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대흠이 십여 년간 고향 전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난 이들과의 따뜻한 인연을 구수한 사투리로 담았다. ‘뭇을 조깐 디레사 쓰겠냐’며 뭐라도 하나 더 주지 못해 아쉬워했던 대치 아짐, ‘이름만 이삐먼 머하냐’며 눈물 글썽였던 김한네 할머니, ‘말만 시게줘도 고맙다’던 장순기 할머니 등 인심 좋은 전라도 할머니 할아버지 들의 웃음과 정이 책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전라도의 힘
“뭇 하고 재게셨소(뭐 하고 계세요)?”
카메라 하나 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대며 넉살좋게 말 붙이는 시인에게 야멸치게 거절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누구든 어머니처럼, 오래 같이 살아온 이웃처럼 푸근하게 웃으며 허물없이 대답해주고 웃어주고 운이 좋으면 밥도 준다. 돌아다니다보면 재미있는 일도 많다.
회진의 여관에서 만난 최접심 할머니는 맡겨놓은 카메라 가방 대신 엉뚱하게 김치통을 꺼내준다. 가방이라고 거푸 설명해줘도 할머니는 오래된 옷가방에, 커다란 나무상자에, 혼자 들기도 벅찬 세간을 꺼내오면서 아침부터 부산을 떤다. 삼간집에 혼자 사는 장순기 할머니는 시인이 말을 거는 통에 찾던 열쇠를 못 찾았는데도, 오히려 ‘말벗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시인인데도 말이다.
항상 즐거운 사람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단골식당 주인인 ‘김쌍둥이’ 할머니의 이름은 ‘김한네’. 그렇게 ‘이삔’ 이름을 ‘무다라’ 숨겼냐고 캐묻는 시인에게 할머니는 “이름만 이삐먼 머한다요” 하고는 한숨을 푹 내쉰다. 아픔 많은 전라도 땅에서 팔십 넘게 살면서 겪었던 그 슬픔이야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1부는 시인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만났던 사람들의 웃음과 슬픔을 오롯이 담았다. 목적은 전라도 사투리가 점점 잊히기 전에 직접 채록해보자는 것이었지만, 시인이 배운 것은 단지 사투리만이 아니다. 전라도 사람들만의 끈끈한 정과 건강한 웃음까지 고스란히 받아온 것이다. 빈손으로 온 시인에게 뭐든 한 가득 안겨주었던 사람들, 이것이 바로 전라도의 힘이다.
2부에서는 시인의 가족 이야기가 담겼다. 어머니 수동떡(수동댁)과 아버지 취우 선생만의 특별한 사랑과 부모님의 집들이와 금혼식을 준비하는 형제들의 우애가 잔잔하게 그려진다.
3부 ‘말의 샐팍에 서서’에서는 시인 나름대로 전라도만의 독특한 표현들을 모아보았다. ‘샐팍’이란 ‘문 밖’이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다. 점점 문 밖으로 사라져가는 전라도 말들을 조금이나마 붙잡아두고자 어려서부터 들었던 풀이름이며 지명을 하나하나 모아 정리해놓은 정성에서 고향에 대한 시인의 무한한 애정이 느껴진다.
본문에는 전라도 할머니 할아버지 들의 사진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비록 시인이 직접 만났던 분들은 아니지만, 가식 없는 풋풋한 웃음에서 시인이 만났던 전라도의 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 2부에 실린 시인의 가족사진은 시인이 직접 찍은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손을 잡는다. 모르는 게 없는 국영창 할아버지, 말만 시켜줘도 고맙다던 장순기 할머니, 카메라 가방 대신 김치통을 꺼내줬던 최접심 할머니…… 이 책에는 이대흠 시인이 십여 년간 전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허물없이 말 붙였던 민중들의 건강한 웃음과 삶이 생생한 방언으로 살아 있다. 사람이 하는 말은 그 사람을 이해하게 한다. 그 땅을, 그 세월을 이해하게 한다. 바람과 햇빛이 지나간 자리에 주름이 남더라도 이 아름다운 사람들만은 데려가지 말았으면. 나무그늘에 퍼질러앉아 그 따뜻한 말들의 향연을 소쿠리에 받는 동안, 그 말들이 산천초목을 키웠음을 알게 된다._이병률(시인)
* 2007년 9월 3일 발행
* ISBN 978-89-546-0384-3 03810
* 153*210 | 288쪽 | 9,800원
* 담당편집 : 조연주, 고경화(031-955-3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