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undead)’로서의 문학에서
보다 나은 삶, 새로운 방식의 연대를 꿈꾸는 전복적 상상력!
1부 ‘부정성에 머무르는 힘’에서는 프로이트가 ‘문명의 불만’이라고 불렀던 것, 안락함과 윤택함을 제공하지만 실제로는 삶을 억압하고 길들이는 다양한 사회체계의 괴물과도 같은 어두운 이면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 문학과 삶의 원천인 부정성을 혁신하는 소설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백민석, 백가흠, 편혜영, 박형서 등 2000년대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나타난 캐릭터의 경향을 ‘시체’ ‘축생’ ‘자동인형’이라는 이름으로 분석하고, 이를 ‘신(新)인류학’이라고 명명한다. 그에게 “특히 1부에서 자주 다룬 백민석의 소설(지금 누가 그와 그의 소설을 기억하고 있는가!)은 매번 새 글을 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되돌아오게 되는 원천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는 최수철의 장편소설 『페스트』를 중심으로 삶의 한 양태로서의 죽음, 자살의 문제를 살펴보고, 「언데드undead」에서는 편혜영의 『아오이가든』 속 문장을 실마리로 그의 문학관을 관통하는 열쇠인 ‘언데드’, 산주검으로서의 문학을 이야기한다.
2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에는 고단한 삶과 무심한 세상을 맞이하는 주체적 태도, 타자와 우정을 맺는 방법의 혁신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의 형상과 공동체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글들이 묶였다. 「우정을 상상하는 세 가지 방법」에서는 김연수, 최인석, 전성태의 단편 속 외국인, 동물, 동포와의 만남을 통해 정치 문화적 국경, 생물학적 종차를 넘어서는 소통 없는 소통, 또는 우정과 연대의 가능성을 상상해본다. 또 『카스테라』 이후 발표된 박민규의 네 단편을 중심으로 생존이 삶과 동일시되는 우리 시대 삶과 문학의 풍경에서 좌절되거나 굴절된 희망의 지표들을 점검한다(「생존이 꿈인 자들의 삶, 생존이 삶인 자들의 꿈」).
3부 ‘문학의 국경, 국경의 문학’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문학의 중요한 현상 중 하나로 일반화되어가는 국경의, 국경 너머의 삶, 외국인과의 만남 등 글로벌 자본주의의 확장과 재편에 따라 지각변동을 겪는 삶과 세계의 궁핍한 형상을 다뤘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방식으로 한국문학이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의 새로움을 염두에 두되, 그것이 정치경제적, 문화적 타자와 맞닥뜨릴 때 생길 수 있는 난점도 아울러 고려한다.
그들이 네팔의 코끼리와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니르바나 같은 이국적 신비를 업고 흡사 문화사절단처럼 등장하더라도 그 문화의 표정들은 하위제국(sub-empire)인 남한의 정치경제적 현실에서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지불한 최소임금에 부합하는 관광상품에 불과하다. 이 상품교환의 정치경제적 현실을 문제삼지 않는 한 이방의 문화는 물신(fetish)이며, 그에 대한 상상력은 키치(kitsch)일 따름이다.(「연대의 환상, 적대의 현실」)
4부와 5부는 각각 ‘소설의 성좌 1’ ‘소설의 성좌 2’라는 제목 아래 그가 5년간 써온 작가론과 작품론, 해설 등을 묶은 것으로 한국소설의 이모저모에 대한 그의 평소 관심을 드러낸 글들이다. 윤대녕, 신경숙, 김훈에서 김언수, 김숨, 명지현의 최근 소설에 이르기까지, ‘정념이 배치되는 성좌’로서의 소설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과 상념이 묻어난다. “아마도 또다른 소설들이 빚어내는 더 많은 성좌와 그것이 빚어내는 망탈리테가 소설의 우주 어딘가에서 생성될 것이다. 그 우주는 또한, 당연히 비평이 있어야 할 자리이기도 하다.”(「소설, 정념이 배치되는 성좌」)
저자 스스로 가장 공력을 쏟은 글들이라고 밝힌 6부 ‘하나이면서 여럿인 문학’은 문학하는 행위의 근본에 자리 잡고 있는 ‘말(言語)’에 대한 생각의 단편들이다. 「화염과 재」에서는 2008년 숭례문 전소 사건과 그로부터 1년 뒤 일어난 용산 참사로 운을 뗀 뒤, 김연수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를 통해 이상이 혹은 꿈이 불타고 남은 뒤의 ‘재’, 곧 남겨진 자의 ‘애도’의 문제에 천착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글의 시작이자 끝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경유하여 포스트문학의 윤리와 정치를 사유한다.