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리뷰 “플라토노프는 19세기의 위대한 러시아 문학 이후로 다시 세계를 놀라게 했다.”
_ 세르게이 잘리긴(러시아 작가)
1899년 러시아 남부 보로네시의 외곽 마을에서 태어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곤궁한 집안 형편으로 일찍부터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공학도의 길을 걸으면서 문학 활동을 병행해나갔다. 이후 그는 약 30년에 걸쳐 창작활동을 했는데, 처음 몇 년 동안에는 유토피아를 꿈꾼 열혈 이상주의자로서 구시대에 대한 혐오, 새로 다가오는 시대에 대한 벅찬 기대, 혁명을 향한 뜨거운 의지를 작품 속에 구현했다. 1926년 무렵부터 1935년에 이르는 시기에는 회의에 젖기도 하고 이전과는 다른 사고를 하는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면서 대부분의 대표작을 완성했다. 공상과학 소설「에피르의 길」과 역사소설「예피판의 수문」에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주된 정조로 자리 잡았고, 동시대의 현실을 작품에 반영하여 혁명 정신을 상실해가는 당시의 세태와 관료주의를 냉혹하게 비판하고 풍자했다. 이 시기에 완성한 첫번째 장편이『체벤구르』는 유토피아에 대한 문제의식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마치 구도자처럼 공산주의를 찾아 떠나는 주인공 샤샤의 방황과 공산주의가 실현된 체벤구르의 비극적 몰락을 그리고 있다.
플라토노프는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두 조류 가운데 어느 특정한 경향에 치우치지 않고 당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모색한 작가이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긴장과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세계에서는 정신과 물질, 추상과 구체, 주체와 객체, 자연과 문명 등이 결합되어 있다.
시대의 역설 ― 노동자들의 집인 동시에 무덤이 된 코틀로반
이 작품은 1930년에 탈고되었지만, 체제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작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러시아에서 출판되지 못하다가 1987년에야 비로소 잡지 『신세계』에 발표된다. 1980년대 후반 페레스트로이카로 급격한 변화를 맞은 러시아에서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문학이 선보임과 동시에 구체제에서 출판이 금지되었던 작품들이 속속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플라토노프의 작품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격동기 러시아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냈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코틀로반』은 플라토노프의 문학 세계가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전면에 드러냄과 동시에, 혁명의 정신을 상실해가는 1920년대 후반 러시아 사회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한다. 모든 노동자들이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된 ‘전(全) 프롤레타리아의 집’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중이 꿈꾸는 유토피아이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한 토대이자 곧 민중의 삶이 된 ‘코틀로반’을 파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지만, 집단화 정책에 동조된 사람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잃어버리고 코틀로반을 떠난다. 코틀로반은 노동자들의 집이자 이상적인 터전이었던 동시에 ‘무덤’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코틀로반의 역설은 사회주의 건설 과정의 양면성, 즉 시대의 역설을 드러낸다.
플라토노프의 작품을 접한 독자들은 대부분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은 쉽게 이해되지 않으며, 작품의 화자는 생경하고, 작가가 구사하는 언어는 이중의 의미층이 중쳡되어 있어 기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코틀로반』에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 있으며, 이 작품에 대해 한 문학 연구가는 “플라토노프 연구가들이 이 작품을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가장 많은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라는 데는 쉽게 동의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플라토노프는 『코틀로반』에서 이전에 다룬 모든 철학적인 문제를 종합적으로 제기할 뿐만 아니라 한층 더 전면적으로 문체 실험을 감행하여 자신이 추구한 문학세계를 집약해서 보여준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플라토노프는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로베르트 무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작가이다. _ 조지프 브로드스키(시인,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플라토노프는 체호프가 이뤄낸 성과 이상으로 러시아 소설을 발전시켰다. _ 타임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난 뒤에 재발견한 러시아 작가 가운데 가장 흥미롭다. 『코틀로반』은 단연코 플라토노프의 최고 걸작이다. _ 인디펜던트
『코틀로반』은 소비에트 정권이 시도한 노동자들의 유토피아 건설을 통렬하게 조롱하고, 가공할 거짓말로 엄격하게 조직화되어 희망, 진실성, 인강성을 모두 상실한 사회를 그려냈다. _ 퍼블리셔스 위클리
줄거리
서른번째 생일을 맞던 날, 보셰프는 전체 작업 속도를 거스르고 자주 사색에 빠진다는 이유로 자신이 다니던 공장에서 해고된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 길을 떠난 그는 새로운 공간에 도착하여 모든 노동자들이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집단 거주지,‘전 프롤레타리아의 집’을 건설하기 위해 ‘코틀로반’을 파는 공사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이상적인 노동자상을 대변하는 인물로 강인하고 우직하며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치클린, 부르주아 출신으로 나약한 지식인을 대표하는 건축기사 프루솁스키, 글을 읽고 쓸 줄도 모르면서 조합위원장의 직책을 맡아 부패를 일삼으며 부르주아 생활을 영위하는 파시킨, 제국주의에 의해 두 자리가 잘려나간 자체프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은 이상적인 삶의 둥지를 짓기 위해 온 힘을 다 바쳐 공사일에 매달리다가 점차 집단화 정책에 동조하여 부농 계급 철폐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한 목적을 상실하게 되고 집의 토대를 내리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팠던 코틀로반은 마치 무덤처럼 덩그러니 남는다.
본문 발췌
그는 아직도 사람들이 땅을 나누고 담을 치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 옛 도시를 대신할 ‘전(全) 프롤레타리아의 집’을 고안해냈던 것이다. 1년 후면 이 지역의 모든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소부르주아적인 삶의 방식을 지닌 도시를 떠나 기념비적인 새 집에 삶의 둥지를 틀 것이다. 그리고 10년이나 20년 후면 또다른 기술자가 나타나 세계의 한복판에 탑을 짓고,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그 탑에 들어가 행복한 영원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_ 본문 35쪽
삶의 모든 올바른 의미와 온 세계를 아우르는 완전한 행복은 땅을 파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단조공과 치클린의 심장이 희망 속에 숨 쉬고 그들의 노동하는 손이 믿음 속에 인내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_ 본문 1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