민자들의 삶을 냉철하게 조망한다. 아메리칸드림의 모순된 약속에 관한 담담한 보고서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우아하면서도 날것 그대로이며 고통스러우면서도 명민하다. 저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다보면 마지막 페이지에 닿아 있고, 더 읽고 싶은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보스턴 글로브
“무슨 일이든 다 겪어봐서 웬만한 걸로는 충격도 받지 않거든?”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입담 좋은 화자들이 등장하건만 디아스는 감성에서도 꽁무니를 빼지 않는다. 작가는 전혀 감상적이지 않지만 그의 이야기들에는 감성의 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솔직하고 재미있기 때문에 살며시 가슴 아프게 만드는, 세상 이치에 밝고 박식한 작가이다. 헝그리 마인드 리뷰
빅토리아 시대에 찰스 디킨스가 밑바닥생활의 처참함을 일깨웠다면 지금은 디아스와 그의 동료 작가들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의 상상력만이라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노동계급의 소박함을 그린 레이먼드 카버와 열대 카리브와 도시의 광기를 그린 열정적인 작가 피리 토머스의 만남이라 말하고 싶지만 사실 『드라운』은 명백히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다양한 언어, 억양, 태도가 만나 주노 디아스를 만들었으며, 그의 소설을 매혹적으로 만드는 요인 역시 그 오묘한 얽힘이다. 빌리지 보이스
섬세하게 일구어낸 이 열 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전적인 어린 시절의 경험과 가슴앓이에 대해 다 쓰고 난 뒤에도 아직 할 말이 남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옮긴이 권상미
한국외대와 동대학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뒤 캐나다로 날아가 오타와 대학에서 번역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며 영어와 스페인어 책을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올리브 키터리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내 남편의 연인들』 『에드거 소텔 이야기』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빌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시간을 파는 남자』, 그림책 『훌륭한 걸!』 『뜨개질 소녀 넬』 등이 있다.
* 담당편집 : 류현영(031-955-8858, sanja95@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